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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내 사유의 한계를 탐험하는 한편의 추리소설이자 SF입니다. 자신의 경계를 탐험하고 돌파하기! 글쓰기 강학원에서는 읽기와 쓰기의 초식을 훈련합니다.

콜레주 20 글쓰기강학원

글강 3학년 노자 3주차 후기입니다~

게시물 정보

작성자 성연 작성일16-08-12 11:39 조회748회 댓글2건

본문


지난 시간에는 지현샘의 강의와 저의 발제로 수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지현샘은 노자의 허虛에 주목하셨는데요.


11장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큇통으로 모이지만, 수레바퀴통 중간의 빈곳이 있어야

수레로 쓰임이 있다.

찰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 속의 빈곳이 있어야 그릇으로서 쓰임이 있다.

문이나 창틀을 내어 방을 만들지만, 문과 창 네 벽의 빈곳이 있어야 방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유가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는 것은 무가 그것들의 쓰임을 발휘해서 그런 것이다.


노자가 허를 강조하는 것은 허가 관계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고

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관계가 변화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고

변화를 중시하는 것은 그것이 세상만물의 원리라고 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따라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허, 즉 빈곳은 쓰임입니다. 왜냐하면 빈곳이 있어야 거기에서 관계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그릇의 빈곳은 음식이 담기기에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있는 것이고,

수레바퀴의 빈곳 역시 바퀴가 굴러가게 만듦으로서의 쓰임이 있고,

빈방 역시 비어 있어야 방으로서의 쓰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곳은 무엇과의 관계를 만들어내기에 허는 바로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하나의 관계로 고착되지 않습니다, 늘 변화를 담지하는 관계라 할 수 있죠.

그릇의 빈곳이 물과 관계 맺으면 물그릇으로, 술과 관계맺으면 술잔으로 무한히 새로운 관계맺기가 가능한 셈이죠.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빈곳이 없이 자기로 가득 차 있으면 그 누구도 담을 수 없죠.

자기로 가득 차 있으면 일방적인 말만 오갈 뿐, 아무리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게 아니죠.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아무리 다른 화제로 얘기를 돌려도 다시 그 얘기만 하듯,

자기의 고정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말은 죽은 말의 반복이듯,

꽉 차 있으면 다른 것과의 관계 맺기가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관계 맺기가 되려면 빈곳이 있어야 하고,

빈곳은 다름아닌 관계 맺기를 통한 변화와 생성의 가능성이라고 볼 수 있겠죠.


무에 대한 생각은 유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유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인데, 우리가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사물을 분별하여 소통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일 뿐, 사실은 언어가 만들어내는 착각이자 환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그릇을 냉면 그릇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릇은 다른 음식을 거부하지 않죠.

또, 그릇을 모자로 쓰고 다닌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없지만 그것을 우리가 그릇이라고 명명한 이상 어색해지고

용도가 한정되는 것처럼, 그릇이라고 명명되는 순간 그러한 구분에 고착되고

그러한 고착은 우리가 이름붙인 사물과 우주 만물, 주위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에 갇히지 않고 관계 맺기를 통한 변화와 생성에 관여하는 일은

유有라는 질서와 명명을 무無의 분별없음과 유연성으로서 사유하는 길임을 노자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노자에게는 물이 중요한 개념이 되죠.

물처럼. 고인 물이 아니라 어디에 담기더라도 변화 가능한 유연성의 성질을 가진 물처럼 살라고 말합니다.

물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가 놓인 관계에 자신을 내맡기는 성질을 가지고 있죠.

얼고 녹고 증발하고 그것이 무거워지면 비가 되어 내리고 강물로 흐르고

둥근 모양의 하드였다가 눈꽃빙수였다가 하는....

자칫 생각하면 상당히 수동적인 상태가 아닌가 싶지만 사실은 무엇을 만나든 거기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키는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력을 가진 변화와 순환의 성질을 가진 것이 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자는 이렇듯 물의 특징을 자연과 인간이 가진 스스로 그러함의 본질로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자연은 그냥 저절로 그리됨이 아니라,

지나친 욕망과 생각과 자아로 꽉 차 있는 우리를

부단히 빈곳으로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되라는 심오한 뜻인 것 같습니다.


뭐 이래. 하면서 훌훌 읽히던 노자가 조금씩 걸려오네요. 좋은 현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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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철현님의 댓글

철현 작성일

저는 지현샘의 얘기 중에서
무와 유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는 말이 인상깊었어요.
단순히 유에 대한 반대로서의 무위, 그렇다면 유는 없단 말인가?라는 반론!! 등등
이렇게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사실... 유위의 사고 방식 속에서 여전히 유위에 대한 반대로서의 무위를 말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무와 유의 상호보완적 관계는 어느 하나를 이원적으로 분리를 하지 않는 사고 방식이죠.
- 그리고 우리가 지금껏 계속 공부해왔던 게(니체부터... 쭉) 유위의 공부법이 아니었나 하는 이야기도 나누었죠^^ 어떻게 무위의 공부법을 할 수 있을지?^^

기범님의 댓글

기범 작성일

노자가 말하는 비워야 쓸 수 있다라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我라는 주체로부터 나오는 욕망들을 비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로 비롯되는 하나에 대한 욕망들이 다른 시야를 막게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무튼 어디서나 자기가 문제네요~ 자기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