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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학문 4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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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3-02 23:09 조회614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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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자 후기김해숙

 

오늘의 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배운 점을 정리해 보겠다. 첫째는 발제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오늘 수업 내용 부분이다.

 

먼저 발제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 점. 내가 입발제한 부분은 14장부터 19장까지였다.

나는 각 장을 읽고 그 장에서 말하는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식으로 발제를 했다. 버벅거리지 않으려고 공책에 문장으로 적어가서 읽었다. 하지만 말과 문장의 차이는 컸다. 따박따박 내용 정리는 했으되 사람들에게 글의 뜻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근영샘은 내가 자습서처럼 내용 정리에 급급한 읽기를 해서 그렇다고 진단을 내리셨다. 그래서 니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근영샘은 책을 읽을 때 독해도 중요하지만 책을 어팩션있게 읽어야 한다. 자습서식 공부는 기억이 안난다. 물리적인 충격이 있어야 어팩션있게 읽은 것이다. 웃기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등등 마음과 감정이 일어나는 걸 느끼며 책을 읽어야 나중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중요한 건 니체는 자기 글에서 감정이 일어나길 바랐다라고 말하셨다.

나는 니체의 말이 어렵다고 생각하여 무겁게 책을 대한 거였다. 그래서 니체의 말뜻을 해석하기에 급급했다. 그 방법으로 내용 파악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생각할 거리를 찾는 형식을 취했다. 그런데 이번 발제는 내용 정리하는 데서 끝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책을 잘 읽는다는 걸까? 책과 내가 물리적(몸과 마음)으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근영샘은 책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배울 점을 찾는 훈련을 하라고 하셨다.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젠 책을 못읽어낼까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반응이 생기는 부분을 느껴서그 부분을 책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삼는 실험도 해봐야겠다.

 

다음은 오늘 후기 두 번째 주제-새로 배운 점

즐거운 학문 16장에서 니체는 우리가 삶을 너무 멀리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라고 문제제기를 한다. 산 밑에서 저 멀리 있는 산을 보면 겹겹이 쌓여있어 뭔가 신비롭고 위대해 보이는 것처럼, 우리 삶에도 뭔가 대단한 의미를 붙여서 삶을 가치있게 만들려고 하지 않나?라고 묻는다. 그래서 자꾸 표상을 잡아 놓는다. 좋은 사람, 선한 사람 등등으로. 그리고 별 갈등없이 사는 매끄러운 인생으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좌충우돌 사는 인생이다. 실수도 하고, 질투도 하고, 때론 스스로에게 만족하기도 하면서. 그런데 요런 민낯을 보면 왠지 내 삶이 가치가 없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견딜 만하고 매력적이며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으로보이기 위해 타인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 뿐 아니다. 나 자신에게조차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멋(의미와 가치)있게만 보고 싶어서다. 이래서는 자기 인식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을 니체는 17장에서 다리를 건너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다리를 오간다는 것은 동사. 서로를 향해 움직인다. 우정과 우애를 느낀다는 것은 감정과 몸을 움직이는 움직임 아닐까? 헌데 사람들은 작은 다리 앞에서 멈칫한다. ‘상대를 매혹적으로 보고싶어서자기 자신을 있는대로 보여주기가 두려워서. 그런데 우리가 타인하고만 이렇게 관계를 맺고 있는 걸까? 우리는 나 자신의 민낯도 차마 못보는 것 아닐까? 아니 끝까지 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거 아닐까?


니체는 이런 우리에게 그러지 말라고 한다. 자신을 똑바로 보지 않는 것은 자신의 긍지를 잃은 것이라고, 18고대의 긍지 장에서 얘기한다. 고대 철학자들은 노예를 아주 멀리했다. 왜냐하면 노예란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경멸해야 마땅한 존재였다. 아무리 높은 권력자라해도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면 그는 노예로 생각되었다. 그런 면에서 현대인은 노예 중의 상노예다. 왜냐하면 생각없이 일만 하느라 자기 존재를 인식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도 없다.

반면 철학자들은 빈곤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빈곤을 멋지게 고쳐 해석해서다르게 살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운영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귀하게 살려면 경멸해야 하는 법부터 배워야 할 듯하다. 자신에 대해 끝까지 탐구하기를 겁내는 이 습성을 부끄러워하기! 하지만 니체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이 고대인의 긍지를 우리가 갖기란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이제까지 배워오고, 갖고 있는 인식들이 그만큼 견고하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아마 이 이유가 또한 니체가 우리에게 즐거운 학문을 가르쳐주려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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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동권님의 댓글

김동권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다리를 건너지 않는 사람에 대한 부분이
콕! 와닿아서 가슴이 욱신욱신 거렸습니다.
자신에게도 다리를 만들어 거리를 두는건 아닌가 하는 부분도 공감백배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민낯의 나를 보는날이 더 늘어나네요 ㅎㅎㅎ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거 같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