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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시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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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영 작성일18-09-26 22:01 조회7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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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니 오늘 지금에야 수업후기가 떠올랐습니다. 헌데 수업 내용이 잘 기억이 나려는지 원^^;; 써 보겠습니다.

 

이번 동고동락에서는 송유라는 집합에서 읽어 나간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그래서 생소한 송나라의 학자들을 만나는 시간도 되는 듯 하구요. 익숙했지만 너무나 낯선 주자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대학은 동아시아 고전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고 합니다. 바로 두괄식입니다. 즁요히 다뤄지는 핵심을 앞에 배치한다고 합니다. 주자 이후 텍스트를 보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앞부분에 힘을 쏟아 읽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주자는 물에 이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천하의 이치를 격물해야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 여기서 왜 이치를 알고자 하느냐면 성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주자는 배워서 성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자에게 혹은 송유에게 앎의 의지는 핵심이라 할만 합니다.

 

앎의 의지는 마음에 있다 하겠습니다. 이 마음이 이치를 탐구하고자 했다는 것. 바로 格物致知입니다. 격물하여 이치에 이르다. 다르게는 물의 이치는 아는 것, 지극한 앎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딱 이 지점에서 주자의 근대적 사고를 볼 수 있다고 문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그 이전과 달리 진리는 탐구해서 이르러야 하는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좀더 쉽게는 탐구해야 할 대상(진리)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맥이 쭉~ 이어지다가 이러한 방식에 반동으로 양명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양명은 물과 내가 분리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양명은 내 마음과 사물이 만나는 것에 이치가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주자와 양명이 명확하게 반대되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대척점이 된다는 선입견으로 양명과 주자를 읽어서는 함정에 빠질 듯 합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동고동락에서는 송유라는 집합에서 읽는다는 방향성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텍스트를 읽을 때 자꾸 양명과 주자의 차이를 찾으며 읽게 되는 저를 발견하고는 하거든요^^ 문샘은 양명이 대학을 거부하거나 의문이 있어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양명학은 주자학을 너무나 충실히 따랐고 애정했기에 탄생한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샘은 당시 명대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주자의 책도 많이 읽고 공통점도 다 알고 있는데도 양명은 왜 배척 당했는가라는 점입니다. 그러고 보니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은터라 질문이 참 재미있다고 여겼답니다.

 

3차시에는 無自欺HOT 했습니다. 자기를 속이는 것이 가능한가?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지 못한다는 것. 질문을 바꿔보면 최종적으로 나를 속이는 게 가능한가? 무지한 환경에 노출된 하우? 혹은 의심없는 확고한 어떤 환경에 길들여져 살았다면 무자기는 성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지점은 맹자의 성선설과도 충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이라는 것은 타고난 것이니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이고 선한 것이니 스스로를 속일 수 없다는 쪽으로 방점이 찍힙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선택지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로 바꾸어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에게 털끝만큼의 의혹이 없다는 것이 무자기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쓰다보니 치열했던 수업의 현장이 떠오르네요~ 무엇보다 다른 시간에 비해 덕현샘의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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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은주님의 댓글

서은주 작성일

역시 무영샘이십니다^^ 지난 주 수업이 끝난 뒤, 머리 속에서 무자기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어지더군요. 어려운 개념이라 쉽지 않을 듯합니다. 자꾸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속이고 있지 않을까? 너무도 교묘한 심리방어기제에 홀랄 속고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