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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자스쿨1기 청공 1기

청년공자스쿨 3학기 1주차 2교시 "근영쌤 특강"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김삼봉 작성일18-07-02 11:56 조회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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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3학기를 시작한 청년공자프로젝트 1!!

2교시는 신근영 선생님의 특강으로 첫 시작을 끊었습니다 오오오~

특강의 제목은 자연학에서 과학으로

(하지만 사실은 저희의 부족한 상식을 채우기였다죠 흐흐)

예를 들면, 서구 철학의 기원으로 누구를 뽑을까요? 과학의 기원으로는요?

차례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라던가~



1.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운동은 멈춤을 목적으로 한다?

플라톤은 본질, 이데아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때문에 현상이라는, 감각으로 들어오는 세계인 Reality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지요.

저 위의 이데아에 정말 중요한게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Reality에서 일어나는 생성과 변화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감각 경험의 대상이야말로 정말로 있는 것이라고 여겼으니까요.

라는 질문, “왜 저 자연은 지금의 방식으로 존재하나?”가 그가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 겉모습을 겉모습이게 만든, 겉모습 아래의 원리를 찾아내는 것!!!

아래에 서다” “UnderStand이해하다라는 이 된 것이라는 설명에 모두 감탄했지요.

짧은 영어 깊은 감탄.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운동은 어떤 목적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물의 본성과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4원소가 마구 뒤섞여 있는 상태인 지상의 사물들.

이들이 각자의 본성에 맞는 자리에 있지 못한방황의 상태에서 운동이 일어난다고 본 것이죠.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에에 운동이란 우주적 무질서나 균형파괴에서 시작된다고,

방황과 무질서를 끝내고 완전해지는 것, 코스모스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라고

그 목적의 힘으로 운동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그리고 이러한 성찰은 철학으로 이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현자의 길이란 곧, “자신의 정처(머물 곳, 자리)를 찾아라이게 된 것이지요.

묘하게 기독교의 소명과 닮은 이 목적에 대한 전제 덕분에 중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인들에게 무리없이 받아들여 집니다.



2. 기계론, 새로운 자연학의 흐름

또 다른 상식, 중세의 신학과 자연학은 한팀이었다?!

흔히 종교와 과학은 서로 대립하는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지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어받은 중세의 자연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궁극적인 그 목적이란 이라고 여겨졌기에 신학과 결국 바라보는 곳이 같았습니다.


다만 라틴어를 할 수 있고, 성서라는 근거를 가지고 있었던 신학자들이 

훨씬 기득권층이었다는 차이가 있었지요


후에 자연학자들이 일으킨 르네상스 종교개혁”(이 역시 상식)이 

성서를 부정하고, 사제들의 중개역할이 불필요함을 역설하긴 하지만 

신을 부정한 것을 결코 아니었습니다.


데카르트와 뉴턴이 신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것을 알 수 있지요.

다만 17세기에는 자연을 이해할 때에, 본성에 따른 운동이라고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시계와 같이 신이 설계해 놓은, 기계적인 자연이 인과작용으로 움직인다는 식의 

새로운 관점이 생겨났습니다.


운동은 이제 목적이 아니라 상호작용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물질을 볼 때, 그 이전의 자연학이 중요하게 보던 

본성이라는 질적 특징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시간도 균질하고 동질한 것으로 여겨졌고

추상화된 시공간인 데카르트 좌표계가 탄생합니다.

즉 수학이 자연학과 겹쳐지기 시작합니다.



3. 수학, 추상과 리얼리티

중세에 수학은 리얼리티를 다루지 못한다고, 중요하지 않은 기술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수학의 계산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별개라고 여겨진 것이지요.

갈릴레오는 수학이 자연학보다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논증을 통해서 수학의 위상을 높이고자 노력했고

그 중 하나가 지동설이었던 것이지요.




몇 천 년 동안 깨지 못했던, 탑의 논증을 배의 논증으로 깨어버린 갈릴레오!!


탑의 논증은 이렇습니다. 지구가 돈다면 탑에서 공을 떨어트렸을 때

공이 지구가 움직인 만큼 움직여서 뒤로 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도 그에 반하는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움직이는 배 위에서 공을 던졌을 때

다시 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예로 들어서 

움직이는 지구 위에서 같은 일이 벌어짐을 논증해냈지요.


수학은 이렇게 우리가 평소에 경험했으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것이 추상을 다루는 수학의 힘이지요.



4. 과학? 감각의 창조

진자운동을 보고 갈릴레오는 좌우로 움직인다고 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아래로 움직인다고 보았지요.

해석의 차이일까요?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보았는지를 두고 토마스쿤은 

지각체계부터 달랐다고 이야기합니다.

수학을 통해서 갈릴레오는 새로운 감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유체계에 따라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지각체계가 아예 달라집니다.

시대에 따라서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해야할지를 배우고 한정됩니다.





자연은 어떤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 강의의 결론이었습니다.

과학은 무엇이 진리인가라는 물음이어선 안되고

어떤 과학이 가치로운가를 물어야한다는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진리가 있고 어떤 과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진리가 달라집니다.

새로운 경험의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과학!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양자역학을 만나자는 예고편을 남기시며

특강이 끝났습니다 ^^


진~했던 3학기의 시작! 다음주부터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고 토론을 합니다

여름을 과학과 함께~!! 그럼 이만 후기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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