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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주희와 왕양명, 2차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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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은주 작성일18-09-18 22:08 조회292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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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강학원|동고동락]s2 앎과 삶-주희와 왕양명, 2차시 후기

2018913일 목요일 오전11~오후4

 

어제보다 더 괜찮은 삶을 위하여

 

오늘 수업이 끝나갈 무렵, 동학 한 분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주자께서 공부에 매진하여 성인(聖人)이 되라고 하시는데, 나는 현재의 나로 만족한다. 왜 굳이 힘들게 공부해서 저 높은 곳에 있는 성인이 되어야 하는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적당히 세상에 물들기도 하고 적당히 깨끗하기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성환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답하셨습니다. “나는 성인을 현대의 기준으로 재해석해 보았다. 현대의 성인은 더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오늘 하루 공부하여 어제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 정말 멋진 말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문성환선생님의 생각에 크게 공감합니다. 저 또한 더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년전  문성환선생님과 함께 연암집을 읽을 때는 연암처럼 참신한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1년반전 전습록을 읽을 때는 양명처럼 내 마음은 밝게 빛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1년전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때는 얽히고설킨 사건을 꿰뚫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2년간의 공부의 결과, 저의 삶은 재정렬되었고 간단명료해졌습니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물에는 뿌리와 가지가 있고, 일에는 끝과 처음이 있다. 그 선후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라는 대학 구절이 저의 삶안에서 점점 더 구체화되어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배워서 성인이 되기를 원했던 주희와 왕양명

 

이번 학기에 우리는 주자(朱子, 1130~1200)와 왕양명(王陽明, 1368~1661)의 사상을 배우게 됩니다. 한 사람은 남송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명나라 사람입니다. 두 사람 모두 사대부(士大夫)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천재의 기질을 보였던 주자는 한미한 가문 출신인데다가 과거 시험 등수가 하위권-주자는 과거시험에 매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이어서 고위 관료로 등용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양명은 명필가 왕휘지의 후손이었고 과거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28세에 중앙관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의 차이로 인해 주자는 관직에 나아가 입신양명(立身揚名)하는 것 보다는 관료(사대부)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기 위해 학문에 매진했습니다. 반대로 양명은 고위관료였던 아버지 양화의 영향으로 귀양을 갔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고위관료로서 평생을 나라를 위해 일했습니다.

 

학자로서의 삶에 더 무게를 둔 주자와 관료로서 삶을 살았던 왕양명, 두 사람 모두 배워서 성인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임금의 아들을 가르키는 군자(君子)를 배움을 통해 범인(凡人)도 도달할 수 있는 인격적 가치로 바꾼 사람은 공자(孔子, BC551~BC479)였습니다. 이와 같은 혁명적인 전환이 천년이 지난 북송(北宋, 960~1127)시대에 다시 일어납니다. 주렴계(주돈이, 1017~1073), 장횡거(1020~1077), 소강절(1011~1077), 정명도(1032~1085), 정이천(1033~1107) 등의 북송오자(北宋五子)는 성인(聖人)을 배움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인격적 가치로 재정의합니다. 북송오자 이전의 성인(聖人)()·순()·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공자(孔子)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었지만, 북송부터는 성인(聖人)은 누구나 배워서 될 수 있는 경지로 대전환됩니다.

 

오늘 일건(一件)을 격()하고 내일 다시 일건(一件)을 격()한 주자

 

금나라의 침략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 주자는 13세에 아버지 주송을 병으로 잃고, 아버지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와 생활을 해나갔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사대부의 의무였던 과거시험을 통과한 후에는 여러 분야의 서적을 읽고 정밀하게 체득(體得)해 나갔습니다. 당시만해도 유학은 육경(六經) 위주의 학문이었습니다. 육경이라 함은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 악기를 말합니다. 관학으로서의 유학은 국가 의례, 제례를 중심이었기 때문에 다수 사대부들이 불교와 도교의 사상에 심취하게 된 것입니다. 유학에서 학문의 목표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점이 주자의 고민이었습니다. 이에 주자는 유학자들의 필독서인 사서(四書)를 출간하게 됩니다. 논어집주, 맹자집주, 대학장구, 중용장구가 바로 사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서는 주자가 만든 것입니다. 유학의 체계를 수립한 것입니다.

 

나는 이미 5,6세 때부터 생각에 잠겨 괴로워했다. 대체 천지사방의 바깥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사방은 끝이 없다고들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는 꼭 끝이 있을 것만 같았다. 예를 들면 이 벽처럼 말이다. 이 벽의 뒤쪽에는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너무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병이 날 것 같았지만 아직도 벽의 뒤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인간 주자』, 미우라 쿠니오, 창작과비평사 13페이지

 

위 글처럼 주자는 처럼 한정(限定)된 세계에 익숙했던 듯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기(禮記)의 한 편이었던 대학(大學)을 분리하여 주석을 달 때도 작은 것인 격물(格物)부터 큰 것인 평천하(平天下)까지로의 합리적으로 촘촘한 공부의 체계를 제시합니다. 사서(四書)를 만든 목적도 성인이 손길이 닿은 육경(六經)에 이르는 사다리로써 공부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는 주자가 제시한 공부의 사다리를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올라가야 했습니다.

