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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시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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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은주 작성일18-11-21 00:42 조회127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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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9차시 후기 .docx



고전강학원-동고동락 / 앎과 삶, 주희와 왕양명 / 9차시 수업후기 / 2018.11.15 / 서은주

오늘 수업은 중용 14~16, 전습록 357~512페이지를 강학했습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중용과 양명선생의 깊은 사유에 대한 토론이 깊어져갑니다. 오늘 수업에서는 1) 지금의 나를 바로 잡는 문제, 2) 한 가지를 고집하지 않고, 다름을 수용하는 문제, 3) 양지의 완전한 실현, 4)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한결같이 절실히 하는 공부, 5) 나의 강점과 매력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에 대해 집중 토론했습니다. 공자 3대의 이혼은 수신제가에 어긋나지 않는가에 대한 부분은 이해가 부족했는지 글로 적을 수 없어서 제외하였습니다.

1) 反求諸其身(반구저기신, 오히려 그 이유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중용 14

중용 14장에서는 군자가 상황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하고 있다. 인간이 처할 수밖에 없는 지위, 부귀, 빈천, 이적(夷狄), 환난 등의 상황에서 군자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지키면서 삶을 바꾸어나간다. 예를 들어보면, 왕양명은 35세에 환관 유근(劉瑾)의 미움을 사서 오늘날 귀주(貴州)성 용장(龍場)의 역승(驛丞)으로 좌천되었다. 당시 용장에는 중화화(中華化)를 거부하여 밀려난 묘족(苗族)이 살고 있었다. 풍토도 말도 다른 용장에서 왕양명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참된 모습을 실현했다. 왕양명은 묘족과 조화롭게 어울려 살되, 그 이전의 왕양명(A)과도 다르고 묘족과도 다른(B) 변화()한 왕양명(C)이 되었다. 그가 용장에서 머물렀던 곳의 이름이 하루헌(何陋軒)인데, 하루(何陋)는 논어의 君子居之, 何陋之有? 군자가 그곳에 거하는데, 어찌 누추함이 있을까보냐!”에서 유래했다. 왕양명은 문명 수준이 낮은 곳이라 하여 업신여기지 않았으면, 그곳의 도덕 수준을 인정하고 자신의 도()를 실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왕양명의 용장대오(龍場大悟)가 가능했을 것이다.


君子居易以俟命, 小人行險以徼幸. 군자는 평이한 현실에 거()하면서 천명(天命)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짓을 감행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군자는 자신이 처한 환경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끊임없이 변화()해 나아간다. 이것이 군자의 중용이다. 소인은 노력한 것보다 적게 얻으면 하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탓한다. 그러나 노력한 것보다 많이 얻었을 때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소인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소통하지 않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인은 변화()할 의지도 없으며 변화하지도 않는다.


공자가 속했던 사() 계급은 선비인 동시에 국토를 방위하는 무사였다. 그렇기에 공자는 활쏘기를 예로 들어 도()를 설명하고는 했다. “射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유사함이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활을 쏘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과녁에 도달하게 하려는 행동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화살은 적중(的中)하지 못한다. 힘이 넘치거나 모자라면 화살은 적중하지 못한다. 호흡이 올바르지 못하면 화살은 적중하지 못한다. 따라서 적중하지 못한 이유를 나의 몸과 마음에서 찾아야만 한다. 이것을 지금의 를 바로잡는 것이라 하며, 이것을 수양(修養)이라 한다.


2) 임정자의(任情恣意, 임의대로 하고 자의적으로 한다, 136조목) – 나와 다름을 배척해서는 안된다.

양명학에서는 양지(良知)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며, 나의 양지를 발현하면 선()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사물(事物)과 마주대했을 때, 나의 양지가 발현되었는지 아닌지는 나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주자학자들은 양명학이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하지는 앎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고 행동으로 치닫는다고 비판한다.


양명학을 임정자의(任情恣意. 임의대로 하고 자의적으로 한다)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주자는 박학, 심문, 신사, 명변을 앎()이라 보고, 독행(篤行)을 행위()로 본다. 그리고 주자는 먼저 도덕상의 사리(事理)를 완전히 알아야()만 비로소 이를 완전히 실행(實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주자의 선지후행(先知後行)설이다. 하지만 양명학에서는 박학, 신문, 신사, 명변, 독행 모두를 행위()로 본다. 그리고 양명학에서는 앎과 행함은 본래 같은 것으로서 알고서도 행하지 아니함은 모르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것이 왕양명의 지행합일(知行合一)설이다.


