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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5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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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은주 작성일19-04-02 13:43 조회35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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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우연히 본 동영상의 한 장면은 너무 강렬해서 아직도 잊혀지지않습니다. 평범한 2,30대 백인 남성이 K-POP 뮤직 비디오를 리액션(reaction)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장면에서 갑자기 모든 동작을 멈추고 화면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참을 화면은 멈춰있는 듯이 흘러갔어요. 2~3분 후 되돌아온 남성의 온몸은 바로 직전까지 격렬하게 울었다고 말하고 있었답니다. 이어 자신의 감정을 폭풍우가 쏟아지듯이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낸 글, 노래, 영상은 독자, 청자, 시청자의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리고 전혀 모르는 사이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이어줍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음의 연결망(network)의 강도는 티타늄이나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강합니다.

연암(1737~1805) 200여년전에 쓴 글(文章 문장)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 와닿습니다. 연암의 글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 고난을 이겨내는 해학(諧謔, Humour, 유머), 친구를 생각하는 진심(盡心) 그리고 사대부로서의 지성(知性) 등이 녹아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연암의 글을 읽다보면, 18세기를 살아간 인간, 연암의 마음이 독자의 마음으로 연결됩니다. 독자는 <스승 영목당 이양천 선생에 바치는 제문(祭文)>에서는 스승을 잃은 제자 연암의 슬픔에 동화되기도 하고, <장인 이보천 선생에 바치는 제문(祭文)>에서는 숭고한 선비의 삶에 감탄하기도 하고, 갑작스런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이몽직에 대한 애사>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기적과도 같음을 친한 벗 이희천과 어린 제자 이몽직의 경우로 깨닫기도 하고, <유경집에 대한 애사>에서는 남겨진 자들의 슬픔에 가슴 아파합니다. 연암은 사건을 바라보는 뛰어난 통찰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연암이 남겨놓은 글속의 인물간의 맥락(脈絡,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 중에 어느 하나는 의 사건과 연결되고야 맙니다. 연암은 이런 식으로 21세기 인간들을 몇이나 포섭한 걸까요?

연암이 살아간 18세기는 정치와 문화가 융성했던 영정조시대입니다. 정치적으로 노론, 소론, 남인, 북인 등의 당파로 나누어져 서로간에 선을 긋고 날카롭게 대립했지만, 문화적으로는 당파에 상관없이 서로간에 얼기설기 얽혀 어울렸던 시대입니다. 18세기 권세가였던 김창집의 증손자인 김이중은 연암이 37세에 친구들과 명산 유람을 떠날 수 있도록 여행경비를 대주었습니다. 그 여행에서 유명한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구경하다>라는 시가 탄생했습니다. 이 시를 우연히 읽은 판서 홍상한은 뛰어난 문장력에 감탄하여 중국에서 들여온 크고 작은 붓 200여자루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한편 연암은 1793년 친구인 김이중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사촌동생인 김이도에게 보내는 편지 <김계근에게 답함>에서 벼슬길에 나선 자의 처신에 대해 따끔하게 충고하는 글을 보내기도 합니다. 1793년 전라 감사가 된 이서구(1754-1825)에게는 중용의 성()을 힘쓰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연암은 35세에 과거시험을 포기했습니다. 뚜렷한 이유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연암의 벗 이희천이 불온서적인 명기집략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참수를 당한 것이 원인이라고들 생각합니다. 당쟁 때문에 과도하게 벌을 받고 허망하게 죽음을 맞은 친구에 대한 연암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당시의 그의 마음은 <소완정의 하야방우기에 화답하다>에 절절이 드러나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기 위해 두문불출(杜門不出)하다가도 이서구의 방문에 예를 갖추고 시대의 흐름을 논하는 연암은 웅크린채 괴로워하는 용()과도 같습니다. 이처럼 힘들어하는 연암에게 함께 중국에 다녀오자고 손을 내민 사촌형 박명원(1725-1790)을 따라 다녀온 여행에서 연암은 <열하일기>를 남겼습니다. 연암이 삶으로부터 겪은 고뇌, 슬픔, 고통, 곤경 등은 연암이 스스로 원하지 않았지만 연암에게 들이닥쳤습니다. 연암을 이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연암이라는 필터(filter, 거름망)을 거친 후 글로 남겼고, 오늘 날에도 연암의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 <주역>과 <융의 영혼의 지도>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후기가 늦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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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주님의 댓글

서은주 작성일

<연암燕岩에서 선형先兄을 생각하다>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고
두건 쓰고 옷 입고 가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

필자가 국민학교 2학년생일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후,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땐 큰 고모를 보았었다. 4남매 중 큰 고모만이 할머니를 빼다 박은 듯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연암같지 않았나 보다. 외모는 같지만, 마음은 같지 않음을 깨닫은 후에는 더 이상 큰 고모에게서 할머니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나서, 나의 아버지에게서 할머니를 찾아서 더 이상 큰 고모에게서 할머니를 찾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