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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2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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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연자연 작성일19-03-08 22:38 조회1,108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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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연입니다^^


이번 주는 연암이 사람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이 주를 이루었는데요.

평생 백수의 길을 갔다는 연암의 귀한(?) 관직시절 이야기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방관리로 있을 때 연암의 글 중에 많이 보였던 부분인 진정(賑政), 구휼정책에 관한 글에 눈이 많이 갔었습니다.

백성에 대한 마음과 일을 대하는 태도가 참 멋있다고 느껴졌었는데요. 

어떻게 세금을 걷을지, 공진公賑으로 할지 사진私賑으로 할지, 누구에게 어떻게 나눠줄지. 어떻게 해야 억울한 백성이 생기지 

않을지 등등.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그 생각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에서 연암의 마음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발제에서 이런 마음이 연암이 원도原道에 대해 임형오에게 답함〉에서 말했던 "통촉洞燭"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에는 군자君子의 도가 네 가지 있네. 초가 형체를 지켜 나가는 것은 반드시 곧고(), 천명을 완수하는 것은 바르며(), 마음가짐은 반드시 중이며, 같은 부류를 좇아가는 것은 반드시 화하네. 대저 이 네 가지 덕은 촛불이 밝게 된 까닭이지. 그 지향은 활활 타 나아갈 것을 생각하고 그 기개는 밝고 밝아 비출 것을 추구하니, 이는 천하의 보편적인 도인데 초가 이것을 지녔네. 그러므로 촛불이란 통촉洞燭하는 것이니, 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과 꼭 같네.

(원도原道에 대해 임형오에게 답함, 228)


이번 세미나 시간에도(?) 문쌤이 재미난 이야기들을 풀어놔주셨는데요~

우선사대부의 사士 계급의 특성과 본분! 

사계급은 농민처럼 세금을 내지도 않고, 대부처럼 전답을 소유하지도 않는 자들. 다시 말하면 보호받지도 관리받지도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계급특성을 나타내는 것은 공부! 지식인으로써의 본분이었지요~ 공부하는 것에 지쳐 자존심을 내려놓고 장사치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연암과 연암밴드. 그리고 다산과 정조의 얘기를 해주시면서 "문체반정"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는데요.

아! 글 중에 <남 직각에게 답함>이란 글에도 나오는 부분입니다. 남공철이란 지기가 반성문을 써야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이야기하는데요 ㅎㅎ 문체반정이 고문체로 글을 써라~ 이런 거였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 연암밴드의 반응도 각기 달랐다고 하는데요. 이덕무는 반성문을 쓰려고 엄청엄청 노력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했고, 박제가는 정말 쓰기 싫어했다고 합니다. 내가 왜!!! 하면서 반성은 하지만 잘 모르겠네~ 이런 반성문을 썼다고 합니다.

연암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하는데, 문쌤의 상상 속에서는 "문체를 다르게 쓰라고 곧바로 다르게 쓰는 것은 아부다"라고 연암이 생각했을 것 같다고 하십니다.


이 외에도 많은 얘기들을 해주셨는데요, 이런 시대적 이야기들 덕분에 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여 저희도 글을 이렇게 읽어낼 수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다음주에는 연암집(상) 323~끝까지, 그리고 연암집(중) ~70쪽 까지 읽어오기로 했습니다!


그럼 다음주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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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은주님의 댓글

서은주 작성일

원도에 대해 임형오에게 답함(211-233페이지) 참고문헌

『한유문집 1』, 한유(韓愈) 저, 이주해 역, 문학과지성사, 2009
창려문초(昌黎文鈔) 권9 원도(原道) 495페이지-499페이지를 필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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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의 근원을 밝힘(原道)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일러 인(仁)이라 하고, 행동이 합당한 것을 일러 의(義)라 하며 인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일러 도(道)라 하고 스스로 충족되어 외물에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을 일러 덕(德)이라 한다. 인과 의는 정해져 있는 명분이고, 도와 덕은 비어 있는 자리다. 그러므로 도에는 군자와 소인이 있고, 덕에는 흉함과 길함이 있는 것이다. 노자가 인의를 작게 여긴 것은 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본 것이 작기 때문이다.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고서 하늘이 작다 한다고 하여 하늘이 작은 것은 아니다. 노자는 아주 작은 은혜를 인이라 여겼고 보잘 것 없는 선행ㅔ을 의라 여겼으니, 인의를 작게 여긴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노자가 말하고 있는 도라는 것은 자신이 도라 여겼던 것이지 내가 말하고 있는 도는 아니다. 노자가 덕이라 하는 것은 자신이 덕이라 여겼던 것이지 내가 말하고 있는 덕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도덕이라는 것은 인과 의를 합쳐서 말한 것이며 천하의 공변된 언론이다. 그러나 노자가 말하고 있는 도덕이라는 것은 인과 의를 없애고서 말하는 것이며 한 개인의 언론에 불과하다.

