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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시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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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영 작성일18-11-09 22:37 조회12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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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동락팀은 양명의 전습록을 읽으면서 중용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 주자와 양명도 좋지만 대학중용을 읽는 시간도 참 좋습니다^^ 이번 주 공부한 내용 중에서는 9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중용을 읽는 첫 시간 선생님께서는 ()’의 의미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라고 하셨지요.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한 을 정리해보면, ‘이란 물론 수학적 의미의 중간(middle)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지니 시중(時中)’이요 일상의 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중용은 행하기가 참 어렵지요. 한번 잘 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번의 사건 속에서 새롭게 구현해야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공자 같은 성인도 한 달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했고, 안회는 세 달 동안 인()을 행했다고 엄청 칭찬 받습니다. 중용이 얼마나 어렵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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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국가란 평등하게 다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높은 벼슬이나 후한 봉록도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슬퍼런 칼날조차 밟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용은 능하기 어렵다

국가를 잘 다스리기는 물론 어렵습니다. 하지만 좋은 인재를 찾고 제도와 시스템을 구비하고 세금을 줄이고...해서 다스림의 혜택이 골고루 미칠 수 있게 노력하면... 할 수도 있겠다 이거죠. 부귀영화도 탐나기는 하지만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면 사양할 수도 있겠다 싶구요.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춤추기,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죽어라 연습하다보면 어느 날 성공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중용을 실천하기란 이 세 가지 일보다도 어렵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한번 도달했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매번의 사건을 통해 실천해야 하는 일상성, 항상성, 지속성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의 문제는 양명의 치양지(致良知)’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양명이 말하는 치양지도 매번의 사건을 통해 연마해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주 양명 토론은 마음대로 살아도 될까?”라는 주제로 이어졌습니다. 양명에 의하면 우린 마음대로 살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마음은 내가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그렇게 했어...라고 흔히 말하는데... 아니죠. ‘그렇게한 데에 내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명은 이목구비와 사지를 통해 마음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 모두 너의 마음이다. 네 마음이 보는 것이 눈을 통해 실현되고, 네 마음이 듣는 것이 귀를 통해 실현되며, 네 마음이 말하는 것이 입을 통해 실현되고, 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사지를 통해 실현된다. 만약 네 마음이 없다면 이목구비도 없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모습이 바로 내 마음의 반영이라는 거죠. 내가 돈을 어디에 썼는지 카드사용내역을 확인해보면 내 마음과 욕망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 마음 밖에 이치가 있지 않고 마음에 이치가 있다고 하니 그럼 내 마음대로 하고 살아도 되는지, 그것을 양지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또 그것이 양지인지 사욕인지는 어떻게 구별하는지 등의 문제도 남습니다. 어쨌든 양명은 옳고 그름은 자기밖에 판단할 수 없으며 나의 옳음에 대한 떳떳함, 공공연함이 바로 ()’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자학자들로부터 나의 마음과 천리(天理)가 같다는 걸 증명해 보라고, 나의 옳음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잣대를 제시하라고 끊임없이 요구받습니다. ‘마음이 곧 이치라고 하는 양명의 테제가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라고 비판받는 지점이기도 하죠. 양명빠이신 문샘은 실례를 들어 생각해보면 양명의 철학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고 하셔서 여러 궁금한 점들을 여쭤보았습니다. 사사로움이 상충하는 경우, 욕망대로 살면 편한데 왜 성인처럼 살라고 하는지, 공부는 금욕인가, 욕망의 재배치, 천리를 따르는 삶이 왜 자연스러운지, 공부할수록 더 세고 정치(精緻)해지는 인욕 등등.

선생님께서는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가의 주제와 관련해서 극기복례(克己復禮)’로 결론을 내려 주셨습니다. 안회가 인()을 묻자 공자는 인을 행하는 것(爲)으로, 사사로운 자기를 극복하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묻자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는 네 가지 금지사항(四勿)으로 부연설명해주죠. 표면적으로 보면 금지의 어법입니다. 그래서 보통 ()’라고 하면 갑갑한 금지나 금욕으로 오해하기 쉽죠. 그래서 이 문장을 요로케~ 긍정형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예가 되게 보고, 예가 되게 듣고, 예가 되게 말하고, 예가 되게 행하라!’

양명의 말대로 우린 마음이 듣고자 하는 대로 듣습니다. 평상시에 험담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면 그런 말이 귀에 더 잘 와서 꽂히죠. 예가 되게 들으라는 말은 듣는 행위와 관련해 다른(예에 합당한) 길을 내라는 말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사사로운 마음으로 보지 않으려는 길을 계속 내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예에 합당한 것을 보게 되겠죠.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어도, 보고 듣고 말하고 행하는 행위가 저절로 천리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하지 말라는 금지나 금욕의 길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스스로 길을 내는 생성과 생산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극기복례...뭔가 듣기만 해도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이 짙던 말이 이렇게 해석되니 완전 새롭게 들리네요. 내 마음이 이목구비와 사지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말도 너무 분명해서 더욱 무서운 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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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무영님의 댓글

무영 작성일

문영샘~ 대단하심요! 읽으면서 일이관지가 떠오르네요^^
저는 예가 되게 들어라 예가 되게 보라 등의 말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예로써 보고 예로써 행하는 것과는 다른 것인가 하고요~
사욕을 제거하고 나면 자연히 그리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샘의 후기가 은주샘께 너무나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목요일에 뵈요~

이유진님의 댓글

이유진 작성일

문영샘 수업을 다시 듯는 느낌입니다. 이토록 정리를 잘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도 이제 양명을 알듯말듯합니다.
치양지를 기르는 길은 일상적이고 또 그래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 기준을 극기복례로 삼으라는 말씀을 새겨듣습니다.
마음이 흔들리고 힘들 때 仁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그때에 다음 단계의 문제 해결에
나아갈 수 있는 경험들을 하곤 합니다.
마음을 닦는 공부 어렵지만 조금씩 재미를
붙여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