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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영 작성일18-04-20 20:40 조회17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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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강학원/동고동락 사기/2018.4.19/양문영

                                       지혜로운 왕과 어리석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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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목공과 송양공

나라는 서북쪽 변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지만 여러 왕들의 노력으로 춘추전국시대에 강대국이 될 수 있었고 그 중심에 진목공(秦穆公)이 있다. 그는 나라 공자 이오가 본국에서 왕이 될 수 있게 재상 백리혜를 시켜 호송해 주었지만 왕이 된 이오는 약속했던 땅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해 나라에 가뭄이 들자 목공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진목공은 이오의 처사는 괘씸했지만 이는 백성의 잘못이 아니라며 식량을 원조해준다. 몇 년 후 이번엔 나라에 가뭄이 든다. 에 도움을 요청하자 이오는 기근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쳐들어온다. 이렇게 매번 뒤통수치는 이오를 역사가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이제 잔머리 쓰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오가 어떻게 망하는지 지켜보자는 심산으로 다음 페이지를 읽었지만 웬걸 역사는 우리의 기대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진목공이 이오에게 붙잡혀 목숨이 위태롭다. 아니 어째 이런 일이? 목공은 이대로 죽는 것인가?

여기서 뜻밖의 반전이 일어난다. 바야흐로 1년 전, 나라 시골사람 300여명이 배고픔에 지쳐 진목공의 양마(良馬)를 훔쳐 잡아먹었다. 관리가 그들을 체포하여 벌주려 했지만 짐승 때문에 사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목공이 그들을 사면시켜 준 일이 있었다. 바로 그 300명의 시골사람들이 이번에 필사적으로 秦軍을 도와 퇴로를 마련해 줌으로써 진목공은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진목공은 이런 도움을 예상하고 양마를 훔친 사람들을 사면시켜 준 것인가? 나라의 기근을 틈타 이오가 쳐들어올 줄 미리 알았더라면 그래도 진목공은 이오의 나라를 도와줬을까?

송양공(宋襄公)의 고사는 송나라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대변하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송양공은 초 성왕과 홍수에서 교전을 펼친다. 초나라 군사들이 미처 강을 건너지 못했을 때는 강 건너기를 기다리느라 공격을 안 하고, 강을 건너왔을 때는 전열을 갖추기를 기다리다 그만 공격을 기회를 놓치고 대패한다. 게다가 송양공은 그 교전에서 부상을 입고 그로 인해 죽는다. 이 고사를 읽을 때에도 서로 속고 속이는 병술보다 예의를 다한 송양공이 이기는구나, 하는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송양공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봐야할까? 송양공의 태도는 예의를 지켰다는 면에서는 훌륭했다. 만약 싸움에서 이겼다면 그의 태도는 두고두고 멋진 모습으로 회자되었을 것이다. 졌다는 결과 때문에 그의 태도가 평가절하된 것은 아니었을까? 예의의 병술을 버리고 이기기 위해서는 그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을까?

 

천도는 있는가

진목공이 이오에게 잡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면 역사는 뭐라고 평가했을까? ‘이오에게 한번 속았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두 번 속지는 말았어야지 어리석게 또 그를 믿고 식량을 원조해 주다니. 먹고 먹히는 살벌한 춘추시대에 혼자 군자인 척 하다가 당했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았을까? 양마를 훔쳐 먹은 시골사람들이 실제로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목공은 목숨을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송나라가 이겼다면 역사는 어떻게 기록했을까? 신사다운 면모로 무장의 의리와 품격을 보여준 송양공의 태도를 두고두고 칭송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분명한 건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고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릉의 사건에 연루되어 그를 원조해야 한다고 변호한 사마천. 한고조가 총애했던 이부인의 오빠 이광리 장군이 실세임을 알고 그의 편에 붙어 이릉을 역적으로 몰아간 신하들. 사마천이 보기에 그들은 분명 간신이었다. 하지만 사마천은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 무망죄를 선고받았고 그들은 승승장구한다. 이토록 분하고 억울할 수가. 세상은 왜 이렇게 돌아간단 말인가? 권력에 아부하고 빌붙는 저런 자들이 어째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잘 사는 것일까? 도대체 천도(天道)란 있는 것인가? 사마천은 이 질문을 붙잡고 역사를 써내려간다.

하지만 사마천이 보여준 역사 그 어디에도 천도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누가 더 계략을 잘 세워 이길 것인가, 패권을 쥘 것인가,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긴 자의 마음대로 세상은 굴려가고 천도 따윈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진목공으로 돌아가 보자. 그래도 진목공은 잘 풀린 케이스다. 단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하늘이 패자로 점찍어놓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무리 하늘이 예비해 놓은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목공이 패주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인데 그중에서도 백리혜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진목공은 멸망한 우나라의 대부 백리혜를 데리고 온다.

 

...계속 하문하며 백리혜와 삼일간 담론하였다. 목공은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국정을 맡기고 그를 오고대부(五羖大夫)에 임명하였다.

