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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류학 10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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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즌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7-29 15:37 조회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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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유대인 수용소 증언집이라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는 뜻으로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물음의 제목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세미나를 마치고 보니 제목이 정반대의 의미로 다가왔다. ‘이것이 인간인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숭고함에 대해 경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용소는 유대인을 사물화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공장이었다. 이름 대신 번호가 주어지고, 공장트레일러 물건처럼 수백번 행진해야 했으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말없이 중노동을 해야 했다. 노동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자들은, 우리들이 쓰고 난 물건을 쓰레기로 버리고, 버려진 쓰레기가 소각되듯, 수용소 소각장 안에서 소각됐다. 너무 많은 자원이 있을 때 쓸 만한 물건이나 먹을 만한 음식을 사용하거나 먹지 않고 바로 폐기하기도 하는데, 수용소 역시 수용할 인원이 넘칠 때는 선발을 따로 거치지 않고 왼쪽 문으로 나오는 사람은 소각장, 오른쪽 문으로 나오는 사람은 수용소로 보내기도 했다. 수용소 안에서 이들은 철저하게 사물이었으니까.

수용자들은 수용소 안에서 제대로 씻지 못하고, 신발도 떨어지고, 옷이 해지고 먹을 것이 시원찮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한시도 쉴 수 없었다. 하지만 레비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놓지 않았다. 수용소에서 빨래를 하고 깨끗이 씻고 슬픔도 느낀다. 수용자들은 서로의 방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 뿐 아니라 꼭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참아낸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한다는 의지가 생존에 도움 주었을 것이다. 암흑과도 같은 시간에도 내 동료들이나 나 자신에게서 사물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모겠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수용소에 널리 퍼져 많은 수인들을 정신적 조난자로 만들었던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고집스럽게 지켜낸 것이 도움 되었다. 이것이 인간인가. 307

레비가 사물취급 당하면서도 인간으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목적이 있어서이다. 그것은 인간을 사물화 시키는 수용소에서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아 이야기하는 것이다. 수용소가 레비를 노동하는 도구로 삼듯, 레비도 수용소를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수용소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치를 하거나, 폭력을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레비는 있는 그대로 보고 체험하고 느끼는 자였다. 이야기하기 위해.

세미나에서 선민선생님이 내가 생각하는 내가 나인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누군가의 눈으로 보여 지는 내가 나인 것이라고 하셨다. 데카르트 만원경으로 레비를 보면 수용소 입장에서 레비는 이용되고 버려져 폐기처분 되어야 할 사물이어야 했다. 그런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탄생했다. 사물의 취급을 받고 인간의 이야기를 하다니. 오류가 났다.

책을 읽고 세미나를 통해 레비를 본 나는 레비에게 경외감을 느꼈고, 관계망 안에서 나는 타인에게 어떤 감정을 주는 사람인가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관계의 눈에 비친 나는 불쾌감 보다는 쾌와 연관된 감정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 더니 갑자기 피곤해졌다.

레비가 타인의 눈을 의식하고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을 겪었고 그것은 이야기 되어져야 했다. 레비를 통해서. (이게 선민샘이 줄곧 말씀하셨던 중동태..?) 레비는 나치가 얼마나 나쁜가 폭로하기 위해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 거대한 폭력과 접속해 체험하고 느낀 자신의 삶을 이야기 했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진짜로 내 자신으로 살아가고, 살아남아, 이야기 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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