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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s2-10/ 『 이것이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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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쑤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7-20 17:50 조회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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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발제0720.hwp



수용소, 노동 인간 제작소

 

이런 생활환경 속에서 얼굴을 씻는 다는 것은 어리석고 심지어 무례하기조차 한 것 같다. 이것은 기계적인 습관일 뿐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절멸의 의례를 처량하게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아니, 이미 죽기 시작했다. (프리모 레베,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게, 57)

 

수용소는 인간을 노동하는 동물로 전락시키는 곳이다. 이곳에서 개인은 타인과 구별되는 개체이기 보다는 포로라는 추상적 존재로 대체된다. 이름은 사라지고 숫자로 대체된다. 177555. 숫자를 통해 알 수 있는 국적, 수용소에 들어온 시기, 타고온 기차가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수용소에서 인간은 생존이라는 이해관계만을 가진 존재로 변해간다. 이곳은 신발 하나에 목숨이 결정되는 곳이다. 자신의 발에 맞는 신발을 골라야한다. 고를 기회는 단 한번 뿐이다. 장시간 노동과 행진 속에서 딱딱하고 거친 신발은 발을 짓무르게 한다. 짓물린 발은 그를 제대로 걷지 못하게 만들고, 제대로 걷지 못한 채 허둥대면 곧장 얻어맞고 죽는 길 밖에 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 타인은 내 눈 앞에서 사라진다. 나는 오로지 내 발에 맞는 신발, 밥을 뜰 수 있는 수저, 구멍난 옷을 매울 종이만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빼앗기지 않게끔 보따리에 감춘 채 잠드는 방법만을 알아간다.

독일어로 들려오는 저 말이 무엇인지 묻지 못한다. 내가 이 행동을 왜 해야 하는지 묻지 못한다. 이곳에서 개인은 자신의 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한다. 그렇게 그는 세계를 잃어간다. 152222의 생명과정은 자연의 순환운동의 일부가 되어 무한히 반복될 뿐이다. 하루하루가 똑같아 날짜를 계산하기도 쉽지 않다. 살고 싶지만, 죽어야만 끝나는 노동의 고통 속에 갇혀 있다.

오직 죽어야지만 이 과정을 끝낼 수 있을까? 이곳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눌아흐첸(60p). 눌아흐첸은 더 이상 인간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 심드렁해서 구타를 피하려고도, 음식을 구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기운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수레를 밀고 끌고 옮긴다. 그러고는 예고의 말없이 갑자기 쓰러져버린다. 죽는 것만이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다른 길은 없을까? 수용소에서 나오기 전까지 그들은 노동과 고통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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