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청공자 용맹정진-밴드
다르게 살고 싶다면? 익숙했던 욕망의 배치와 단절하고 우주적 지성과 생명의 길에 접속하자!

청공자 용맹정진-밴드 청공자 용맹정진

청용 용-되기 수련 / 1학기 7주차 / 톨스토이_『인생에 대하여』 (1/2) 후기 / 장재훈

게시물 정보

작성자 재훈 작성일21-04-06 19:55 조회52회 댓글1건

본문


톨스토이는 우리에게 말한다. "네가 아무리 너만의 행복, 즉 개체적 행복을 바란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개체적 행복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나만을 사랑해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존재 이유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위해서' 라고 주장하는 것이 개체적 행복을 추구하는 자들이 원하는 바이다. 언뜻 듣기에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해줄리는 없으니 몇몇 사람이라도 나를 사랑해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허나 그 정도의 이유로 한 사람의 개체적 행복이 가능하다고 톨스토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개체적 행복은 왜 불가능한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일도, 다른 생명을 해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개체적 행복을 추구할 때 우리 개개인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제거해야만 하는 방해물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궁금해진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에 톨스토이는 답한다.


인간이 행복의 불가능성을 끊어내고 행복을 성취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체의 행복 추구를 다른 모든 존재의 행복 추구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생명을 개체의 행복 추구로 보는 관점에서 세계를 보면, 인간은 그 세계 속에서 서로를 죽이는 비이성적인 생존 투쟁을 볼 따름이다.그러나 생명을 타자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인간은 거기서 완전히 다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즉 생존 경쟁은 우연한 현상일 뿐이고, 모든 존재들은 항상 서로서로에게 상호 부조하고 있음을, 그러한 상호 부조가 없다면 이 세계라는 존재 자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면 지금까지 도달할 수 없는 개체의 행복을 지향하던 이전의 모든 비이성적 활동이, 세계의 법칙과 일치하는, 자기 자신과 전 세계의 최대한의 행복을 지향하는 전혀 다른 활동으로 대치 될 것이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인생에 대하여, 바다출판사, 2020, 121-122)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의 목적과 존재 이유가 타자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임을 안다면 말이다. 모든 사람이 개체적 행복을 추구했을 때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비이성적인 생존 투쟁만이 있을 따름이지만, 개체적 행복을 추구하던 방향에서 타자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우리 모두가 방향을 틀게 된다면 비로소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 받는 개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개체적, 동물적 행복을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사랑 받음으로써 얻는 행복을 추구할 것이냐 중에서 말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이 나에서 타자로 전환 된다면, 그랬을 때 개체의 모든 활동은 자기 자신과 전 세계의 최대한의 행복을 지향하는 전혀 다른 활동으로 대치 될 것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또 남겨진 질문들이 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행동해야 타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진정 타자를 행복하게 하는지 어떻게 아는가? 의 질문들 말이다. 남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인생에 대하여』두 번째 시간에 친구들과 흥미롭게 풀어나가 보고 싶다. 친구들아 부탁해~!!!!!




남산강학원
/ 2021 청공자 용맹정진/ 인생에 대하여/ 2021.03.31./ 장재훈


타자의 행복을 바라는 목적을 세워라

세계적인 대문호이자 평화사상가인 톨스토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다. 과연 톨스토이는 씁쓸함과 달콤함이 공존하는 나의 인생을 어떤 시선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라고 조언을 해줄지 궁금했다. 그의 현명한 조언이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행복, 기쁨 혹은 만족에 대한 막연하기 짝이 없는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다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우선 그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우리는 살면서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해야 삶을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내리기

방앗간 주인의 물레방아 예시를 들면서 톨스토이는 우선 우리가 판단을 잘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중요한 것은 판단 자체가 아니라 그 판단이 위치해 있는 자리라고 말한다. 여기서 판단이 위치한 자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판단의 순서를 잘 정하는 것이다.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들을 그냥 나열해 놓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순서를 잘 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이 판단의 순서를 정해야 하는가? 중요성에 따라. , 무엇을 먼저 생각하고 무엇을 나중에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순서를 정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판단을 할 때는 우선순위에 따라 순서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순서가 없는 판단들을 톨스토이는 비이성적 활동이라고 부른다.

