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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9주차 수업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무영 작성일18-05-14 11:40 조회539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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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시 후기입니다^^


대륙의 선물을 품고 피곤을 품고 줄자샘과 문성환샘이 무사히 귀환해주셨습니다. 수업이 진행되는 그 날의 날씨가 좋아 야외수업도 괜찮겠다 싶은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열의에 찬 동학들과 피곤에 찬 문샘은 공간에서 사기를 불태우기로 했습니다^^


수업은 네 명의 공자 중에서 신릉군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조나라가 장평전투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나라는 다시 진나라의 위협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주변국은 진나라의 으름장에 섣불리 조나라를 돕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릉군이 있는 위나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신릉군은 조나라의 평원군으로부터 계속 된 SOS 전보를 받습니다. 신릉군의 누이가 조나라 평원군의 부인인 까닭입니다. 또 평원군은 공자의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은 까닭은 공자가 ‘의리가 고매하여 다른 사람의 급한 곤란함을 구해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신릉군은 위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의 식객들을 청하여 조나라고 떠납니다. 그리고 위나라의 노장 진비를 죽이고 그 군사를 빼앗기까지 합니다. 결과적으로 신릉군의 선택으로 조나라는 한 숨 돌릴 수 있었고 진라나의 동진을 잠시나마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릉군의 선택에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신릉군의 선택을 옹호할 수 있으나 당시로 신릉군의 선택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진나라는 조나라를 돕는 나라는 조나라 다음으로 초토화를 공표한 상황이었고 위왕 역시도 나라의 안위를 위해 진비로 하여금 양다리를 걸치게 했던 것입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나라의 명장을 불명예스럽게 죽이면서까지 선택한 신릉군의 출정. 저는 신릉군의 선택이 위나라를 위함도 아닌 것 같고, 진나라의 동진을 막아내기 위함도 아닌 것 같고, 누이를 위해서만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신릉군은 위나라 왕가의 핏줄입니다. 그렇다면 나라와 백성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신릉군은 자신의 명성을 수 천 수 만의 목숨보다 중하게 여겼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샘은 신릉군의 선택을 큰판도에서 볼 때 도덕적 잣대로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또 문쌤은 사마천이 쓴 신릉군의 이야기 배치를 볼 때 군의 사람됨에 대한 일화들이 앞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과 신릉군이 당장의 사건 앞에서 얼마나 갈등하고 얼마나 절박한지에 대한 상황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평하셨습니다. 후기를 정리하면서 신릉군을 도덕적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는 측면에서 고려한다면 자신의 명성과 명예를 즉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그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어떤 대의명분을 위한 선택보다 인간적인 신릉군의 선택이 더 어려운 길이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신릉군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면서 경혜샘계서 비용지불에 대한 생각을 말해 주었습니다. 신릉군이 일을 벌임으로써 댓가를 지불하겠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럴 수 없음을 지적해주었습니다. 경혜샘은 신릉군이 결과와 상관없이 사심 없이 밀어 붙이는 마음이었기에 또한 가능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예리하게 봐주셨더라구요^^


신릉군의 식객인 후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 시간에 이어 객이라는 것이 다시 이야기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감각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관계맺음의 방식이라는 점이지요. 후생은 신릉군에 계책을 주고 진비를 죽일때쯤 그 계책에 대한 책임을 자결로써 마무리합니다. 식객으로서의 계책이기도 하지만 공자를 위한 계책을 낸 후생은 위나라에 남아 댓가에 대한 책임을 자결로 완수합니다. 죽음으로써 공자에게 빚을 갚고 그 이상을 공자에게 더 주고 떠났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공자가 식객인 후생에게 더 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혹은 후생이 그럼으로해서 공자인 신릉군과 동일한 관계로 마무리 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뭐~ 이런 질문도 정리하면서 해보아 적어 보았습니다^^


어쨌든 중국 역사에서 객이라는 것은 독특한 문화라는 점, 그리고 계급 사회에서 권력관계가 유지되는 한 형태라는 점, 당시 공동체에서 실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자객열전」과 맥락이 닿았습니다. 자객은 단순한 킬러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관계맺기 방식에 있어서 지인한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나를 알아보는 주인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것! 이 부분에서 문샘은 우리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려고 살아~ 사는 이유가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 하나 만나서 사는 인생이 다 일수도 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문샘의 이 말씀은 제게 또 망상을 하게 했습니다^^ ‘너는 앞으로 먼지처럼 살아, 그렇게 살아’ 라는 영화대사가 언뜻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흔적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살고자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쓰임을 다 할 수 있게 알아봐 주는 이가 있다면! 어쩌면 《사기》에서 주요한 키워드는 지인이 아닐까? 이번에 읽은 여불위가 범수가 신릉군이 춘신군이 그렇듯이~ 생각해보니 《사기》에는 지인하고 지인당함으로써 당시의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뜻밖의 사건과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음~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많은 양을 채웠네요^^ 그만 써도 되겠다 싶었는데 범수를 빼놓았네요^^ 범수는 우리 모두 재미있게 만난 인물이었는데~ 범수에 대한 것은 댓글에 패스~ 동학들이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놓는 것으로^^ 범수를 이야기할 때 문샘이 위나라는 어지간히도 지인하지 못해 ‘인재를 많이 놓친 나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듣고보니 그렇더라구요^^ 그 득은 진나라가 본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댓글을 기대하며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다음 주는 열전 중 「원앙조조열전」까지 읽어도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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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무영님의 댓글