주나라의 도가 쇠하고 공자께서 세상을 뜨자 진(秦)나라 때 분서(焚書)의 화를 만났고, 한나라 때는 황로(黃老) 사상이 유행했으며, 진(晉)·위·양·수 때 불교가 성행하였다. 도덕과 인의를 말하는 자들은 양주(楊朱)에 빠지지 않으면 묵적(墨翟)에 빠졌고, 노자에 빠지지 않으면 불교에 빠졌다. 여기에 들어가게 되면 저기서는 발을 빼고, 들어간 것을 주인으로 삼으면 발을 뺀 것은 노예로 여기며, 들어간 것에는 아부를 하고 발을 뺀 것에는 모욕을 가하였다. 아! 후세 사람이 인의와 도덕의 말씀을 들어보고자 해도 그 누구에게서 듣는단 말인가? 노자를 믿는 사람들은 “공자는 우리 스승의 제자다”라고 말하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공자는 우리 스승의 제자다”라고 말한다. 공자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도 이러한 말을 익히 듣다 보니 자기들 역시 황당한 말을 즐기면서 스스로를 보잘것없이 여기고는 “우리 스승께서 저들을 섬긴 적이 있었구나”라고 말한다. 입으로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 글로도 적는다. 아! 후세 사람이 인의와 도덕의 말씀을 들어보고자 하여도 누구에게서 듣는단 말인가? 심하구나. 사람이 괴이한 것을 좋아함이여! 처음을 알려하지 않고 말단을 물으면서 괴이한 말만 듣고자 하는구나.

옛날에는 백성이 넷이었는데, 지금은 여섯(사농공상,승려,도사)이다. 옛날에는 가르치는 자가 하나였는데, 지금은 가르치는 자가 셋이다. 농자 짓는 집은 한 집인데, 곡식을 먹는 집은 여섯 집이고, 장인(匠人)의 집은 한 집인데 기물을 쓰는 집은 여섯 집이며, 장사하는 집은 한 집인데 가져다 쓰는 집은 여섯이니, 백성이 궁핍함에 몰려 도적질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는 백성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성인이 나타나 서로 도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임금이 되고 스승이 되어 벌레와 뱀과 금수를 몰아낸 후에 중원에 살게 했다. 날씨가 추워지자 옷을 만들어 입히고, 굶주리자 음식을 만들어 먹였다. 나무 위에 살다가 고꾸라지기도 하고 땅에 살다가 병에 걸리기도 하기에 집을 지어 살게 하였고, 물건을 만들어 기물을 풍족하게 하였으며, 장사하는 법을 가르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유통하게 했다. 또 의술과 약초 쓰는 법을 만들어 요절하는 일이 없게 해주고, 땅에 묻고 제사 지내는 법을 제정하여 은애하는 마음이 더욱 자라나게 해주었다. 또 예법을 정하여 선후 차례를 정리하였으며, 음악을 만들어 울분을 풀도록 해주었다. 사람 다스리는 법을 만들어 게으른 자들을 이끌었으며 형벌을 제정하여 난폭한 자들을 제거하였다. 서로 속이는 일이 생기자 부절(符節)과 도장, 말과 휘(斛), 저울추와 저울대를 만들어 서로 믿을 수 있게 해주었고, 서로 침탈하는 일이 생기자 성곽과 병사를 만들어 지킬 수 있게 해주었다. 재해가 오면 이를 대비하게 하고, 우환이 생기면 이를 방비하게 하였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성인이 죽지 않으면 도적이 그치지 않을 것이고, 말을 쪼개고 저울을 부숴야만 백성이 싸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 저들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구나! 만일 옛날에 성인 없었다면 인류는 오래전에 멸망하였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날개도 털도 비늘도 단단한 껍질도 없이 춥고 더운 데 살아야 하고, 손톱과 이빨도 없이 먹이를 쟁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임금이란 명령을 내리는 자요, 신하란 임금의 명령을 시행하여 백성에게 미치게 하는 자다. 백성이란 곡식과 쌀, 마와 생사를 바치고 기물을 만들어 재화를 유통시켜 윗사람을 모시는 자다. 임금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임금으로서 본분을 잃고, 신하가 임금의 명령을 시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지 못하면 신하로서의 본분을 잃는다. 백성이 곡식과 쌀, 베와 생사를 내지 않고, 기물을 만들거나 재화를 유통시켜 윗사람을 모시지 않는다면 죽여야 한다. 그런데 저들의 법도에서는 군신도 버리고 부자도 버리고, 서로 돕고 살아가는 방법도 금지시켜서, 이른바 청정적멸(淸淨寂滅)을 구해야 한다고 한다. 아! 요행히 삼대(三代) 이후에 생겨난 덕에 우임금·탕임금·문왕·무왕·주공·공자에게 쫓겨나지 않았도다. 그러나 불행히 삼대 이후에 생겨난 탓에 우임금·탕임금·문왕·무왕·주공·공자에게 질정을 받지도 못하였도다.

