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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3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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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영 작성일17-09-22 22:46 조회3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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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는 공손추 상, 하편을 공부했습니다. 잠깐 4-2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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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제선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습니다. 군주에게는 반드시 앉아서 부를 수 없는 신하가 있는 법인데, 탕왕에게 이윤이나 환공에게 관중이 그러했다죠. 맹자 자신은 관중처럼 패도를 논하는 자도 아니고, 더군다나 신하도 아니니 만나고 싶으면 왕 네가 와라...뭐 이런 자세입니다. ‘이렇게까지 까탈스럽게 굴어야 돼?, 정말 꼬장꼬장하군,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하지?’ 등의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대부 경추도 이는 왕을 공경하는 태도가 아니지 않느냐고 물어보네요. 그러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나라 사람 중 누구도 왕과 의 도에 대해 말하지 않더이다. 이는 속으로 이 사람과 더불어 어떻게 인의의 도리를 논하겠어라고 생각하니까 안하는 거 아니겠소. 난 요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왕 앞에서 말씀드리지 않으니, 제나라 사람 중 누구도 나만큼 왕을 공경하는 사람은 없소이다

 

그렇습니다. 맹자는 제선왕이야말로 왕도정치를 펼칠 수 있는 자라고 여겼고 그래서 그와 더불어 인의의 정치에 대해 논했으니 이렇게 본다면 왕을 최고로 대우한 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큰 일을 도모하려는 군주는 그런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왕이 직접 와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논리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오라 가라 하지 마. 난 그렇게 함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거죠.

 

맹자, 참 대단하죠? 전 맹자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가장 귀하게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샘께서는 여기에 더해 이런 해석을 열어주셨습니다. ‘물론 맹자가 이렇게 자신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 것은 스스로를 높이는 행동이기도 하다. 맹자 자신의 자존감을 세우는 길이기도 했지만 이는 한편으로 나와 관계 맺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도 하지 않았을까?’라는. 다시 말해서 맹자가 스스로를 존귀하게 높이는 것은 나 하나 좋자고 혹은 좋은 대접을 받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함으로써 이런 고귀한 자와 함께 왕도정치를 도모할 수 있으니 내 존재 자체가 왕에게도 큰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크으~~~ 멋집니다!!! 스스로를 존귀하게 대접하는 일이 또한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방법이 된다는 것이요. 바꿔 말하면 내가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은 나 스스로가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말이요.

 

                                                                              * * *

 

공손추 편에는 不動心, 浩然之氣, 知言, 四端과 같은 주요 개념들이 마구마구 쏟아집니다.

제자 공손추가 묻습니다. “선생님께서 만약 재상의 지위에 오른다면 마음이 동요되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난 사십이 되고부터는 마음의 동요가 없어졌다.”

 

역쉬 단호박 맹선생이십니다!!^^ 그러면서 공손추에게 부동심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북궁유와 맹사시의 용기를 비교하고, 곧이어 맹사시와 증자의 용기를 비교하는데, 이때 증자가 부동심할 수 있었던 근거로 守約을 얘기합니다. 수약은 간략한 요령을 지켰다로 번역됐는데, 문샘께서는 내가 일상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갖는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 요약해서 지키는 것이 있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거창한, 형이상학적인, 관념적 개념이 아니라 일상에서 스승과 제자가 나눈 일상적 대화였다고 거듭 강조하셨죠. 부동심이나 호연지기를 크게 생각하고 어렵게 접근하지 말고 일상에서 행할 수 있는 자기실천의 지점을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부동심과 호연지기에 대한 맹자의 설명은 계속됩니다. “그것은 必有事焉, 즉 반드시 일삼음이 있어야 돼. 일상을 통해서 행해져야 하는 것이지. 세 가지 원칙이 있는데 첫째 억지로 바르게 하려고 해선 안 돼(勿正). 무슨 뜻인고 하면 이 말은 도덕적 올바름을 추구하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기 원칙을 만들어서 의를 행하는 문제라는 말이지. 둘째 항상 마음에 두고 잊어선 안 돼(心勿忘). 이는 의가 쌓여서 생겨나는 것이지 한번 의에 부합되었다고 호연지기가 길러지는 게 아니야. 셋째 억지로 빨리 하려고 조장하지 마(勿助長). 이렇게 하면 호연지기가 길러져. 호연지기는 작은 실천으로 시작되는 거야.”

2400년 전 맹자와 공손추가 나눈 어느 날의 대화였습니다.

 

                                                                                   * * *

 

그리고 2400년이 지난 어느 날, 나에게 묻습니다.

누군가 너에게 아무 조건없이 매일 10만원씩 준다고 하면, 어떨거 같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어?“

.....잠깐 흔들리다가 아무 조건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에 땡큐~” 하며 받을 것 같다능ㅋㅋㅋ 좀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었던 마음이 머슥해집니다. 이런 작은 마음 하나 지키지 못하고 쉬이 흔들리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네요. ‘지금 내가 세울 수 있는 작은 원칙은 뭘까?’, ‘나의 부동심은 어떤 을 지키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 이번 수업을 통해 맹자가 던져준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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