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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2/2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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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하 작성일17-09-05 08:49 조회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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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미나 시간에는 보바리 부인 – 엠마 보바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번 반절에서 엠마는 파국에 이르는데, 엠마가 욕망하는 방식, 관계 맺는 방식이 결국 자기를 파멸로 몰고 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엠마는 자신을 권태에서 구해줄 수 있는 더 센 자극, 더 큰 사랑, 점점 더 강한 쾌락을 욕망합니다. 엠마는 자신의 상태를 제어할 수 없게 되고, 그녀의 생활, 일상은 무너져갑니다. 빚이 쌓여 가는데 그녀는 터무니없는 사치를 부리죠. 그렇게 현실이 자신의 욕망과 멀어질수록 엠마는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욕망에 사로잡혀 그 목적지 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우리가 욕망하는 패턴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자신을 소진시키는 방식의 욕망, 이를테면 <마담 보바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인 ‘마차’ 장면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허무와 권태. 그다음엔 더 큰 것에 대한 욕망, 이것이 반복되는 욕망의 패턴입니다.


그녀가 관계 맺는 방식이 그녀를 파멸로 몰고 가는 이유는 그녀가 맺는 관계가 오직 한 유형이기 때문입니다. 로돌프, 레옹과 맺는 사랑-성적 관계. 그래서 그녀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엠마는 정부들과의 관계에 안에서만 자신을 구성했습니다. 다른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고, 정부와의 관계가 끊어지면 죽음에 이를 정도로 존재가 그들에게 의탁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욕망을 실현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열심이었지만,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자신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감각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격정적이고 불꽃같은 엠마가 아니라, 둔하고 좀 모자라 보이는 샤를르에게 관심이 갔습니다.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게 느껴져서랄까요;; 어떻게 보면 샤를르는 불쌍한 남편으로 보입니다. 엠마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엠마는 갑자기 자살해버립니다. 그리고 닥쳐오는 후폭풍! 엠마가 사치를 부리면서 서명한 어마어마한 양의 어음을 감당해야 했고 (알고 보니 그녀는 몰래 다른 집도 팔았고, 밀린 진료비도 다 가로챘고) 게다가 그녀의 서랍을 열어보니 정부들과 주고받은 연정의 편지가 가득합니다. 샤를르는 이른바 ‘멘붕’ 상태에서 죽음까지 갑니다.


그런데 엠마가 죽고, 그 연정의 편지들을 발견하기 전까지의 샤를르의 행보는 매우 특이합니다. 돈도 없는데 엠마의 관에 비싼 천을 두른다든지, 다른 것은 다 팔아도 엠마의 방은 그대로 보존한다든지, 또 죽은 엠마의 취향에 맞게 자신을 꾸민다든지, 세미나 시간에 엠마보다 샤를르가 이상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샤를르에게 엠마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그에게도 욕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스위트 홈’에 대한 욕망입니다. 아름다운 아내,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반, 잘 교육-양육되는 아이. 그리고 자신은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로 주체화합니다. 샤를르에게 엠마는 ‘스위트 홈’의 한 구성요소로서의 아내였던 것이 아닐까요? 엠마의 실제 모습보다 자신의 이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엠마가 죽은 뒤 샤를르가 하는 행동들은 엠마를 신격화하는 듯이 보입니다. 엠마를 신격화하는 듯이 보였다는 것은 결국, 샤를르가 ‘스위트 홈’이라는 자신의 이상을 신성시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샤를르가 보기에 엠마는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에 딱 들어맞지만, 실제 상황을 보면 엠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엠마와 샤를르의 관계가 제대로 맺어지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샤를르는 ‘엠마’가 아니라 자신의 이상과 결혼한 것이죠. (엠마가 아니라 웬만큼 아름다운 다른 여자였어도 샤를르는 그 사람을 엠마를 대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이 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샤를르가 엠마에게 느끼는 감정의 뉘앙스는 ‘감히 –할 수 없었다’와 같이, 신성한 것을 대하는 느낌을 줍니다.


저는 그가 어릴 때, 자신의 욕망 없이 엄마의 욕망에 따라 (연자방아를 돌리는 말처럼) 살아왔고, 엠마와 결혼하면서 자기 자신의 욕망이란 것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스위트 홈’에 대한 욕망도 결국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 욕망입니다. 샤를르 또한 자기 존재를 더 크고 단단해보이는 이상에 의탁하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두 보바리는 죽음을 맞게 되었지요. 우리는 엠마처럼 욕망하지 않고 관계맺지 않는, 샤를르처럼 자신의 이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다른 동력을 생각해봐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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