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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업은 마지막 편 ‘진심 하’였습니다.
혼자서 읽을 때는 감흥 없이 넘어갔었는데 수업 중에 아주 좋다고 느껴졌었던 대목이 있었는데요, 맹자의 제자가 신발을 훔치는 등 행실이 안 좋지만, 맹자는 ‘진실로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오면 그를 받아들일 뿐’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제자들이 맹자에게 온 목적은 신발을 훔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배움의 문을 열고 들어 온 것 이며, 과거에 그 사람의 행실이 안 좋았어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또한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는 맹자의 생각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다가왔었는데 현실에 적용해서 생각해보니 뭔가 굉장히 인자한 느낌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대함에 있어 그 사람의 오래전 과거의 잘못만 계속 곱씹으면서 현재의 좋은 면은 부정해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도 예전과 지금이 많이 다르듯 그 사람도 예전과 지금이 많이 다를 텐데 말입니다.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데 말입니다.
또한 발제문 토론 시간에 성선이라는 것이 ‘사람이 선을 타고 난다’인지, ‘사람이 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타고 난다’인지, 무엇이 맞는 건지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었습니다. 진심 하 편 14-33에 “요임금과 순임금은 타고난 본성을 자연스럽게 실현한 사람이고, 탕왕과 무왕은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서 타고난 본성을 회복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요, 요임금과 순임금은 ‘사람이 선을 타고 난다’에 가깝고, 탕왕과 무왕은 ‘사람이 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타고 난다’에 가깝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성선이라는 것이 정확히 둘 중 무엇인지는 의견이 분분한 사항이라고 합니다. 혼자서 책을 읽을 때에는 이런 것 까지 세심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좋았습니다. 사람마다 그 타고난 정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도 ‘딱 이렇다’ 말을 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제 자신만을 놓고 보면 ‘선을 타고 난다’이기보다는 ‘선해질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인 듯 합니다.... ㅜㅜ
또 진심 하 편 14-34에서 ‘제후에게 유세할 때는 그를 내려다봐야 한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그의 집은 높이가 몇 길이나 되고 서까래가 몇자나 되지만, 나는 내 뜻을 이루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있는 것은 모두 내가 하려하지 않는 것이지만 나에게 있는 것은 모두 옛날부터 전해오는 법도인데, 내가 무엇 때문에 그를 두려워하겠는가?”라는 구절입니다. 문쌤께서 설명하시면서 이건 완전히 제후의 욕망의 배치와 맹자의 욕망의 배치가 다른 거라고, 논어의 ‘종심소욕불유구’처럼 자신이 욕망대로 다 해도 거스름이 없는 경지가 있는 거라고, ‘욕망을 줄이고 제거한다’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제가 맹자를 읽으면서도, 또 다른 수업에서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번번히 걸려 넘어지는 부분이 ‘욕망’에 대한 것인데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결국 맹자처럼 ‘욕망대로 다 해도 거스름이 없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욕망을 줄이고 인을 행하는 엄청난 인위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럼 욕망(사사로운 욕망)을 줄이는 게 왜 아니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책을 읽어도 계속 ‘욕망’ 부분이 걸려 넘어지니, 나의 욕망을 바라보고 있는 관점이 협소하고 어그러져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스스로 답(?)을 찾지도, 내리지도 못한 상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맹자와 제후는 욕망의 배치가 완전히 다르다는 말에 대해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한다고 치면, ‘컴퓨터 게임을 줄여야 돼!’ 해서 줄여 지는 게 아니라 컴퓨터 게임보다 운동 하는 게 훨씬 더 재밌어지면, 컴퓨터 게임은 자연스럽게 소홀하게 되는 느낌이 욕망의 배치가 다르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식욕 색욕에 탐착하는 것보다 인을 행하는 것이 나에게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면, 식욕 색욕을 채우는 데에는 소홀해지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식욕, 색욕을 줄여야 돼!’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에게 인을 행함으로써 기쁨을 느끼고, 그걸 확충해나가는 데에만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의미인걸까?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전 편이 다 끝났네요,,,,!(감격) 함백에서 뵙겠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