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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세미나 8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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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줄자 작성일18-05-07 20:09 조회370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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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사실 지지난 주) 사기 세미나는 <<사기 열전>>의 첫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부분에서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맹상군 열전>이었습니다. 맹상군 전문(田文)은 아버지는 귀족이나 천한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아버지한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아버지의 예우를 받게 되어 그는 아버지의 빈객들을 대접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그가 관리하자 빈객은 나날이 들고 명성도 자자해지고 제후들의 인정도 받게 됩니다. 이제 전문은 아버지의 40여 명의 아들들 중에서 후계자가 됩니다. 맹상군 부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객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빈객이라는 이미지는, 능력이 없어 남의 집에 얹혀 사는 사람입니다. 이 당시의 빈객도 부유한 사람의 집에 의탁해 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오늘과 당시의 차이점은 빈객과 주인의 사이가 오늘의 부자 입장에서 자선사업이나 동정의 마음, 혹은 빈객 입장에서 무능력하여 부자한테 기대어 사는 관계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유한 사람은 빈객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습니다. 빈객도 집주인을 상전으로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 예의를 갖추며 계급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돈으로 사람을 사는 것이 아닌, 상호 신뢰 안에서 우정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전문은 이러한 관계를 더욱더 풍부하게 할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가 아버지의 빈객을 맞는 일을 하면서 그 숫자가 수 천명이 되었고, 자신이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았을 때 빈객이 3천명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빈객을 귀천의 구분 없이 한결같이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p216)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빈객들이 결국 그의 삶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게 되고 도움을 받게 되고, 그의 이름을 떨치게 합니다. 비록 그의 삶이 평탄치는 않았지만, 그가 빈객들과 나눈 우정 덕분에 그의 삶이 더 풍성해 졌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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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유진님의 댓글

이유진 작성일

사기 8주차는 열전 상권의 전반부를 공부하였습니다. 큰 줄기를 잡은 본기. 그 틀안에서 각 세력의 흥망성쇠를 다룬 세가, 그리고 그 틈새를 메우는 느낌으로 인물을 다룬 열전은 양은 많았지만 디테일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본기와 세가를 읽고 어느정도 인물과 사건에 대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본기와 세가를 읽을 때도 전국시대 말기의 혼란한 시대에 각 제후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합종과 연횡으로 동맹관계가 복잡한 부분을 읽을 때면 머리속이 복잡해져서 흐름이 끊어질 때가 많습니다. 이부분을 읽을 때 힘들 때가 많은데요.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정말 다양하고 탁월한 인물들이 사기에 많이 등장합니다.
소진과 장의를 읽으면서 처음 본기나 세가를 읽을 때는 그들의 박식함, 천하의 정세를 읽는 감각, 유세가들이 각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재능을 어필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독특하고 멋졌었는데요. 이번 열전을 읽으면서는 이들이 세상을 마치 장기판처럼 생각하고 즉흥적이고 단지 이기기 위한 술수에 치중하는 것 같이 보여 사상가로서 좀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샘은 이들 종횡가는 공자, 맹자와 같은 춘추시대의 다른 사상과 들과 비교하면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의 차이 같다고 하셨습니다. 사마천은 이들 종횡가에 대해 아주 많은 분량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맥락에게는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바로 쓰일 수 있는 처세 철학이었겠지요. 읽을 때마다 조금씩 제 생각이 왔다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문영님의 댓글

문영 작성일

8주차 내용중에서는 '노자한비자열전'이 흥미로웠습니다. 극도의 무위를 지향하는 노자와 극도의 유위를 표방하는 한비자를 한 데 묶어놓은 사마천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문샘의 설명을 듣고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 당시 제자백가는 학파적 배타성이 심하지 않았고 넘나듦이 자유로웠던 것 같네요. 노자를 가장 적극적으로 읽은 버전이 한비자였다는 사실도 놀라웠습니다. '무위'가 도덕경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혹은 노자가 독점했던 사상이 아니라 그 시대 혹은 이전 시대부터 있어왔던 보편적인 개념이자 전통이었다는 점도 새로웠습니다. 무위에는 현실을 떠나 무위자연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만,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사상이었다고 합니다. 무위를 정치적이고 합리적인 법으로 구현시키고자 햇던 인물이 한비자였다고 하니 노자와 연결지점이 보이는 듯도.. 제자백가에 대해서 다시 상상해봐야겠습니다.

인물 중에서는 ‘관중’이 기억에 남네요. 친구인 포숙아보다 이익을 더 많이 챙기고(얍삽하죠), 전쟁에서 패하자 도망치고(비겁합니다), 공자 규와 왕위를 다투다 패했음에도 공자 소백(제 환공)이 부르자 그 밑에서 벼슬을 한 점 등 이기적이고 뻔뻔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관중은 그런 사사로운 수치심에 갇히지 않고 천하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제나라가 제후들 사이에서 위엄을 떨치지 못할까 그걸 부끄러워했습니다. 이 점이 관중을 관중이게 만든 것 같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지점이 달랐던 것이죠. 자신을 그토록 알아봐주고 이해해주는 포숙 같은 친구가 있다는 점도 관중의 큰 복이었구요^^ 요즘 ‘나의 아저씨’란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는데...“나라도 죽였을거야”.. 최고의 이해이자 위로가 된 한마디였죠!ㅎㅎ

무영님의 댓글

무영 댓글의 댓글 작성일

와~ 샘~ 드라마까지 챙겨 보시다니 능력자이십니다^^
관중 부분을 읽으면서 저도 밑줄을 그었던 부분이었거든요~ 그런 관중이 참으로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관중을 알아본 포숙아는 더 비범한 사람인 것 같아요. 포숙은 자신의 쓰임과 한계를 알았고 인정하면서 관중의 능력을 알아보고 쓰이게 한 것! 이 정도로 알아주어야 관포지교라고 하는 건가 싶었어요. 포숙아도 개인의 욕망이나 시기가 있었을텐데 그런 것은 다뤄지지 않았고 다른 공자를 추대하면서 목숨을 건 경쟁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이 짐작이 되지 않는 관계이며 포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