황제와 왕이 그 호칭은 비록 다르지만 성인이라는 점에서는 하나다. 여름에는 베옷을 입고 겨울에는 갓옷을 입고, 목마르면 마시고 배고프면 먹고, 그 일이 비록 다르기는 하지만 지혜롭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태곳적의 아무 일 없던 모습을 왜 따르지 않는가?”라고 한다. 이는 겨울에 갖옷을 입은 사람더러 “베옷 입으면 편할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라고 책망하고, 배고파 밥 먹는 사람더러 “마시면 편할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라고 책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옛 전적에서 이르기를, “옛날에 천하에 밝은 덕을 밝히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그 집을 다스렸으며, 그 집을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스스로를 수양했다. 또 스스로를 수양하려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히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니 옛날의 이른바 마음을 바로 하고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장차 큰일을 해내고자 하는 뜻이 있어서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은 다스리고자 하면서 천하 국가는 도외시한다. 하늘의 도를 없애서, 아들이지만 아비를 아비로 섬기지 않고, 신하지만 임금을 임금으로 섬기지 않으면, 백성이지만 자신의 생업을 생업으로 삼지 않는다. 공자께서 『춘추』를 지으실 때, 제후지만 오랑캐의 예법을 따르면 오랑캐로 여기고, [오랑캐지만] 중국의 예법을 쓰는 자는 중국 사람으로 여기셨다. 경전에서 이르기를, “오랑캐에 임금이 있는 것은 중원에 임금이 없느니만 못하다”고 했다. 또 『시경』에서도 “융적(戎狄)을 치고 형서(荊舒)를 징벌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랑캐의 법도를 선왕의 가르침위에 얹어놓으려 한다. 그러니 얼마 있다가 오랑캐가 되어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위 선왕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일러 인이라 하고, 행동이 합당한 것을 일러 의라 하면, 인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일러 도라 하고, 스스로 충족되어 외물에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을 일러 덕이라 한다. 글로 말하면 『시경』·『서경』·『주역』·『춘추』요, 예법으로 말하면 예(禮) 악(樂)·형(形)·정(政)이요, 백성으로 말하면 사·농·공·상이요, 지위로 말하면 군신·부자·사우(師友)·빈주(賓主)·형제·부부요, 의복으로 말하면 베와 비단이요, 사는 곳으로 말하면 집과 방이요, 먹는 것으로 말하면 곡식·쌀·과일·채소·생선·고기다. 그 도는 알기 쉽고 그 가르침은 행하기 쉽다. 이러한 까닭에 이것으로 천하 국가를 다스리면 순조롭고 상서롭다. 이것으로 남을 대하면 인자하고 공정하다. 이것으로 마음을 다스리면 조화롭고 평안하다. 이것으로 천하 국가를 다스리면 어디를 가건 마땅치 않음이 없다. 그러니 살아서는 본성을 얻을 수 있고 죽어서는 도리를 다할 수 있다. 제사를 지내면 천신께서 강림하시고, 종묘제례를 지내면 귀신이 내려와 흠향한다. “이 도는 어떤 도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는 내가 말하는 도니, 아까 말했던 도가와 불가의 도와는 다르다”고 대답한다. 요임금은 이 도를 순임금에게 전했고, 순임금은 이 도를 우임금에게 전했으며, 우임금은 이 도를 탕임금에게 전했고, 탕임금은 이 도를 다시 문왕·무왕·주공·공자에게 전했다. 공자는 이 도를 맹가에게 전했다. 맹가가 죽은 뒤로 이 도는 전해지지 않았다. 순자와 양웅이 있었으나, 가렸으되 세심하게 하지 못했고, 말을 했으되 상세하게 하지 못했다. 주공 그 위의 사람들은 높이 임금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일을 시행하기 쉬웠다. 주공 이래로는 아래로 신하의 자리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 학설이 오래 전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불교와 도교를] 막지 않으면 {선왕의 도가} 흐르지 않고, [불교와 도교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선왕의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 도사와 승려를 일반 백성으로 만들고, 저들의 책을 불태워버리라. 절과 도관을 민가로 만들고 선왕의 도를 밝혀 저들을 인도하라. 그러면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늙어 자식 없는 이들도 살아갈 수 있으리니, 이 정도면 거의 올바르게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영님의 댓글

