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아는 만큼 살고, 아는 대로 산다! 공부가 밥이 되고, 우정이 되고, 삶이 되는 향연! 즐거운 배움의 향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신서유기 신서유기

요괴퇴치 7주차 [이반일리치와 나눈 대화]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윤하 작성일17-05-01 14:28 조회194회 댓글0건

본문

이번 주는[이반일리치와 나눈 대화]의 중간 부분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일리치씨의 독특한 시각과 젠더(성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리치씨는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보려합니다. 현재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확실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일리치씨가 본 현재와 과거의 단절점 중 하나는 젠더의 유무였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문화적 구분,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의 구분인 젠더는 자본주의 이전까지 줄곧 유지되어왔는데, 현재는 젠더 대신 생물학적 성(섹스)만 남아있습니다. 특히 페미니즘 영역에서 그렇습니다. 이제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인간이고, 동등합니다.

우리는 일리치씨를 따라서 과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했습니다. 

자본이라는 것이 나타나기 전까지 과거 사람들은 왜 젠더라는 것을 유지했던 것일까. 일리치씨는 ‘비대칭적 상호보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서로 비대칭적이고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영역이 있고, 서로를 보완하고 의존할 수 있습니다. 과거 사람들은 그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젠더를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현재의 사람들은 그 차이들을 소거하려고 노력합니다. 경제적으로 평등하고 동등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여성은 회사에서 남성과 동등한 임금, 지위를 얻기를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했죠.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까요. 회사에서, 경제 중심의 자본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남성의 능력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장 위에서는 여성이 항상 차별받고 배제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저는 계속 이런 벽에 부딪힙니다. 정말 여성의 능력과 남성의 능력을 나눌 수 있을까, 남성의 영역과 여성의 영역이 나뉘어있다면 그것은 제약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도 현재의 확실성 위에 있는 질문입니다. 현재의 확실성 중 하나는 생물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없었습니다. 곧 사람들의 문화는 자연적인 것 자체였습니다. 젠더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성별에 따라 나뉘는 의무, 하는 일 등은 자연스러운 것이지 ‘사회의 억압’ 같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저는 자꾸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정말 이성적인 판단(세미나 때 남성의 능력 중 하나라고 이야기 했던)이 불가능하게 태어났냐, 여성성이라고 불리는 여러 가지 것들이 정말 생물학적 여성에게 맞는 이야기냐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생물학이라는 것은 비슷한 맥락의 확실성과 연결됩니다. (끝없는 확실성의 고리...) 우리가 생명이라고 말할 때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현재의 확실성은 인간, 생명, 개인과 같은 평평하고 균질한 단어 위에 놓여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모두 자신이 선택할 수 있으며, 백지 상태의 자신에서 자신이 결정한대로 자신을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오롯이 자신의 선택과 자신의 내부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시 생각해봐야할 문제겠죠. 나를 타인과 세상, 신체와 그 한계, 문화 등등과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도 같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주 일리치씨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0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