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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주차후기 - 연암을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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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은주 작성일19-06-06 22:26 조회40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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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는 연암집과 열하일기를 읽고 토론했다. 2년만에 다시 만난 연암의 글은 더 아름다웠고 더 울림이 컸다. 다시 읽기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암집과 열하일기를 다 읽고, 지난 주부터 『나의 아버지 박지원』 박종채 지음, 박희병 옮김, 돌베개를 읽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과정록(過庭錄)』인데,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제목을 풀어썼다고 한다. 아들의 시선으로 본 아버지에 대한 기록. 이 책을 통해 위대한 사대부(士大夫) 연암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문이란 별다른 게 아니다.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분명하게 하고, 집을 한 채 짓더라도 제대로 지으며, 그릇을 하나 만들더라도 규모 있게 만들고, 물건을 하나 감식(鑑識)하더라도 식견을 갖추는 것, 이것이 모두 학문의 일단이다.” - 229페이지

사대부(士大夫)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존재이다. 사대부는 관직을 얻지 못하면,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연암은 노년(50~60)에 이런저런 관직에 나아가 일을 했다. 그러나 사대부의 본분은 입신양명이 아니다. 유학이 현실에 뿌리를 둔 학문이기에, 사대부는 현세의 문제를 통찰하고 해법을 구하기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언제라도 임금의 명령이 있으면, 바로 일을 시작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연암이 평생을 했던 일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초시(初試)에서 1등을 했음에도 회시(會試)를 거부했고, 정조의 계속되는 회유에도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안의현감과 면천군수 시절에 연암의 행적을 보면, 높은 벼슬에 오르더라도 훌륭한 정치를 해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런데 왜 피해다닌 걸까? 우리 모두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버지는 사람을 대하여 담소할 적에 언제나 격의없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자리 중에 있어 말 중간에 끼여들기라도 하면 그만 기분이 상해 비록 하루종일 그 사람과 마주하고 앉았더라도 한마디 말씀도 나누지 않으셨다.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그러한 태도를 단점으로 여겼다. 악을 미워하는 아버지의 성품은 타고난 것이어서 부화뇌동하거나 아첨하거나 거짓을 꾸미는 태도를 억지로 용납하지 못하셨다. - 174페이지

연암의 장인인 유안옹(遺安翁, 이보천)도 사위에 대해 같은 내용의 걱정을 했다. 악을 지나치게 미워하는 성품은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에 적합하지 않다. 연암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세상을 경륜하고 구제하는 학문을 했던 연암은 저술에 뜻을 두었다. 농사, 화폐, 벽돌, 말 등에 대해 글을 썼고 임금은 물론 세자까지도 통독했다. 정조는 연암이 지은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읽고 크게 기뻐하며, 농서대전(農書大全)을 연암에 편찬하게 하려고 했다고 한다-정조의 죽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관상, 추명(推命), , 풍수 따위의 잡술에는 일체 관심을 갖지 않으셨다.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런 것들은 남한테 물어볼 게 아니다. 선을 따르면 길하고 악을 따르면 흉하게 될 뿐이다. 관상을 예로 들어보면, 착한 마음이 드러나면 반드시 기쁜 기색을 띠게 되고 악한 마음이 드러나면 반드시 좋지 않은 기색을 띠게 된다. <후략>” - 261페이지

연암은 주역(周易)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글 곳곳에 주역이 인용되어 있다. 학우 중 한 명이 이에 대해 질문했다. 선생님은 대답하셨다. ()을 공부하는 것은 흐름과 기운을 읽기 위해서이다. 학문을 함에 있어서,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같은 리듬감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리듬을 읽지 못한다면 진정한 학문이 아니다. 사주명리학도 같은 맥락에서 공부한다. 주역과 명리학은 지금 내가 어떤 흐름 속에 있고, 어떤 길을 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운명의 지도인 것이다. 예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운명은 존재하고, 인간은 선택을 해야 한다. 지도를 보건 보지 않건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지도를 보고 선택하면, 자신의 선택에 후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선택을 현실화하기 위한 행동 또한 독실(篤實)해진다.

아버지는 책 읽는 속도가 매우 느려서 하루에 한 권 이상 읽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기억력이 썩 좋지 못하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덮으면 곧바로 잊어버려 머릿속이 멍한 게 한 글자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일을 처리해야 하거나 글제목을 정해놓고 이러저리 글을 구상할 때면 처음에는 읽은 내용이 하나씩 떠오르다가 종국에는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중략> 지계공은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연암은 책을 매우 더디게 보아서 내가 서너 장 읽을 때 겨우 한 장밖에 못 읽었다. 또 암기 능력도 나보다 조금 못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읽은 글에 대해 이러저리 논하거나 그 장점과 단점을 말할 때에는 엄격한 관리가 옥사(獄事)를 처결할 때처럼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공이 책을 느리게 보는 것이 철저하게 읽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 188페이지

학우 중 한 명이 연암의 책 읽기에 대해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연암이 책을 주체적으로 읽었다고 하셨다. 책 읽기에는 3가지가 있다. 첫번째 읽었어는 내용은 기억 안나지만 읽기는 했을 때이다. 두번째 읽었어A글은 ㅇㅇㅇ이고 B글은 △△△라고 요약할 수 있는 경우이다. 세번째 읽었어는 글의 구성과 논지를 제대로 알고, 다른 글들과 연결시킬 수 있을 때이다. 연암은 세번째 읽었어에 해당하는 독서를 한 것이다. 학우들은 각자의 독서법을 생각하며 의견을 내었다. 어렸을 때는 첫번째만 해도 어디인가! 공부를 시작한 지금은 두번째의 독서를 하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는 세번째의 읽기를 해봐야겠다. 등등등. 최근에 숭례문학당의 온라인 필사를 시작했다. 강사는 필사 할 글을 제시하고 필사 포인트를 알려준다. 그리고는 다른 필사 포인트를 찾아보라고 권유한다. 글의 장단점을 글로 적어보고, 아쉬운 점도 정리해보라고 권유한다. 바로 이것이 세번째 글 읽기가 아닌가 싶다.

이외에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면 재미가 급감하니 이만 줄여야겠다. 현재에도 우리 곁 어딘가에 연암과 같은 사람이 있을까? 오늘 연암을 떠나보냈는데, 아쉬움 때문에 심장이 아프다.

글자수 : 2340

원고지 : 15.5

#연암수업후기 #남산강학원 #나는어떤사람이고싶은가 #참된학문 #청년공자들이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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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유진님의 댓글

이유진 작성일

은주샘 지난 수업 내용을 다시 다 떠올리게
되는 후기 감사합니다. 이렇게 또 한시즌이
끝났네요. 동고동락은 참 좋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연암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했는데 지금은
어럼풋히 연암의 옷깃이라도 잡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연암을 같이 읽고  얘기하며 같이 공부한 샘들과도
즐겁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늘 동고동락을 떠들석하고
활기있는 분위기로 이끌어 주시는 문샘께도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