문영 작성일

연암의 글과 인품이 멋있는 건 멋있는 거고... 그래도...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암에게 글을 부탁하고, 그에게 의견을 묻고, 교우하길 원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던 측면이 조금 있었는데... 사대부의 본분과 삶의 양식에 대한 문샘의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士의 직분에 충실했던 대표적 인물로 연암이 하나의 텍스트이자 읽을 거리였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연암은 구휼정책을 펴며 太守의 즐거움(與民同樂)을 알았다고 기뻐하면서도, 구제를 받는 백성들이 예를 차렸으면 좋겠다고 한마디했다가 일부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그럼 구제민들에게 궁중예법이라도 가르치랴?는 투로 말이죠. 참 사람들ㅋㅋ 연암의 대답중에 '염치'라는 말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예전엔 더러 사용했던 말인데 지금은 거의 사라진 말중에 하나인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도 연암의 특별함이 느껴지더군요. 베풂을 너머 받는 사람의 격까지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이랄까요. 주는 사람은 줌으로써 이미 기쁘지만, 받는 사람도 염치를 아는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을때 진정(賑政)은 완성될 수 있고 지속될 수 있다는 연암샘의 소신...역쉬!!

문영님의 댓글

문영 댓글의 댓글 작성일

연암이 말한 예란 별게 아니었어요. 줄서서 질서를 지키고, 약자를 먼저 배려하여 사양할 줄 알고, 순서를 기다리면서 다투지 말자..는 정도의 염치였죠.

서은주님의 댓글

서은주 댓글의 댓글 작성일

'연암'이라는 텍스트를 읽기 위해 모여든다는 점은 저도 인상깊게 들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나'라는 텍스트는 읽을만한 수준인지 저절로 반성하게 되더군요. 그래서인지 사람이 텍스트가 될 수 있고 품격있는 텍스트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더욱 더 분발하게 됩니다. 어쩌면 좋을 읽을 거리가 될 수 있는 삶이 잘 살아내는 삶이 아닐까 싶네요.

홈피지기님의 댓글

홈피지기 작성일

동고동락. 연암반 열기가 느껴지네요. 자연자연의 후기에 부치는 동문들의 릴레이 댓글. 퍼즐지성!! 아마 팀연암도 이랬을 걸요, 믿거나말거나!^^

서은주님의 댓글

서은주 작성일

<응지에게 답함4, 연암집 상권 260~263페이지>는 공주 판관 김응지에게 보내는 편지 중 마지막 글입니다. 김응지는 충청도 면천 군수로 부임해온 연암을 위해 충청 감사를 연결해줍니다. 하지만 일이 꼬여버려 연암이 사직서를 제출하자 김응지는 미안한 마음으로 연암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에 연암이 답장을 보내면서 연암집에 글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응지에게 답함4>은 연암의 사교술과 유머를 잘 보여주는 글입니다.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도록 정황을 잘 설명하고 자신의 고과가 깍인 이야기를 아전들의 입을 통해 풀어냅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드물었던 시대, 지방 행정의 중추 역할을 했던 아전들의 글자 풀이를 읽다보면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오죠. 순간 포착의 달인인 연암이 이 장면을 놓칠리가 없습니다. 아전들의 대화를 요약하여 정리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김응지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속담 꾸러미입니다. 단순명료한 속담들 속에 숨어있는 촌철살인(날카로운 경구로 상대편의 급소를 찌름)은 무시무시하기까지 합니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고(正心) 자신의 길(道)을 묵묵히 가는 연암을 읽을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