무영 작성일

음~~ 글쓸때 한글에서 쓰고 메모장에 붙여 넣었다가 복사해 여기로 붙여넣으면 형식이 바뀐다고 말해주었던 같은데 ㅠ..ㅠ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요? 담시간에 말해주시면 역시나 적어 놓아야 할 듯요~

문영님의 댓글

문영 작성일

전 ‘자객’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런 직업군(?)이 공공연하게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예사롭지 않은 그들의 태도에 또 한번 놀라게 됩니다.
먼저 노나라 장군 조말입니다. 3전3패하고 도주한 장군으로 땅도 많이 빼앗겼습니다. 체면이 안설 수도 있는데 참 당당하더군요. 노장공과 제환공이 화친의 맹약을 맺고 있는 자리에 비수를 들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제환공을 위협해 뺏긴 노나라의 땅을 도로 빼앗아 오는데요. 경비도 삼엄하고 옆에 쟁쟁한 호위무사가 그득했을텐데...환공 좌우의 어느 누구도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대사를 치루고 내려온 조말 역시 ‘안색은 조금도 변함이 없고 말소리도 여전하였다’고 하니...그의 모습이 얼마나 용맹스러웠는지 상상이 됩니다. 앞에 세가를 읽으면서 몇 번 조말의 사건이 나왔었는데, 그 당시에도 인상적인 사건이었나 봅니다. 목숨을 해하지 않고 위협만으로 얻고자 하는 바를 얻어냈으니 ‘최상의 수확(396쪽)’을 거둔 자객이었습니다.

다음은 진나라 예양입니다. ‘나를 알아봐준 사람을 위해서 원수를 갚겠다’는 예양도 멋지지만 상대편 자객의 의로움을 알아봐주고 복수를 완성시켜준 조양자의 태도도 멋집니다. 예양의 친구가 묻습니다. 조양자에게 먼저 접근하면 넌 분명히 총애를 받을 것이고, 그와 친해진 다음 원수를 갚으면 훨씬 쉬울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요. 그런 방법은 자기가 섬기는 사람에 대해 ‘두 마음’을 품는 것이기 때문에 예양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답합니다. 예양의 답변 하나하나에 멋짐이 묻어납니다. 복수에도 품격이 있음을 보여줬달까요..

섭정의 고사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원칙이 분명합니다. 노모가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절대 자객으로 살지 않겠다는 원칙, 임무완성 전에는 어떤 예물도 받지 않겠다는 원칙, 시집간 누이를 위해 죽어가면서 스스로 자신을 지워버리는 원칙...헌데 그 누이가 달려와 ‘내 어찌 죽음의 화를 두려워하여 동생의 장한 이름을 없앨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울부짖으며 죽었다고 하니...누이를 살리고자 했던 섭정의 원칙은 깨졌지만 그로 인해 <사기>에 이름을 남긴 형제가 되었네요.

형가 고사에서는 형가도 형가지만 연나라 은사인 전광이 생각납니다. 비밀누설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바로 자결을 감행하다니! 읽다가 깜놀!했어요. 익숙해질만도 한데ㅎ 또 연나라 옥토의 지도를 들고 형가의 조수로 간 진무양. 진시황앞에 서자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떱니다. 아무리 자객이라지만 얼마나 떨렸겠어요. 현장의 긴장감이 전해집니다.

문릿님의 댓글

문릿 댓글의 댓글 작성일

오! 멋진 정리, 깔끔합니다!!^^

문릿님의 댓글

문릿 작성일

지난주 이탁오의 <분서>를 읽다가, 이탁오가 후생의 자결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이탁오는 특별하고 독자적인 역사 해석에 일가견이 있었고,스스로 자부했었는데요. <분서>에 따르면, 후생의 자결은 '주해'와의 관계에 핵심이 있었습니다. 주해는 신릉군의 식객이 아니었고, 식객이 아닌 주해에게 진비를 죽이게끔 한 것에 대해 후생이 자신의 목숨을 걸어 의를 지킨 것이라는 ... (정확한 워딩은 지금 책이 없어 확인이 어렵지만, 대강 이런 이야기였어요. 맛이 있는 해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책들을 읽다보면 아마 우리가 읽어온 <사기>는 겨우 한 줄기를 따라가고 있는 것일테지만, 그래도 확실히 <사기>는 재미있고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이번 팀이 재미있게 읽어내주고 있는 덕도 물론 큰 듯하지만!^^ 그래서 그랬는지,
다른 때 같으면 전혀 귀에도 안들어왔을 야외 수업 이야기는....줄자샘 말마따나 우리가 <사기>라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조금, 아주 아주 잠시 해보긴 했음. 하지만!!! ^^ 스피노자룸에서 보십시다요!!

소민님의 댓글

소민 작성일

책과 필기해놓은 것이 (지금ㅠㅠ) 없으나... 그래도 댓글을 달아봅니다^^

저도 문영샘과 마찬가지로 자객열전이 눈에 띄였어요. (태교 중) 이러면 안되는데... 너무나 잔인한 것들, 충격적인 사건들이 기억에 오래 오래 남는 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전 지난시간에 '지인' 사람을 알아보고, 또 알아봐준다는 것이 기억에 남아요. 도대체 사람을 알아봐준다는게 뭐길래 목숨을 바치나? 이런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죠. 제 머릿속에는 "지인 < 목숨" 요런 코드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문샘께서 지인을 요즘 감각으로 끌어오시니 이해가 조금 되더라고요. "평생 찐-한 사랑한번 해봐야하지 않겠어?" 바로 요 이야기요ㅎ

정리해보자면, "지인"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이 그 당시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키워드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이제껏 어떤 가치로 살아왔나, 돌아보게 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