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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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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3-18 14:43 조회1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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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 대중들은 그들 위에 군림하는 높은 사람들이 언제나 더 높은 자로서, 그들에게 명령하도록 태어났다는 것을 고상한 모습을 통해 정당화하기만 한다면 근본적으로 모든 종류의 노예 생활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비천한 인간은 고귀함이 즉흥적으로 연출될 수 없다고 느끼며,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이 결실을 존경해야 한다고 느낀다.(p111) 비천한 인간이 보기에 고귀해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히 쉽게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이라고 느껴서 기꺼이 노예로서 그들을 존경하며 살기로 결정한다.

 

지난 주 세미나를 하면서 이 부분이 굉장히 의아했다. 고귀한 인간과 비천한 인간을 구분 짓는 것은 신분제가 아니다. 그런데 왜 비천한 인간은 고귀해 지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포기하는 걸까? 니체의 말마따나 용기만 있으면 가능한 일인데. 고귀한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고 지레짐작으로 힘들다고 판단하고 너무 쉽게 포기했던 것은 아닐까? 고귀한 사람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기기준을 너무 높이 세웠기 때문에 도전할 엄두조차 못 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외부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자기기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다른 타자와의 비교로는 자신만의 고귀함을 창조해 낼 수 없다. 그런데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데 좀처럼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 내 감정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오르락내리락 반복하고 내 안에 집중하면 할수록 관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틀어지는 기분이었다. 관계 안에 고유한 내가 있고 그 넘나듦이 자연스럽게 흐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게 가능한 걸까? 나 스스로 고귀하다고 인정할 수 있으면 족하다고 여기면서 한편으로 나는 끊임없이 타자가 나를 고귀한 존재로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생각과 감정의 간극 사이에서 늘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근영샘은 이런 나의 생각들이 플라톤의 이데아라고 기독교적 사상이라고 말씀 하셨다. 순간 멍~ 해졌다.

 

일주일간 이 생각들을 붙잡고 있었다. 외부에 척도를 두는 것과 내부에 척도를 두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또한 이미 척도를 가지고 있다면 고귀함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왜 척도가 있으면 고귀해질 수 없는 걸까? 척도가 있다는 것은 정해진 목표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고귀함은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어서일까? 고귀함의 형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또한 나는 왜 고귀해지고 싶은 걸까? 분명한 건 자족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어렵게 획득한 고귀함을 타자들이 인정해 주기를 바랐던 마음이 엄청 크다. 권력 감정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유한 나에게 집중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나와 타자를 구분 짓고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애씀은 몸과 마음을 긴장하게 만들고 무겁게 만든다. 이러면 고귀해지지 않을 텐데...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며 오늘도 남산강으로 g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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