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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유기행

서양사유기행 7주차 세미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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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른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4-18 00:04 조회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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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발견되었듯 우리가 흔히 쓰는 현실이라는 개념도 새롭게 등장했음을 이해하게 된 점이 저에겐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그것이 ‘있음 직한 것’을 다루는 드라마(비극)의 시작으로 대두되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이전의 서사시와 서정시와 달리 드라마는 신적인 세계, 지상의 세계 양쪽으로부터 분리가 되면서 ‘연기’된 세계가 등장하게 되고 이로서 실재와 가상의 구분이 생겨나는데요. '리얼리티'라는 것은 이 구분이 생겨남으로 등장합니다.


그리스에서 '현실'이 비극과 함께 등장했다는 점에서 왜 비극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죠.

현실 등장뿐 아니라 예술 형식도 희극이 아닌 비극으로부터였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호메로스 시기와의 대조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호메로스 시기의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행위의 책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제우스가 잠깐 왔다 갔다거나 헤라와 접신했다고 하면 만사형통이었습니다. 행위를 하게 하는 용기(티모스)는 신들로부터 왔으니까요. 그런데 서정시 등장 시기와 더불어 절망감이라는 감정이 개인의 문제로 등장하고 이어 비극의 시기에는 이것이 더욱 강화될 뿐 아니라 어떤 행위를 일으키는 관념과 그 관념을 의식하는 ‘자신’을 인식하게 됩니다. 더이상 내 행위의 뒤에 신은 없기에 나는 내 행위를 오롯이 내가 떠안아야 합니다. 책임과 의무가 생겨나고 행위를 숙고, 반성하게 되지요. 이것 자체가 삶의 비극임은 자명해 보입니다. 이 맥락에서 등장한 ‘정의’라는 관념은 이 시기 그리스인들의 ‘현실’로서 존재하며 모든 행위의 기준이 됩니다. 


이러한 자기인식과 관념으로서의 현실 등장과 맞물려 약간 이른 시기에 핀다로스 라는 시인이 있었지요. 핀다로스에게 신의 세계는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시인으로서의 자기 인식도 확고하게 있었습니다. 뮤즈로부터 재능을 부여받았으나 자신은 지혜를 가진 현명한 자로서 신의 세계가 지상의 세계에 실현됨을 예술로서 알게 해 주는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했습니다. 헤시오도스가 신들을 그저 시간적으로 배열했다면 핀다로스는 신들의 세계를 공간적, 구상적으로 조직하여 하나로 꿰려고 하였습니다. 여전히 유기적인 통일은 아니었으나 핀다로스에게 세계는 이렇게 조직된 본질적인 것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었고 그는 자신이 그러한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 인식은 물론 호메로스 시대에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보면 아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데 보여준다는 것, 보여주는 존재, 현자의 존재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끝으로 ‘보면 안다’ VS ‘ 봤는데 모른다’의 문제를 호메로스 시대와 비극이 등장한 이후의 시대를 비교 정리했습니다.(X) '근영샘'께서 정리해 주셨습니다.(O)

호메로스 시대에는 '보다'라는 말이 곧 안다는 뜻이었습니다. 세계는 ‘보면 아는’ 것이었습니다. 경험이 곧 앎이었고 따라서 신은 용기(티모스)를 불어 넣어 경험하게 해주는 존재였습니다. 경험을 하게 해주면 곧 알게 될테니까요.

그런데 가만 보니 봤는데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지요. 어느 시대나 우리처럼 (책을) 봐도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꾸준히 있었겠지요.  그래서 그때의 현자들은 보다와 안다를 분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리는 두 가지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헤라클레이토스와 알크마이온 같은 사람들은 본다(경험)가 앎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에는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앎은 아니다’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귀납이 탄생을 하였지요.) 더 극단으로 가는 주장은 파르메니데스가 하였는데, 그는 보는 것은 아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즉 보이는 것은 모두 허상이다.라는 주장을 합니다. (여기서 연역이 생겨나지요.) 어쨌거나 ‘봐도 모르더라’는 문제에서 경험과 앎의 간극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앎을 관장하는 기관으로서 ‘정신’이 대두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소크라테스로 이어지는 서양 철학의 역사로 나아가게 되지요. 


마지막으로 중요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럼 이 ‘정신’만이 경험과 앎의 간극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일까?를 질문한 사람이 있는데요. 이 분이 니체라고 합니다. 니체는 호메로스 시대 경험하는 신체를 다시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그 눈', '그 귀'로는 알 수 없음을 말하며 존재 자체가 새롭게 달라져야 앎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니체에게 지혜는 정신을 훈련하는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신체를 만들어 새로운 존재양식을 갖는 훈련입니다. 놀라운 분입니다. 니체는 역시!


다음주는 9장~12장까지 읽어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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