주자와 왕양명 각자는 치밀한 논리전개를 거친 후, 중용 20장의 문구를 해석했다. 왕양명이 지행합일설을 펼치던 당시에는 주자학이 널리 퍼져있었고, 주자학자들은 다른 견해에 대해 반감을 보였다. 그들의 반감은 임정자의(任情恣意)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양명학을 비판하는 주자학자들은 도통(道通)한 사람들일까? ()는 하나가 아니다. 이편에서 저편으로 가는 길은 이편과 저편의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가능성이다. 따라서 학문하는 사람은 경전에 대한 하나의 해석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다양한 해석을 받아들여 나의 내면에서 재해석내어야 자득(自得)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사(子思)가 이야기하는 중용(中庸)이다. 다시 임정자의(任情恣意)의 비판을 되집어 보자. 반드시 먼저 알아야만 행동할 수 있다면, 막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젖을 먹는 법을 먼저 배워야 젖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배고픔을 느끼면(明辯) 엄마의 젖을 온 얼굴이 빨개지도록 절실히 빨면서(篤行) 젖을 먹는 법을 배운다(博學). 이 과정 중의 어디에 임정자의(任情恣意)가 있겠는가?


3) 양지(良知)가 완전히 실현되면, 무수히 많은 세세한 일과 때의 변화에 적용할 수 있다(139조목)

규구(規矩)의 규()은 원형을 그리는 그림쇠이고 구()는 사각형을 그리는 자 모양의 곱자이다. 이 두가지 도구만 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사각형과 원형을 그릴 수 있고, 어떤한 형체이든지 사각형인지 원형인지를 판별해 낼 수 있다. 양지(良知)는 규구와 같아서, 내 마음의 양지가 완전히 실현되면, 사사물물(事事物物)의 세부 항목과 때()의 변화를 속일 수 없어서 세상의 세부 항목과 때()의 변화를 모두 다 응()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많은 경전이 있다하더라도 내 마음의 양지가 살피지 않는다면, 경전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내 마음의 양지의 헤아림 없는 학문은 규구 없이 사각형과 원형을 그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


http://monotsukuri.net/wbt/wbt_kiku/k0106/k0106p11.jpg


출처: 規矩術 (http://monotsukuri.net/wbt/wbt_kiku/k0106/k0106.htm)



4)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색을 좋아하는 일에 지치거나 잊어버리지 않고 한결같이 절실히 한다. 공부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 (144조목)

우리는 공부하는 사람, 즉 학인(學人)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목적은 삶의 길을 찾기 위함이다. 간단한 듯 보이지만, 무수히 많은 길중에 나의 길을 찾는 과정은 길고도 험난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길을 찾다가 자꾸만 한눈을 팔기도 하고, 길을 찾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길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며칠 굶은 사람에게는 배고픔이 절실한 문제이다. 이 사람에게 거친 기장밥을 주면, 기장밥이 부드럽고 달게만 느껴질 것이다. 또다른 예를 들자면,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색을 좋아하는 일에 곤고해지거나 잊어버리는 병을 앓은 적이 없이 다만 한결같이 참되고 절실하게 여색을 추구한다. 두 가지 예에서 보여지듯이 배고픔과 여색처럼 자기 자신의 구체적인 질문를 간절하게 묻고 몸에 가까운 일부터 생각(切問而近思)한다면 중단없이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한 공부를 할 수 있다


5) 왕양명이 도교, 불교와 같은 다른 종교/학문을 보는 관점(162조목)

상대방이 후지고 나빠서가 아니고 나의 장점과 매력을 더 강하게 해서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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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은주님의 댓글

서은주 작성일

공자3대의 이혼문제는 이해가 부족하려 글로 옮길 수 없었습니다. 그리거 나의 양지가 실현되면 나뿐만아니라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은 깜빡하고 누락하였습니다.

서은주님의 댓글

서은주 작성일

하루헌의 사진은 첨부문서에 있습니다. 게시글에 올리미 오류가 나네요. 사진의 용량이 커서 그런듯합니다

문영님의 댓글

문영 작성일

A도 B도 아닌 제 3의 존재되기!!
군자의 중용을 존재의 변증법적 변화로 풀어주시니...중용은 감동입니다!!
은주샘 후기도 감동입니다~~^^

'이대로 살면 안돼?'라며 변화를 거부했던 소인은..ㅜㅜ
왜 변해야 하는지 이제서야 알것같아요.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는데..'나'됨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사건과의 불통(不通)이자 군자가 끊어야할 네 가지(意, 必, 固, 我)에도 해당되는군요.
이게 곧 사욕이라는 거죠. 음..사욕의 정체가 조금씩 벗겨지는군요ㅎㅎ
여전히 A로 남아있는 것, 이것도 사욕이었어요!!

덕현님의 댓글

덕현 작성일

후기로 치양지하신 모습 듬뿍입니다^.^ 사진과 그림까지라...
열심히 하는 샘의 모습, 아주 아주 좋습니다!
공자 3대 이혼은 담에 정리해서 말씀주세요ㅎㅎ

무영님의 댓글

무영 작성일

와~소리 절로나는 수업후기입니다. 수업 내용을 상기하는 정도가 아닌 공부까지 정리해주셨네요.
읽고 놓친 부분까지 떠올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