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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동락 12주차 후기 - 나의 아버지 박지원 앞 절반

게시물 정보

작성자 서은주 작성일19-05-31 10:16 조회464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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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박지원』의 앞 절반을 읽고



이 책의 원 제목은 『과정록過庭錄』이다. 옛 사람들은 과정록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아들이 기록한 아버지의 행적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과정록은 과정지훈過庭之訓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날 과過, 뜰 정庭, 어조사 지之, 가르칠 訓, 뜰을 지날 때의 가르침으로 직역할 수 있다. 과정지훈은 공자가 아들 백어에게 뜰에서 사람의 도리를 가르친 일화에서 유래된 사자성어四字成語이다.



16-13 진항이 백어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슨 특별한 가르침을 받으셨는가?” “없습니다. 전에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는데, ‘시를 배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닙니다고 대답하자, ‘시를 배우지 않으면, 아무 주장도 못한다고 말씀하셔서, 저는 물러나 시를 배웠습니다. 또 다른 날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는데, ‘예를 배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닙니다고 대답하자, ‘예를 배우지 않으면, 입신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셔서, 저는 물러나 예를 배웠습니다. 이 두가지를 들었습니다.” - 『논어집주』「계씨」 669페이지, 박성규 역주, 소나무


이 책의 시작부분에는 연암 박지원의 초상화, 직접 그린 그림, 큰 액자용 붓글씨(편액), 손 편지 사진이 있다. 선비라고 하면, 책만 읽고 여리여리한 체구를 상상하기 쉬운데, 연암은 장군처럼 위엄 있는 얼굴에 큰 몸집을 하고 있다. 공자도 2미터에 가까운 키에 몸집이 컸다고 하며, 왕양명 선생도 전쟁에 나가면 모두 이기고 돌아왔고, 말도 잘 타고 활도 잘 쏘았다고 한다. 이로써 보면, 공부를 잘 하려면 신체도 건강해야 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연암의 그림은 여느 훌륭한 화가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공부도 잘하고 예술도 잘한다니 놀랍다. 연암의 붓글씨를 보면 기상이 넘쳐난다. 손편지도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연암은 옛 사람들이 인재를 선택하는 4가지 조건이라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모두 갖추었다.

*) 인물이 잘났나 身, 말을 잘 할 줄 아는가 言, 글을 잘 쓰는가 書, 사물의 판단이 옳은가 判


연암은 16세에 결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학문을 시작했다고 한다. 연암의 스승은 장인 이보천(이하, 유안옹)과 장인의 동생 이양천이었다. 장인으로부터는 『맹자』를, 이양천 선생으로부터는 『사기』를 비롯한 역사를 배웠다. 두 스승 모두 뜻이 높고 식견이 뛰어나 연암에게 시 짓는 법, 글 쓰는 법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연암 19세에 이양천 선생이 흑산도로 유배를 갔다가 병으로 죽자, 큰 상실감을 느껴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장인 유안옹은 연암을 무척 아꼈으며, 호탕한 연암 또한 장인에게는 늘 겸손했다고 한다. 연암의 친구들은 이에 대해 연암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그렇지만 매사에 번번이 그 장인을 칭송하며 자기는 따라갈 수 없다고 하니 참 이상한 일이지.”라고 했다고 한다(38페이지). 연암에게 장인은 항상 따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한 학우가 연암의 벗 사귐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질문했다. 연암은 명예(), 잇속(), 권세()로 맺어진 사람들과는 모두 관계를 끊었다. 그러면 연암은 무엇을 기준으로 친구를 사귀었을까? 가장 먼저 나온 추측은 글을 아느냐 모르냐로 했을 것이다였다. 그러나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심양에서 글을 하나도 모르는 한족 젊은 상인들과 밤 새워 우정을 나누었고 이것을 <속재필담粟齋筆談>으로 남겼다. 연암에게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 기준은 세상에 대한 비전(vision)이 자신과 같은지였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 직업에 임하는 태도에 사심私心이 없으면 벗으로 삼았다. 연암은 벗에게 자기 자신을 다 드러내주었고, 벗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연암 주위에는 항상 지조있고 의로운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것은 연암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는 표지이다.


문릿샘은 이렇게 말했다. “연암이라는 텍스트를 읽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다.” 사람이 텍스트가 된다? 사람을 읽는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필자도 연암의 글을 읽으면서 연암이라는 텍스트를 읽었기 때문이다. 글 속에서 드러나는 연암은 속세를 초월하면서도 속세에 끊임없이 맞닿을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읽혔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저자로 나아가 저잣거리의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렸던 연암. 청나라를 여행할 때 민족과 계급과 귀천을 상관하지 않고 유쾌한 만남을 가졌던 연암. 현감으로 나아가서 원칙대로 매정하게 처벌하기 보다는 살인범조차도 추위에 떠는 것이 안타까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게 해주었던 연암. 흉년이 들어 굶는 5천가구의 주민들에게 개인돈을 풀어 죽을 나누어 줄 때도 한 사람 한 사람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 연암, 문책이 두려워 하위부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상부에 가서 조리있게 따지는 연암. 등등등. 연암의 사람을 향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글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외에도 사심私心이란 무엇인가? 공직자로서의 연암의 일처리 능력. 정조의 연암 사랑 등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오늘의 글을 올려야 할 마감시간이 다가오므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이만 총총悤悤.


글자수 : 2009

원고지 : 12.46

#하고싶은말은많지만이만총총 #불어라글바람 #연암종강이다가오는데재미는더해간다 #체력저하로집중도저하 #강의중잠깐잠깐놓친다 #결국단어만생각나고내용이생각안난다 #다음에는사심에대해쓰고싶다 #사심에대해댓글좀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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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은주님의 댓글

서은주 작성일

2019년 5월 30일의 남산둘레길 탐사

수업이 끝나고 남산 둘레길을 산책했다. 학우 한 분이 최근 발굴한 길을 가보자고 한다. 한남대교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삶에 대해 같은 태도를 가진 사람과의 만남은 짚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려운데, 나는 운이 좋다.

헤어지고 지하철역으로 가려고 하니, 보도블럭 공사로 난장판이다. 발걸음을 돌려 정처없이 걸었다. 팔각정에 앉아 쉬기도 하고 어딘가로 내려가는 계단을 살펴보기도 하면서 탐사를 했다.

표지판에 한옥마을이 보인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내려섰다. 터널을 지나 육교를 건너서 도착한 남산골 공원은 나름 운치가 있다. 걷다보니 너무 넓어서 진이 빠졌다. 한옥마을 패스. 바로 지하철역으로 갔다. 장충단 공원이 더 났구먼!

문영님의 댓글

문영 작성일

댓글을 통해 글감을 낚으려는 은주샘의 사심??이 엿보임ㅋㅋㅋㅋㅋ

서은주님의 댓글

서은주 댓글의 댓글 작성일

연암은 벗들이 침 튀겨가며 대화에 열중할 때, 옆에서 꾸벅꾸벅 졸았어도, 벗들의 대화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었답니다. 연암의 생각이 어디 연암 한 사람의 생각이었겠어요 ㅋ 같은 주제로 연암도 쓰고, 형암도 쓰고, 초정도 쓰고, 담헌도 쓰고, 혜풍도 쓰고, 다 썼지만 후세 사람인 우리님들께서 연암글만 읽으신 겁니다요.

그러니 우리 학우님들도 사심을 주제로 글 한 편씩 내놓으시죠. 큼! 강요는 안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