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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용-용되기 수련] 열하일기 3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조한결 작성일20-06-29 17:39 조회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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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청용에서 공부하는 한결입니다.
문샘과 함께하는 열하일기, 그 세 번째 수업 후기를 공유할까 합니다~

연암 일행이 드디어 산해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부터는 만리장성 안, 중국 본토를 지나는 여정을 담은 '관내정사'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관내정사에서 제게 인상깊었던 대목은 바로 '호질'이었습니다. 수업 때 문샘께서 조선 성리학의 쟁점 중 하나였던 인성과 물성의 같고 다름의 논쟁에 대한 연암의 생각을 보여주는 글이라는 부연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이런 심오한 철학적 논쟁(?)으로써도 의미있지만, 그렇게 어렵게 접근하지 않더라도 호질은 제게 일상적이면서 묵직한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로 '분별'에 대한 물음입니다. 제 귀에 호질은 인간중심주의적 분별, 나아가 분별 그 자체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대한 꾸짖음으로 들렸습니다. 제가 쓴 발제문에서, 저는 인간의 입장이 아닌, 범의 입장으로 대표되는 자연의 입장이 되면, 인간의 시비분별에 무지해질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간중심적 분별, 나아가 분별 자체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풀어 썼습니다.

그런데, 보라누나의 피드백처럼, 인간의 입장은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제 딴에는 그 길이 다양할 수 있으니 하나로 정하고 싶지 않아 열어두는 의미에서 글을 더 진행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보라누나는, 분별을 넘어서는 길은 다양할 수 있지만, 우리가 연암에 대해 공부하고 있으니, 연암식의 분별 탈주로에 대해 생각해 보면 더 좋았겠다는 날카로운, 그리고 참으로 감사한 피드백을 주었습니다.(정말... 이런 피드백을 받고자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가슴을 조리며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ㅎㅎ 생각을 있는데로 펼치다가 마주한 한계, 그 한계에서 더도 말고 덜도 아닌, 딱 한 발짝을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도반들의 한 마디. 그것을 들을 때의 감동이란!!!)
문샘께서도, 무엇이 됐든 자신의 길을 보여주어야 그 위에서 얘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발제문에서 미쳐 나아가지 못한, 세번째 꼭지를 이번 후기를 통해 써볼까합니다!
연암표 인간중심주의 및 분별심 탈주법은 무엇일지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3. 세밀하게 느끼는 힘
어떻게 분별심을 넘어설 것인가? 우선 분별이 일어나는 과정을 보자. 분별은 어떤 기준으로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분별을 하려면 우선 '기준'이 필요하다. '인간'을 기준으로,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을 나누듯이 말이다. 그런데 분별을 쉽게하려면 대상을 거칠게 봐야한다. 대상을 세밀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다양한 요소들이 포착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의 혹은 거친 몇 가지 기준만으로 이쪽과 저쪽을 나눌 수 없게 된다.
가령, 인간과 동물을 나누고, 인간은 동물을 잡아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려면, 인간은 동물과 구분되는 무엇으로 분멸되야 한다. 언뜻 생각해보면 인간은 이들이 잡아먹는 소나 돼지, 닭과 다른 것 같다. 그런데 소, 닭, 돼지가 인간과 다르다는 거친 이분법은, 소, 닭, 돼지를 '그저 인간에게 먹히는 고기'라고 대상화하여 바라볼 때만 성립한다. 소나 닭, 돼지와 가깝게 만나면, 그들의 존재를 세밀하게 느끼게 되면 이들을 손쉽게 '그저 먹는 고기'로 바라보기 어렵다. 태어날 때 번호표를 달아주고 거세도 직접시킨 돼지는, 내가 밥을 주러오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와 장난을 치는 돼지는, 아플 때 약먹이고 보살펴준 돼지는, 그렇게 하루하루 자라나서 덩치가 커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 돼지는 더이상 '그저 먹는 고기'가 아니다. 팔릴 때 팔리더라도, 도축할 때 하더라도, 먹을 때 먹더라도 '그저 먹는 고기'가 아니라, 나와 같이 이 자연에서 함께 살다가 나를 위해, 혹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보시하고 먼저 간 고마운 존재로 다가온다. 이는 내가 약 두 달간 소규모 돼지농장에서 일하며 느낀 것이다. 이렇듯 거칠게 대상화할 때는 인간과 돼지가 명확하게 구별된다. 하지만 돼지와 내가 존재적으로 가까워지고,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세밀하게 느끼게 되면 그런 분별이 불가능해진다. 나와 돼지가 외물로서는 구분될지 모르지만 그 본성은 구별되지 않음을 경험적으로 느끼게 된다.
호질을 통해 연암이 인간적 분별을 뛰어넘어 인성과 물성이 같음을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연암 또한 대상을 세밀하게 느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연암은 자신의 몸종 장복이의 귀 밑에 난 사마귀가 요즘들어 부쩍 더 커짐을 알아차리고, 정진사는 이가 좋지 않아 씹기 편한 달걀볶음을 좋한다는 것도 인지한다. 이처럼 자기 주변의 존재들을 세밀하게 느끼는 힘이 연암으로 하여금 거친 분별심을 뛰어넘게 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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