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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자

시즌3. 즐거운 학문 - 3회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다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0-05 17:54 조회8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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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도반님들 추석명절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이렇게 긴 연휴에 니체와 만날 수 있어서 기쁘네요. 와~ 벌써 시즌3가 됐어요. 니체와 더 깊은 만남을 기대해 봅니다. 얍!!


때때로 느닷없이 어떤 사건이 나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느닷없이? 갑자기?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욕망하지 않는 사건이 나와 마주치는 순간은 없는 것 같다. 즉 내 욕망이 그 사건을 내 삶의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아닐까?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두 종류의 행복한 사람 중에 전자는 깨어있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는 게 창조적인 삶인지 잘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낯선 사건과 마주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다소 실수를 저지른다고 해서 그 실수마저도 자기 삶을 가꾸는 질료로 사용할 줄 아는 창조적 예술가다.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기인했고 모든 것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모든 사물을 필연으로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후자는 어떤 사람일까? 사실 이 사람도 행복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인데 발제를 할 때는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바로 비판적 시선으로 세세하게 절단하고 거짓된 행복에 도취된 사람으로 치부했던 것 같다.

후자는 어떤 면에서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려고 하는데 이 사람은 물러섬 없이 당당하게 맞이한다고나 할까? 심지어 파멸과 몰락까지 가는, 갈 때까지 갈 수 있는, 고통을 지속 시킬 수 있는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늘 시선이 타자에게 있어서 강함만을 증명하고 싶었던 무지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정도 실패를 경험했으면 이제 무언가를 향해 질주하던 그 길에서 탈주하여 지금 여기에 있는 나와 주변 환경을 마주했어야 한다. 파멸과 몰락, 실패로 이끌었던 그 강한 힘들을 어떤 배치 위에서 다시 재구성할지 고민했어야 한다. 하나뿐인 자기 생을 위해서. 그러나 그는 죽을 줄 모르고 무작정 불 속으로 달려드는 불나방과 같이 처절하고 어리석은 죽음을 맞이할 것 같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욕망의 배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빼앗긴 또 다른 행복한 사람이다.

충동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는 3번째 세미나였다.

충동은 하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행동하게 만드는 내적 힘이기도 하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처럼 충동도 그저 밀려왔다 다시 밀려간다. 마치 거센 파도가 집어 삼킬 듯이 탐욕스럽게 덮친다고 하더라도... 파도는 그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 외에는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다. 충동도 이와 마찬가지다. 육지로 밀려오는 파도를 작게 가라앉힐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것처럼 인간의 충동도 억압하거나 제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욕망을 통제할 것인가 욕망대로 살 것인가를 놓고 애써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떤 욕망을 가지고 어떻게 실현시키고 살 것인가로 관점을 옮겨놓아야 한다.

수없이 많은 충동들이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이 충동들이 언제 얼마만큼의 크기로 표출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충동이 어떤 크기로 올라올지는 스스로 예측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지친 저녁 무렵 허기진 상태에서 길을 걷다가 치킨집 앞을 지나칠 때 또는 치맥 광고를 보았을 때 우리의 몸은 치킨과 맥주를 달라고 아우성을 칠거다. 그런데 만약 나의 양생을 위해서 평소 치맥 즐기기를 지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식욕이라는 충동을 다른 음식으로, 다른 방식으로 해소시킬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치킨 집이 없는 곳으로 돌아간다거나 허기진 상태까지 되지 않도록 미리 음식을 먹는다거나 그밖에도 여러 가지 다른 방법들을 선택할 수 있다. 성적충동에 의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소유와 집착의 방식으로 관계를 축소시켜 나갈 것인지, share하는 우정의 방식으로 관계를 확장해 나갈 것인지는 우리가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영역이다.

아직 충동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충동에 대해서, 이후에 알게 될 충동의 영원회귀에 대해서 더 깊이 접속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강의 시간에 그녕샘한테 들었던 충동의 정원사라는 표현이 가슴에 따뜻하게 와 닿았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충동을 억압하는 방식이 아닌 키우고 싶은 충동에 물을 더 주고 햇빛을 더 비춰줌으로써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나의 정원. 보잘 것 없이 작지만 잘 키워내고픈 내 충동에 정성을 쏟아보고 싶다.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긍정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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