 

주자의 학문에 크게 영향을 준 사람은 이동(연평선생, 1093~1163)입니다. 주자 24, 이동 61세에 만나 이후 10년간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동은 불교의 선에 빠져있던 주자에게 성현의 말씀에 집중하라고 권고합니다. 이동의 학문 방식은 오늘 일건(一件)을 격()하고 내일 다시 일건(一件)을 격()하여 격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 저절로 탈연관통처(脫然貫通處)가 생기게 된다였습니다. 이동에게 사사(師事)받은 주자 역시 같은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주자가 격물(格物)을 물()의 리(, 원래 그런 문양)를 궁구(窮究)하여 물()에 이른다()라고 해석하게 된 이유입니다(『사부의 시대』, 고지마 쓰요시, 동아시아, 129페이지)

 

외물과 접촉하는 현장에서 스스로 마음을 올바르게 갖추어가고자 한 왕양명

 

주자에 의해 제시된 학풍은 주자학이라는 이름으로 원()나라에 의해 국학으로 채택됩니다. 왕양명은 명나라 건국 100년 후에 태어납니다. 이미 주자학은 널리 퍼졌을뿐만아니라, 과거시험도 주자가 출판한 사서(四書)에서 출제되고 있던 시대입니다. 왕양명 또한 배움을 통하여 성인(聖人)이 되고자 전력을 다해 주자학을 공부했습니다. 주자의 격물론에 감격하여 대나무 앞에서 7일간 쉬지 않고 격물하였지만, 병만 얻고 끝나버립니다. 이에 왕양명은 크게 실망합니다. 이 이야기는 주자와 왕양명의 기질의 차이를 뚜렷이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깊은 사유(思惟)를 먼저하고 체인(體認)하고 했던 주자와 사유와 체인을 동시에 하려 했던 왕양명의 차이는 왕양명이 귀양지인 용장에서 얻은 큰 깨달음으로 극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을 용장대오(龍場大悟)라 하며, “()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갖추어져 있으며 외부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사부의 시대』, 고지마 쓰요시, 동아시아, 55페이지)”가 그 내용입니다. 왕양명의 나이 37세때의 일입니다.

 

왕양명은 격물(格物)이란 물()을 바로잡는다()로 해석합니다. , 외물(外物)이 아닌 마음()의 문제로 전환시킵니다. 이에 따라 치지(致知)는 맹자가 말한 양지(良知)를 저절로 드러내게 하는 것(致良知)으로 전환됩니다. 격물에 대한 해석 차이가 3강령(明明德, 親民, 止於至善)에 대한 해석에도 영향을 주어, 주자가 신민(新民)이라 주장했던 강령이 친민(親民)으로 복구되기도 합니다.

 

()은 성()을 갖추고 정()이 움직이고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왕양명에게는 학문에 단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외물을 접촉하는 현장에서 스스로 마음을 올바르게 갖추어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몸에 익혀가는 사상마련(事上磨鍊)의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성인(聖人)을 깨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의(誠意)와 신독(愼獨)

 

왕양명의 치양지(致良知)와 사상마련(事上磨鍊)를 통해 성인(聖人)이 되려면 성의(誠意)가 중요해집니다. 대학(大學) 에서는 성의를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무자기, 無自欺)”이라고 말합니다. 악취를 맡으면 싫어하고 예쁜 여자를 보면 좋아하듯이 자가자기의 좋고 싫음을 명확히 하여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의 경험을 토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오래 전에 남편 친구 가족들이 강남의 한 집에 모였습니다.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곳이었습니다. 남편 친구 부인 중에 한 명이 저에게 이런 집에서 살고 싶지 않냐고 물어봤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지만, 왠지 속물처럼 보일 것 같아서 서울은 복잡해서 살기 싫다고 대답했습니다. 저의 감정을 속인 것이지요. 하지만 저를 속였을지언정 제 앞에 있는 사람까지 속이지는 못했나봅니다. 남편 친구의 부인이 그러더군요. “돈이 없어서 여기에 살지 못하는 것이지 않느냐?” 그 순간 저는 몹시 창피했습니다. 스스로를 속인다해도 남까지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들은 것이지요.

 

이런 까닭에 뜻을 정성스럽게 하려면(誠意), 신독(愼獨)이 되어야 합니다. 신독이란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 혼자 있을 때에도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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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언가를 배우고 때맞추어 그것을 복습한다면 역시 기쁘지 않겠느냐?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역시 즐겁지 않겠느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답지 않겠느냐?"

『논어』학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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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문릿님의 댓글

문릿 작성일

오홋!! 깨알 레고 같은 후기!! 촘춤하네요.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다른 동학들이 긴장해서.... 더욱 열심히 하겠군요!!ㅋㅋ

이유진님의 댓글

이유진 작성일

은주샘이 자세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셔서 지난 시간에 빠진 수업내용을 보충할 수 있는 것 같네요.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라는 은주샘의 생각에 많이 공감합니다.
저 또한 오늘 보다 내일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랄 따름입니다.
후기 감사합니다.

문영님의 댓글

문영 작성일

주자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들이 하나씩 깨져가는 기쁨이 있네요.
은주샘의 공부열정이 주는 긴장감도 좋구요 ㅎㅎ

서은주님의 댓글

서은주 작성일

아효! 벌써 제 글이 구립니다ㅠㅠ 글을 쓰면 제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책을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해 보기도 합니다만, 여전히 "어제의 저"는 "오늘의 저"보다 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