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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11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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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다솜 작성일18-05-28 16:56 조회29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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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시간에는 사기 열전 , 후반부를 읽었습니다.

  격동적이었던 춘추전국시대는 지나가고, 짧지만 강렬했던 진나라도 지나가고, 여태후와 같은 인물이 돋보였던 한나라 초기도 지나가고, 이제 태평성대를 이뤄낸 문제·경제 때의 인물들에 대해서 알아본 시간이었습니다.

  ‘장석지풍당열전에 등장했던 장석지는, 문제 때 사람인데 정위(형옥을 관장하는 최고 직책)’를 맡은 인물입니다. 장석지는 원칙주의자였습니다. 문제가 수레를 타고 다리를 건너던 중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와 수레의 말을 놀라게 해, 문제가 다칠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정위에게 이 사건을 맡겼는데, 정위는 법률에 따라 벌금형을 내립니다. “법률이란 황제와 천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준수해야 하는 것입니다.”라며,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어 천하 사람들에게 법률을 적용할 때 임의로 혹 무겁게 하거나 혹 가볍게 적용한다면 백성들은 어디에 편안히 손발을 둘 곳이 있겠습니까?”라며 말입니다. 문제는 장석지의 말에 수긍합니다.

  이어지는 만석장숙열전에서도 이러한 관리들이 등장하는데, 문제 때 태중대부를 맡았던 만석군에 대한 서술은 이렇습니다. “그에게 문재(文才)나 학문은 없었지만 그러나 공경심과 신중함은 그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건릉후 위관은 어사대부·승상의 직책까지 맡은 사람이었는데, 그에 대한 서술은 이렇습니다. “사람됨이 충후하고 언행에 신중하였지만 다른 재능은 없었다.”

  앞 시대에서 너무나도 스펙타클한 인물들을 많이 봐서인지, 사실 이 열전들을 읽으면서 심심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냥 능력이 뛰어난 인물들인 것 같은데... 왜 굳이 열전에까지 적었지..’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문제-경제 시대는 태평성대의 시대였고, 일구어놓은 것을 유지하고 잘해내면 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원칙이나 직분을 지키는 사람들이 도드라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때문에, 활약했던 인물들이 이전의 시대에 비해 심심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상대적으로 대인보다는 소인들의 시대였습니다. 내 능력을 최대한으로 펼쳐볼 수 있는 시련 자체가 덜 했던 시대였습니다. 이렇듯 시련은 나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장이 되어줍니다. 태평성대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뭔가 좋은 게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게 마냥 나쁜 것도 아닌 그런 느낌이에요. 새옹지마!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리고 저는 흉노가 제일 재밌었는데요, 일단 읽고 든 생각은 너무 간단해서 좋다!’였어요. 형벌도 간단한 원리(?)를 따르고, 적의 목을 베온 사람에게 직접 술을 하사하고, 또 자기가 노획한 노획품은 자기가 갖고. 또 적군과 싸울 때 자신의 이득을 바라고서 막 모여들지만, 지겠다 싶으면 바로 도망가고. 그리고 전쟁을 할 때에는 별과 달의 모양을 관찰하고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굉장히 자연의 흐름에 밀착(?)된 삶을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흉노가 정말로 중국을 많이 침략했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요. 사실 침략이라는 단어 자체가 흉노 입장에선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유목민들은 영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풀을 찾아서 나아갈 뿐입니다. 유목민들이 동과 서를 왔다 갔다 하며 나아갈 때, 중국이 북쪽으로 세력을 키우면서 유목민과 맞닥뜨리는 지점을, 중국 입장에서는 침략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유목민들은 그냥 하던 대로 유목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완전 정주민의 시각에서 유목민을 바라봤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유목민들에게는 국가라는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그 부족이 싫다면 그냥 바로 떠나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목민의 수장, 되는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사로잡아야했었는데요.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카리스마같은 것, 그리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관계였다고 해요. 예를 들면 흉노열전에 나오는 그들의 약속은 간편하여 실행하기가 쉽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간단하고 쉬워서, 한 나라의 정치는 흡사 한 집안의 일과도 같다”. 이런 대목이 그러한 관계를 보여주지 않나 싶어요. 물론 저게 전부는 아니지만요...ㅋㅋ

 이제 마지막 하 편만 남았네요 벌써...! 그리고 마지막 에세이! ㅎㅎ..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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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유진님의 댓글

이유진 작성일

다솜샘이 정리를 해주었듯이 초한지쟁과 한나라 초기의 혼란기의 인물들은 선이 굵고 기가 센 인물들이었지만 문경치지 태평성대에는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기 보다는 충효와 같은 유교적 가치에 충실하고 신중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마천은 이 시기의 대표 인물로 장석지, 만석군, 전숙등을 배치하였는데 이런 문관형 인물들이 태평성대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오왕비열전에서는 오초칠국의 난을 다루었는데요. 오왕 비는 그래도 반란다운 반란을 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유방의 조카벌이니 난세의 거인의 풍모가 조금은 남아있어 대담한 행동파였습니다. 오초칠국의 난을 계기로 한나라는 봉건제의 잔재를 한번 더 지우며 중앙집권을 강화해 나갑니다.
흉노열전도 재미있었습니다. 유목민족은 농경민족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사마천은 내시 중항렬의 견해를 써 흉노의 관습과 특성을 설명하려 하였습니다만 정착민의 시각에서 본 흉노라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중국의 역사를 더 공부하다보면 그들을 더 이해하게 될 기회가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