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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수지성(이덕무) 7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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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유진 작성일19-11-02 01:00 조회11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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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은 청장관 전서 1, 2, 권 중 영처문고와 영처잡고를 같이 읽고 얘기 했습니다.

영처문고와 영처잡고는 이덕무가 20대 젊은 날들에 쓴 글들의 모은 문집입니다.

영처(嬰處)란 이덕무의 자()로 영처고 자서에서 이덕무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옛적에 영처고의 수편(首篇)에 제()하기를 어찌 영아가 오락하여 희롱하는 것과 다르겠는가? 마땅히 처녀의 부끄러워하여 스스로 감추는 것과 같아야 한다했다.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스스로 겸손한 것에 가깝지만 실상은 스스로 찬미한 것임이 분명하다.”


문장을 하는 것은 인정받거나 명예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즐거워함이요, 문장을 부끄러워 감추는 것은 처녀처럼 순수한 진정이라 하는 이덕무의 자세를 말하고 있지요. 영처문고의 글들에는 이렇게 이덕무가 자신을 단속하고 다짐하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은 영처, 간서치(看書痴), 선귤당(蟬橘堂) , 이덕무의 많은 호()와 자()는 이 시기에 자신에게 지어줬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이런 이름들을 통해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지요.  성현의 말씀에 충실히 한치의 옆도 돌아보지 않고 올곧은 선비로 살아가겠다는 이덕무의 다짐입니다..

그중 팔분당기의 한 대목입니다.


그러나 5분으로써 9분을 바라는 것은 너무 분수에 넘어 참람하니 이렇게 할 수는 없고, 5분으로서 6, 7분에 주저앉는다는 것은 입지가 높지 못하니 어찌 하겠는가? 맹자는 이르기를 나는 어떤 사람이며 순()은 어떤 사람인가


()임금을 9분으로 설정하고 자신은 8분을 기치로 노력하겠다는 드높은 선비의 기상입니다. 다만 이덕무의 글들에서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의, 조선의 통치철학인 성리학(주자학)적 사고의 틀을 넘을 수 없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지난 시즌에 공부한 연암, 담헌의 글들은 이단으로 여겨지던 양명학적 입장도 받아드릴 수 있는 여유로움과 시대의 틀을 넘어서는 나아가는 힘이 있습니다.

사실 연암과 담헌은 전통 노론 가문의 적통으로 과거를 통해 입신양명의 길을 택하지 않고 학문과 문장 하는 삶을 선택한 것은 그들의 자유의지였습니다. 하지만 이덕무는 서얼출신으로 신분제 사회에서는 애초에 등용의 길이 막혀있었습니다. 원래 욕심을 부릴 수 없는 것이라 쳐다보지도 않았으나 그래도 명예욕이 마음속에 생길까 또 단속하고 단속한 이덕무, 그래서 더 원칙적 성리학에 몰두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길이 막혀있던 재능있는 청년 이덕무, 운종교 위에서 득의(得意)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투사하며 호백(豪伯)을 외치던 이덕무, 그리고 거름장수 예덕선생의 친구 선귤자 이덕무, 이목구심서에서의 작은 벌레나 식물에도 따뜻한 관심을 보이던 이덕무, 그의 여위고 단아한 모습이 떠올라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다음 시간에는 청장관전서 469-125, 170-255, 3권은 자유로이 읽어오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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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문영님의 댓글

문영 작성일

적절한 비유와 재미난 입담으로 세미나를 풍부하게 해주시는 유진샘이 계셔서 유쾌한 '동고동락'입니당^^

첫주, <한서>를 이불삼고 <논어>를 병풍삼는다는..그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해서 추위와 가난속에서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책읽는 즐거움에 빠진, 그래서 행복한 이덕무.
둘째주,박학다식&기록왕 이덕무.
세째주, 아이같은 천진함과 처녀같은 부끄러움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단속하고 단속하는 가운데 은근히 묻어나던 자부심, 20대초반 청년시절의 이덕무.

매주 껍질을 벗듯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덕무..이번주도 기대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