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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세미나
인류는 어떻게 '잘' 살고자 해왔을까? 그 다양하고도 찡한 시도들을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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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세미나 11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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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4-05 16:21 조회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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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세미나의 마지막 책은 마치 선물처럼 느껴졌다. 이전 책들과 비교해서 너무 쉽게 읽힌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올리버 색스의 따뜻한 마음이 마치 함께 있는 듯이 가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음의 눈은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가 만났던 환자들에 대한 진료와 관찰 보고서다. 많은 친구들이 발제문에 궁금하다’, ‘의아하다라고 쓴 것처럼 이 의사는 딱히 치료나 수술을 하는 건 아니고 환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의사를 만나면 돈을 지불할텐데, 지금 올리버색스는 무엇을 치료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책은 그들의 병세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담담히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환자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올리버 색스에게 연락을 했고, 자신의 상태를 점검받으려고 한다. 그들은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뭔가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사례자는 릴리언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을 인정받아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중년 즈음의 어느날 악보를 읽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 악보에서 시작한 그녀의 시각인지장애(실인증)는 문자로, 그림으로, 눈앞의 사물의 형태들까지 분간을 못하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올리버색스는 그녀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녀의 피아노 연주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다. 연주와 관련해서 너무나 자세하게 기술한다. ‘눈을 감고서 마주르카 작품 502악장을 흔들림 없이, 활기와 감정을 실어 연주했다’, ‘나로서는 귀에 익은듯하면서도 낯선, 아리송한 음악이었다. 하이든의 4중주곡인데, 2년 전 라디오에서 듣고 반해서 꼭 한 번 직접 쳐보고 싶었던 음악이었다고 릴리언은 설명했다’, ‘높이 울려 퍼지다가 서서히 녹아들어 안으로 휘감기는 소리였다. 힘과 감정이 온전히 실린 절정의 예술적 연주 속에서 하이든의 음악은 격랑, 음악적 격론에 휘말려 들어갔다’. 등등. 릴리언에 관한 1장의 글은 그녀가 피아노를 치고 나서 뱉은 다 용서했어라는 말로 마쳤다.

세미나때 무엇을 용서했다는 것일까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수정이가 자기 자신을 용서했다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며 분노, 억울함, 당혹감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고... 했던 것 같다. 나도 동의한다. 그녀는 자신이 뭔가를 잃었다고 생각하고 당혹스러움과 분노를 느꼈겠지만 연주를 하면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악보를 보고 그대로 연주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주변과 공감하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감사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운명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선민샘께서는 마지막 몇 문단에서 보여지는 올리버색스적인 맥락에 대해 마음의 눈과 연결해서 설명하셨다. 올리버색스는 릴리언이 연주하는 그 장소, ()을 분위기를 세세히 묘사하면서 그 장이야말로 바로 마음의 눈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라고 하셨다. 그 분위기, 하나의 터치, 긴장, 선율.... 그것이 마음의 눈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생물종 중 인간만큼 시지각을 많이 쓰는 종은 없다. 시지각은 바로 문자이며 이미지이고, 그것이 바로 말()이다. 그래서 시지각에 문제가 생긴 릴리언에게는 점차 개념들도 사라져간다. 인간의 언어는 시각언어라는 선민샘의 말이 너무나 놀라웠다. 인간 자체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말처럼, 종교적으로 느껴졌다.

환자들은 올리버색스에게서 무엇을 얻고 있는 것일까? 시지각을 잃게 되면 당황하고 분노하고 치료에 집착한다. 그러나 올리버색스와 만나는 환자들은 더 넓은 장의 눈을 얻는 과정을 밟는다. 그들은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만나는 과정, 새로운 패턴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에 있다.


윤하는 의사와 환자들이 보여주는 우아함에 꽂혔다. 그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치료과정을 보여주지 않는 대신, 우아하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떻게 하면 삶이 우아해지는가? 억울함이 사라지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는 것? 거기서 그치면 안된다. 올리버 색스적인 우아함은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가는 되먹임(피드백)고리에 자신을 엮는 것라고 선민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예전에 역치 얘기를 하면서 엄마역할의 역치는 대체 어디까지 낮아져야 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낮아지면서 우아함을 잃으면 그건 역치가 낮아진게 아니라 자기가 손상되는 것이라는 말에 나도 우아하게 역치를 낮추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여기에 피드백의 고리라는 개념을 적용해보면 길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패턴이란 어딘가에 존재하는게 아니라 상대와의 관계에서 되먹임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 패턴을 깨고 저 패턴으로 옮겨가는 게 아니다. 패턴은 그렇게 나와 떨어져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까. 변화한 조건과 계속 부딪혀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과거의 패턴이 느슨해지고 새로운 패턴이 생긴다. '원래 그랬어' '엄마는 이래야해'.. 이런 말들로부터 떠나서 그냥 변화하는 상대, 변화하는 조건들과 부딪혀가는 것이 되먹임(피드백)의 고리일 것이다. 올리버색스를 알게 돼서 기쁜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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