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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자

즐거운 학문 4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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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0-09 16:40 조회1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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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번 주 발제를 맡은 이인입니다. 이번 발제를 준비하면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동정에 대한 부분인데요. 니체가 동정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구체적인 내용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네요. 사실 이 내용을 읽기 전에는 니체가 동정이라는 행위는 나쁜 것이야 라고 규정해 놓았다고 생각했었어요. ‘동정이나 연민은 약자들이나 하는 거지.’ 라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죠. 하지만 책 속에 말들은 동정 자체를 비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동일한 고뇌, 동일한 희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네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네 친구들에게만 도움을 주라! : 그것도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즐거운 학문 / 책세상 / 338. 고뇌에의 의지와 동정하는 자.)

그렇다면 니체는 어떤 맥락에서 동정하는 행동을 부정했을까요? 먼저 니체는 동정하는 게 동정 받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를 질문합니다. 저는 이 글을 읽기 전에는 완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라는 확고한 전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가 힘들 때 여러 번 상담도 해주고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니체가 저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걔를 알아?” ! 정말 저는 그 사람이 겪은 사건과 그 사건이 어떤 인과를 거쳐서 나왔는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내적인 연쇄와 연관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저 저는 피상적인 말들, 고통을 해소시켜 줄 해석들만 내 놓았던 것입니다. “다 잘 될 거야.” “이 세상에 여자는 많아.” 같이 말이죠.

“‘불행을 통한 그것의 균형, 새로운 원천과 요구의 분출, 오래된 상처의 치유, 과거 전체에 대한 거부 등 - 불행과 연관된 모든 것은 동정을 베푸는 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즐거운 학문 / 책세상 / 338. 고뇌에의 의지와 동정하는 자.)

저는 그동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겪은 불행은 없어져야 할 것, 나쁜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저에게 있어서도 사실 불행과 고통은 없애야 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풍족하지 않은 생활에서도 충만을 느낄 수 있고, 대학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게 됐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니체는 동정하는 자가 되는 게 자신에게 유익한 일인가?’를 고민합니다. 여기서 저는 많이 뜨끔했는데요. 왜냐하면 동정하는 것은 나의 길에서 벗어나 있는 수백 가지 품위 있고 칭찬할 만한 방식들, 진정으로 도덕적인방식이기 때문입니다. , 동정하는 것은 자신의 길을 벗어나 자기 합리화, 우월감, 만족감을 느끼기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저는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집에 들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꼭 집에 가면 동생들이 고민에 쌓여 있는 모습으로 누워있는데요. 그때 저는 제가 할 일은 얼른 내팽개치고 동생들의 고민 상담에 집중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이것은 진정으로 동생을 위하기보다는 제가 해야 할 일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생들의 고민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동정이란 행동은 비난 받기보다는 오히려 우월감을 주고, 칭찬 받는 행동이다 보니 자신의 길을 벗어나기 좋은 은밀한 유혹이 숨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처벌과 고통을 줘야 하는 걸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버지를 동정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르게 좀 다셨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었는데요. 그런 마음이 시간이 점점 지날 수록 '왜 안 변하는 거지?'같은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싸워보기도 했구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습니다. 마침 니체도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처벌, 질책, 개선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우리는 개개인을 거의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말이죠.

차라리 우리 자신을 보다 높이 고양시키자! 우리가 모범으로 삼는 것에 더 빛나는 색을 입히자! (...) 그래서는 안 된다! 처벌하는 자, 불만으로 가득한 자들처럼 다른 자들을 위해 우리 자신이 더 어둡게 되어서는 안 된다! 차라리 길을 비켜 가자! 눈을 돌리자!”(즐거운 학문 / 책세상 / 321. 새로운 조심.)

그런데 나는 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지? 나는 왜 가만히 있지? 라는 고민이 듭니다. 동정하는 행동도 처벌하는 행동도 모두 다른 사람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충동은 모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행동이 더 효율적일까. 처벌이? 아니면 동정이? 이런 고민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정과 처벌 둘 다 정답이 아닙니다. 특정한 행동 자체는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경계가 그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행동 자체는 맥락과 장을 생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구분은 존재로부터 나옵니다. 그 존재가 고귀한지 아니면 노예인지에 따라서.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변화시켜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고귀한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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