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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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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세미나 10주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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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4-02 11:16 조회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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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음의 생태학후기를 쓰게 된 문빈 입니다.

처음에는 책이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접속해야 할지 몰랐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세미나 장)의 도움을 받아 책을 다 읽고,

책을 다 끝낸 지금에는 마음속에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말들이(이해는 안 됐지만) 계속 떠돌면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주에는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마음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마음은 내재적이지만 육체에만 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육체 밖의 통로들과 메시지에도 내재하며, 개인의 마음이 하부 시스템에 지나지 않는 그보다 더 큰 마음이 있다. 이 더 큰 마음은 신과 비교되며, 어쩌면 일부 사람들이 신으로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여전히 전체적으로 상호 연결된 사회 시스템과 지구 생태계에 내재해 있다.” p694


마음은 뭘까요?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마음이 내재적이지만 육체에만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오묘한 말을 해줍니다. 그리고 육체 밖의 통로들과 메시지에도 내재한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신체는 닫힌계가 아닙니다. 코로 숨을 내쉬고, 외부의 음식을 먹고 소화하고, 사람들 간에 기운을 주고받고, 장의 에너지를 주고받습니다. 마음은 개인이 느끼는 것이기에 내재적이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이 개인의 육체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육체 밖의 수많은 요소(패턴)들과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기에 더 큰 시스템에 내재해 있다고 합니다. 정리하자면,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지구 생태계까지 확장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내가 의지를 내서 일으키는 게 아니라 패턴과 패턴이 충돌하여 창발하는 것입니다.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제목처럼 마음을 하나의 생태계로 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태계는 온갖 종류의 자연이 상호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우리 마음이 단일한 원인(나의 의지)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목적론적 사고를 비판합니다. 목적론적 사고는 어떤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라고 생각 방식입니다. 가령, 나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해! 라는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한다,’라는 생각 방식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하고, 의지를 불태우기도 합니다.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왜 이것을 비판할까요?


인간은 혼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며, 일어난 일들이 무언가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그는 아직도 자신을 그런 혼란이 존재하는 시스템의 일부로 보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을 제외한 시스템의 나머지들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비난한다.” p660


제 생각에는 목적론적 사고에서는 목적을 달성하여도 내가 했다라는 오만함이 생겨, 전체 체계를 무시하게 되는 오류를 범한다는 점입니다. 전체 체계를 무시한다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 수단으로 대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됐을 때 전체 체계와 단절이 일어나는 위험한 상황에 빠집니다. 반대로, 그 목적이 달성하지 못하여도 문제입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안 됐지? 라는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를 자책하기도 합니다. 전체 체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니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목적론적 사고는 한 마디로 구렁텅이 같은 곳인 것 같습니다.


그레고리 베리트슨은 그 대안으로 지혜를 말합니다. 지혜는 내가 부분이라는 걸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떠한 장이 를 만들고 있고, 전체 시스템에서 내 의지가 생겨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듭니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면, 우주에 있는 여러 패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책임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저희는 세미나에서 책임은 어떤 수준에서 풀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엄마가 아동학대를 했을 때, 엄마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지를 가지고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윤하샘은 책임진다는 것이 어떤 결과가 있다는 말을 전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원인과 결과, 인과론적인 사고를 인정하지 않기에. 어떤 결과에 책임진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을 거 같다고 얘기를 했고. 책임을 진다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매번의 사건마다 그 과정을 겪는 것일 뿐인 것 같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실에서 책임의 문제를 풀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고. 패턴들 사이에서도 클래스 차이가 있듯이. 클래스 수준을 나누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영역이 있지 않을까 고민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선민샘께서는 패턴 안에 있기 때문에, 패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차원을 더 세세하게 나누고, 문제의 수준을 더 미세하게 패턴화시켜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이해로 바꿔서 생각해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임진다는 것은 자책하고 고뇌하는 게(부분적 인식, 목적론적 인식) 아니라 벌어진 일에 대해 이해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어떤 패턴화에 의해서, 어떤 전체 체계 속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다양한 수준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진실로 이해하게 되면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상으로 마음의 생태학이 끝났습니다!

어려운 책이었던 만큼 많이 배우고 새로운 생각들을 이렇게 저렇게 많이 해본 것 같습니다~

배움과 생각을 일으켜 준 인류학 세미나 장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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