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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자

7차 후기(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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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콩나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3-19 17:44 조회20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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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열정의 억압에 관해

‘오늘날 요망되고 있는 것은 열정의 관습이다. 이를 통해 참된 야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니체는 우리 시대, 열정이 ‘거친 표출과 몸짓’으로 드러난다고 진단합니다. 근영샘은 ‘조야한 ‘표출’이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조야한 표출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많은 서술어들이 등장했습니다. 어설픈, 비천한, 관광지 조각상 같은, 유치한, 조잡한 야생, 키치한, 귀족적이지 않은, 투박함과는 또 다른 등등. 니체의 한 단어를 우리의 공통감각으로 만들기 위해 각자 단어들을 말하고 조정하며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파토스의 회복을 위해 니체가 이야기하는 것은 열정의 관습, 즉 열정에 일정한 형식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표현형식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열정은 약화되고 변화해버려 평범하고 유희적으로 되어 버리는 결과만 나오게 될 테니까요.

저는 ‘열정의 관습’이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열정도 하나의 요구되는 캐릭터로써 사람들에 요망되고 있다는 식으로 읽었습니다. 열정은 형식을 갖추면 오히려 변질되는 것이고 그냥 분출하는 것이 열정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조야한 분출이고, 이걸 반복한다고 해서 다른 것으로 변화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을 상할 정도로 화를 막 내는 것이 화의 정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화냄이 자신을 상하지 않도록 화내는 관습(형식, 禮)를 익혀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정념을 주로 에로스에 많이 쏟았는데(ㅋㅋ), 같은 방식(조야한(?))이 반복되고 그것으로 자신을 상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이란 열정도 잘 쓰기 위해서는 배움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형식의 야성과 방종이 아닌 참된 야성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형식(그러나 외부에서 오는 억압은 아닌)을 통해야 가능하다고 니체는 말합니다.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를 근영샘이 열정의 정의를 설명하신 부분과 연결 지어 생각해보았습니다. 열정은 passion, pathos, 정념과 같은 의미인데 감한다는 내적action을 전제로 하는 응입니다. 어떤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기에 수동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 경험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상응하는 나의 신체 감각들이 있어야 하기에 passive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외부의 경험은 통제할 수 없지만 나의 신체 감각들은 수련할 수 있기에 열정을 표출하는 방식도 능동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열정에 휩싸이거나 당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지니게 되는 방식으로의 전환, 기대가 됩니다.

48. 고통의 지식

“고통”에 대한 처방은 고통이다.

고통에 대한 지식이 미천한 현대인들. 육체는 허약하고 경험은 없어 고통에 대해 미숙하고 공상가이다.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영혼의 고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공포의 시대에는 육체적 고통과 결핍이 흔한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통해 고통에 대한 교육을 가하고, 받았다. 이와는 대비적으로 현대인은 작은 고통도 너무 잔혹하고 악한 것으로 여기고, 실제 고통의 경험도 적어짐으로써 고통의 보편적 표상을 최고의 고뇌로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즉 고통을 겪기도 전에 고통을 생각하고, 상상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고통에 대한 망상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 염세주의가 나타난다. 이런 고통의 망상에 대한 처방은 고통을 직접 겪고 고통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다.


열정의 관습에 부분에 열정(!)을 너무 쏟아 다른 부분에 대한 후기는 쓰지 못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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