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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자

6주차 후기- 박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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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꿈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3-14 20:42 조회17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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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유언/ 37. 세 가지 오류/ 38. 폭발적인 인간/ 39. 취향(taste, 맛)의 변화 /40. 고귀한 형식의 결여/ 41. 후회에 반대하여


유언에 관해 한명은 유언을 남기고, 또 다른 한명은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이는 삶을 바라보는 2가지 다른 태도로,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유언을 통해 ‘자신이 가면을 쓰고 희극을 연기했다’고 고백하고, 티베리우스는 ‘침묵하면서’ 죽었다. 아우구스투스에게는 삶과 죽음은 분리된 사건이고, 티베리우스에게는 삶이 곧 긴 죽음이었던 것이다. 삶은 그 안에 죽음을 내장하고, 뭔가를 죽여나감으로써만 생명을 입증한다. 니체는 생명자체 안에 죽음이 들어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진리가 과학을 촉진시킨다고 생각하지만 ‘오류’가 과학을 촉진하였다. 근영샘이 묻습니다. “실패와 오류가 없다면 어떻게 배움이 있을까? 오류가 없다면 어떻게 진리라고 하는 것이 굴러갈 수 있을까? 계속 오류가 아닌가? 진리면 갈 데가 없는 게 아닌가?”


전통적 서구철학에서는 삶의 구분을 ‘진(True/Faulse)/선(good/bad)/미(아름다움/추함)’로 했는데, 니체는 즐거운 학문부터 가치판단의 판(삶, 존재의 척도)을 ‘고귀함/비천함’으로 바꾼다. 즉 ‘그것이 나를 고귀한 존재로 만들 수 있는가’로 판단한다. 고귀함은 그 사람만의 Personality가 있다는 것으로, 보면 그 사람인 것을 딱 알 수 있다.(걸음걸이, 태도 등등). 반면 노예는 구별 불가능하고, 쟤가 쟤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 속에서만 나를 보는데, 비교한다는 것은 ‘척도가 같다는 것’으로, 척도를 넘어서야 한다. 즉 비교가 끊어진, 비교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거미와 경쟁하지 않는다.(공약불가), 공약 불가능한 차이(공통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비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완전히 다르면’ 공존의 길이 열린다.


니체는 자본주의의 증거가 ‘입맛이 같아진다’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우리 체질을 못 보는 이유는 ‘용기’가 없거나, 게으르거나 비겁하기 때문이다. 즉 내 모습을 보기에 겁나고 귀찮아서. 체질은 라틴어 ‘physis’로 ‘본성, 신체적, 생리적 기질’을 의미한다. 용기가 있는 자만이 욕구의 다채로운 선분들 직시가 가능하고, 섬세한 미각을 가질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보는 게 무섭다. 그 이유는? 내가 나를 되게 멋지다고 믿고 있다. 왜 단점을 꼴보기 싫을까? 뭔가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이 있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내 안에 큰 상이 있고, 여기에 스크래치가 날까봐 나를 보기 싫은 것이다. ‘나한테(자신한테) 진실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한 덕은 ‘용기’이다.
나를 하찮게 본다는 것이 이미 내 안에 대단한 자아가 있는 것이다. 즉 내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보는 것이 깔려 있는 것이다.


‘비천한 인간은 고귀함이 즉흥적으로 연출될 수 없다고 느끼며,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이 결실을 존경해야 한다고 느낀다.’(p111). - 비천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고귀함이라는 것이 있어 저게 되게 어려운 일이다. 감히 내가 할 수 없다고’ 느끼고, 고귀한 인간들은 이를 ‘감히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한다. 노예생활을 감수하게 하려고.’ 그래서 고상한 모습을 혈통으로 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노동자)도 우연과 행운을 시험해보자!(p111) - 내가 고귀한 자가 되어야지 생각하지는 않고. 우리는 우연과 행운으로 우리가 ’경멸하는‘ 공장주가 되려한다.


사상가에게 성공과 실패는 그에게 최우선의 해답이 된다. 여기서 해답은 ‘내가 가진 질문을 해소시켜준, 그 질문을 해체(해소)시키는 힘’을 말한다. 질문을 해체하는 것, 처음이자 끝을 resolve(풀어헤친다)한다. 여기서 해답은 ‘정답’이 아니다. 정답과 구별된다. 뭔가를 ‘함’, 그 자체가 실험과 질문인 것이고,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다.(근영샘이 정화스님 말씀 인용하심, ‘콩 심은데 콩 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 기적 같은 인연장으로(태양, 바람 등 자연 등등의 도움) 콩 나는 것임).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가 중요한 것은 매듭을 지어야 다른 길을 간다.(근영샘이 이해하기 쉽게 구미호 예시를 들어주심, 구미호도 100일을 살아야 그 다음 스텝(사람이 되지요?^^)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끝까지 해야 한다.) 해명이 안 되면 윤회하게 된다. 해명을 얻을 때까지 가야 해답이 된다. 질문에 정답을 찾아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끝까지 가야 질문을 놓게 된다.


마지막으로 유고(p426) 니체의 질문 다섯 가지가 나와 있어요. 근영샘께서 우리도 가지고 가면 좋은 것으로 알려주셨는데, 내용은 각자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궁금증 유발~책 읽어보시라는^^)
살짝 말씀드리면, ‘인간은 ~~~ 경멸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스스로에게도 경멸할 수 있어야,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비천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비인격적인’ 모든 삶의 형태는 천하고 경멸할 만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여기서 ‘비인격적인’은 personality가 없는 것, 인격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세미나 시간에 우리가 우리 체질을 못 보는 이유가 용기가 없거나, 게으르거나 비겁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요. 자기 자신을 보는 게 무서운 이유는 내가 나를 되게 멋지다고 믿고 있기 때문으로, 내가 내 안에 그린 큰 상이 있고, 여기에 스크래치가 날까봐 나를 보기 싫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내 모습을 직시하지 못하고, 어떤 상을 그려놓고 살다보면 나중에 아우쿠스투스처럼 연극했다.’는 유언을 남기게 될 것만 같았습니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마지막에 한평생 연극했다고 고백하는 삶은 아닌 것 같아요...그렇게 살긴 싫네요..그러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정답(?!)에 대한 상부터 놓아야겠습니다. 사상가처럼 뭔가를 으로써 그 자체가 실험과 질문이 되는 해답을 구하는 삶으로...(넘 거창한가요? 그래도 하루하루 하다보면 되겠죠?^^)

후기를 쓸 때 원래는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쓰겠다는 욕심과 늘 시간을 못지키는 습관이 있었는데요.(그래서 후기쓰기도 전에 쓸 생각만으로도 녹초가 되어 결국 못쓴 후기도 있습니다. ㅠㅠ) 이것이 제가 마치 항상 정답(하나도 빼놓지 않고 세미나 내용을 다~ 써야겠다.)이 있다고 생각하고 하는 행동 같아 이번에는 노트필기만 가지고 후기를 썼습니다. 그러니 시간도 훨씬 적게 걸리고 좋습니다.^^ 이번에 강독을 하면서 제가 오독하는 것들을 라이브로 생생하게 볼 수 있어서 부끄러웠지만 신기했던, 읽기와 관련해서 첫 경험이었습니다. 니체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제가 생각하던 의미들로 단어들을 읽어대고 있었더라고요~ 그래도 매듭을 짓기 위해 ‘끝까지’ 해야겠지요? 후기는 빙산의 일각이고, 3시간의 세미나 시간동안 오고가는 이야기들이 늘 충격입니다. 남은 시간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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