                                                                                                                                                               (사기본기, 진본기, 118)

 

이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진목공은 백리혜와 삼일간 어떤 얘기를 나누었을까? 무슨 얘기를 나누었길래 크게 기쁘다고 했을까?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다음에 일어난 일과 대처방법을 보면 짐작해볼 수는 있다. 이 둘은 그날 머리를 맞대고 백성을 위하고 사람을 살리는 나라를 만들어보자며 신나게 얘기를 나누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오를 돕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여길 때는 이오를 도왔고, 기근으로 고생하는 이웃나라 백성을 위해서는 양식을 보내주었고, 중이를 돕는 것이 천도라 여길 때에는 중이를 도와 진문공으로 세웠다. 그때그때 천도라 여겨지는 일에 마음을 다해 응했을 뿐이다. 목공에게 양마는 소중한 재산 그 이상의 의미였지만 배고픈 자들의 배를 채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술을 주며 그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위로해줬지 거기에 어떤 계산도 끼어들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매 사건과 만났을 뿐이다. 그런 마음이 시골 사람들의 마음 또한 움직였지만 필연적인 결과는 아니었다. ‘천도가 따로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글쎄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오늘 나에게 닥친 사건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애쓰는 문제이지 하늘의 뜻이 어디에 있나 찾아가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세미나에서 우리가 거듭 발견했던 것은 옆에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리더라는 것이었다. 진목공과 백리혜, 제환공과 관중, 월왕 구천과 범려, 유방과 여러 신하들. 공통적으로 그들 곁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에서 좋다는 뜻은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바른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또한 귀한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안목과 귀하게 쓸 줄 아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군주가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음을 우리는 사기를 읽으면서 확인했다.

송양공이 택한 예의의 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송양공은 일개 개인이 아니라 제후국의 왕이었다.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있고 다스려야 할 나라가 있는 왕이다. 매번의 싸움은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고 나라를 빼앗길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예의를 지켜 싸움을 하는 것이 백성들의 목숨이나 나라의 운명보다도 중요한지 질문해볼 일이었다. 송양공이 미련한 왕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싸움에서 진 결과 때문이 아니었다. 예의를 지키는 것과 싸움에서 이기는 것 사이에서 제대로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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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문영님의 댓글

문영 작성일

전 일단 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점에 있어서는 칭찬을 받았어요ㅎㅎ
이전의 글들이 ‘음...물 흐르듯 자연스럽고...음...좋은 말이긴 한데...음...재미가 없었다’면 이번엔 재밌었다구요!! 히히 그리고 저의 고민이 보여서 좋았다구요^^ 하지만!!
첫째, 제목이 영~~아니다. 네. 끝까지 제목을 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우화 같은 제목을 달았는데요. 소제목도 그렇구요. 마지막 소제목은 붙이지조차 못했죠. 제목을 정하지 못했다는 건 논지가 분명하지 못하다는 뜻이죠. 그래서 뒤로 갈수록 글이 흔들립니다.
둘째, 글의 주제가 뒤로 가면서 두 갈래로 나뉜다는 지적을 해주셨어요. 미래,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삶은 예상과는 다르게 펼쳐지고, 게다가 예를 다하고 훌륭하게 잘 살았던 사람들이 불행한 말년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천도는 있는가? 사마천의 이런 질문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데요. 거기까진 잘 가다가 뒤에 백리혜 얘기를 끌고 오면서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주제로 넘어가 버렸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게 천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결고리가 부족하다구요. 
셋째, 마지막에 제가 내린 송양공에 대한 평가는 이 글 처음에 던진 질문과 상충한다는 점도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 그걸 다시 질문해봐야 한다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송양공이 살았던 춘추시대는 아직 예가 남아있던 시기다. 전국시대와는 또 다르다. 제후는 천자를 칠 수 없고, 싸움을 할 때도 전열을 다 갖춘 다음 전법으로 싸우던 시기였다. 어떻게든 싸워서 이겨야 하는 시기가 아니었다. 진 건 비극이지만 송양공은 그 당시의 사유대로 예를 확충했던, 자신의 가치를 끝까지 밀고 나갔던 사람으로서 그 자체로 평가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또한 춘추오패에 송양공을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우리가 모르는 송양공의 다른 면이 더 있을 것이다, 송나라의 흥성을 이끌었던 부분에 대해서도 궁금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문영님의 댓글

문영 작성일

이번 에세이를 쓰고 토론을 하면서 느낀 건, 제가 결과에 굉장히 집착한다는 사실이었어요. 진목공이 사심 없이 현재에 당면한 문제에 충실했고, 송양공이 예를 다해서 살았다면 그걸로 끝~~ 다라는 거죠. 어차피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는데,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봐왔는데, 세상이 내 맘대로 안 되는데, 내가 어찌 해볼 수 없는 힘의 작용이 있는데...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나대로 지금을 충만히 살면 된다는 거죠. 그냥 그게 다라는. 그런데 전 결과에 따라 현재를 재단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그랬기에 온전히 현재에 마음을 다 하지 못하거나, 마음을 다하고도 늘 찜찜한 뭔가를 남기곤 했죠. 그 뭔가가 결과에 대한 집착이란 걸 이번 에세이를 통해 발견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