판단의 순서를 정했다면 이제는 목적에 따라 순서를 세우고 다시 그 순서 속에서 개별적 판단의 합리성 여부를 분별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별적 판단은 전체적인 판단의 공동 목적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적 판단이 공동 목적과 관련이 없으면 이 판단은 불합리한 것이다. 방앗간 주인은 좋은 가루를 빻는 그의 목적을 잊었기에 강과 그 밖의 사물들을 연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강을 연구하는 것이 그의 목적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잊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앞으로 선택을 할 때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이성적인 활동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가장 크게 와 닿은 것은 먼저 목적을 세워 놓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내가 내리는 판단들이 그 목적과 부합하는지 파악할 수 있고 목적과 내가 내린 판단들의 합리성 여부를 분별하여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좋다. 그런데 왜 나는 이성적인 활동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려 하는가? 현명한 삶을 위해서? 그 현명한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이길래? 이런 내게 톨스토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더 훌륭한 생명이 되기 위해서

인간은 생명을 탐구하되 오직 더 훌륭한 생명이 되도록 탐구한다. 지식의 길에서 인류를 이끌었던 사람들은 오직 그런 목적에서 인간의 생명, 즉 인생을 탐구했다. 하지만 인류의 진실한 스승과 은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목적을 내던지고 대신 인간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왜 물레방아가 돌아가는지 따위의 문제나 생각하는 사변가들이 언제나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인생에 대하여, 바다출판사, 2020, 16)

톨스토이는 말한다. 인간은 생명을 탐구하되 오직 더 훌륭한 생명이 되도록 탐구한다. 여기서 생명이란 목숨 같은 것이 아니다. 더 훌륭한 생명이 되기 위해서 생명을 탐구하는 것이다. 방앗간 주인에게는 좋은 가루를 빻기 위해 그가 탐구하는 물레방아가 생명이다. 그러면 내가 현명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이 좋은지 탐구하려는 것도 더 훌륭한 생명이 되기 위함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질문과 그 답이 범위가 나에게 국한되어 있는 것이라 느껴지기 때문인 걸까? 시야를 넓힌다면 어디로 넓혀야 할까? 혼란스러운 지금, 나는 사변가들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타자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나의 행복이다

삶을 현명하게 살고자 좋은 선택을 내리고 싶어 하는 질문의 목적은 내가 행복하게 살고자 함이다. 허나 톨스토이는 다시 나에게 말한다. 행복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남들로부터 사랑받고자 하는 것이고, 사실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기에 남들이 나를 사랑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소원이라고. 그리고는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 살고, 그들 자신보다 나를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면 모든 생물이 타자들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자기 자신보다 타자들을 더 사랑하면 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 정말로 모두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자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미워할 필요도, 원망할 필요도 없다. 내가 먼저 내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 나는 어떤 방향으로 목적을 재설정해야 하는가? 불가능한 행복을 붙잡지 말아야 한다. , 내가 타자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내가 타자를 사랑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려는 관점에서 나오는 목적을 세워야 한다. 그랬을 때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하며 겪는 고뇌에서 어떻게 하면 다른 존재가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뇌로 전환될 수 있다. 그 고뇌가 나의 생명과 목적을 얼마나 생기 있게 만들어낼지 벌써 기대된다.

톨스토이는 나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한다. 다른 존재들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에게 죽음이란 행복과 생명의 절멸이 아니라면, 그에 따라 다른 존재들의 행복과 생명은 인간의 생명에 의해 절멸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생명의 희생에 의해 더욱 증대되고 강해지는 것(123)이라고. 실로 그러할 것이다. 그가 말했듯이 죽음이 무서운 이유는 내가 지닌 것들을 잃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허나 타자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던 존재가 이 세상에 남겨놓은 그 눈물겹고 아름다운 무언가는 남겨진 사람들에 의해 더욱 증대되고 강해질 것이다. 톨스토이가 나로 하여금 다시 수정케 한 목적처럼 말이다. 개별적 행복추구가 아닌 타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목적을 세우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갈 때 진정으로 우리가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살아갈 때 나도 타자도 우리가 살아갈 이 세상도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준혜님의 댓글

준혜 작성일

저도 지난주 수업이 끝나고 톨스토이가 말하는 타자의 행복에 대해,
또 내 일상에서 타자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싶어졌어요.
오늘 수업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고 갈지 기대되는군요...ㅎ
후기 잘 읽었어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