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획세미나 통합 게시판입니다.

기획 세미나 기획 세미나

서양사유기행 번개세미나 4주차 늦은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푸른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7-15 14:45 조회104회 댓글0건

본문


끝난 벙개셈 시간에 올리는 늦은 후기.


지난 주 벙개세미나 마지막 시간에는 7, 8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죠.


저는 사실 8장 제목이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유에 대한 공포라니. ㅎㅎ 우리는 모두 자유를 갈망하지, 아니 원한다고 외치고 있지 않았던가. 저자에 의하면 그리스 합리주의가 절정을 이룬 후 쇠퇴하면서 비합리성이 복귀된 지점에는 개개인이 각자 스스로가 가진 자유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세기 남짓 개인들은 자신의 지적 자유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었고, 이제 그들은 매일매일 느껴야 하는 책임이라는 부담 앞에 벌벌 떨기보다는 차라리 점성술이 정해준 운명이라는 엄격한 결정론이 더 낫다고 보면서 이 소름끼치는 광경에서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그리스인들과 비이성적인 것, 184페이지)

자유에 대한 책임이 너무 무거워 차라리 점성술이 정해준 결정론에 ‘속박’되기를 원했다는 그리스 사회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행동이 말로는 자유를 원한다지만 정말로 그러한가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기에 이런저런 회피의 장치들을 찾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예전 호메로스 시대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전사들처럼 개인의 내면이 없는, 그래서 나와 너가 구분되지 않았던 시대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부터 우리 각자가 가지는 이렇게 미약한 존재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불안으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근영샘께선 그 불안을 더욱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은 분명 우리가 속한 사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필연적으로 하나의 점처럼 떠있는 개체가 된 이후, 사회의 부추김이 없다면 어쩌면 점들이 서로 손을 잡음으로서 점이라는 개체의 필연성 위에서 충분히 충만할 수 있는 방식으로도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자꾸 그럴 수 있는 가능성들을 모두 차단하려고 하지요. rational (합리적인)이라는 단어가 ratio라는 비례에서 왔고 그 비례는 관계에서 시작되었으나 그것이 개인이 가지는 몫이라는 분배로서만 사용되는 것처럼 내가 개인으로서 가지는 힘을 뛰어 넘고자 누군가와 손을 잡고자 할 때 그것이 선 관계, 후 분배가 아닌 선 분배가 되어버린다면. 모두가 혼밥 혼술을 원하는 사회가 되겠지요. 관계 자체가 나를 충만하게 그래서 내가 가진 존재적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것이 아닌 나를 더욱 피로하게 하는 것이 될테니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은 내가 이러저러한 자유를 정말 원하는가?부터 들여다보아야할 것입니다. 이어서, 그것에 따르는 책임과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 책임과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나 개인은 누구/무엇과 손을 잡아야 하는가? 내가 지금 잡고 있는 것이 혹시 사회가 심어 놓은 속이 텅빈 가짜인형이 아닌가…? 


다음 시즌에 또 만나요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