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획세미나 통합 게시판입니다.

19.5세기 자연학

[사기세미나]진시황제, 분서갱유를 하다

게시물 정보

작성자 김한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1-27 11:19 조회1,493회 댓글0건

본문

사기 세미나 15.11.18 후기 / 김한라


진시황, 분서갱유를 하다


열전을 탐색한 후, 다시 본기로 돌아와 진시황이 분서갱유하는 부분을 같이 읽었습니다.


자신의 땅을 순무하다


진시황은 자신이 통일한 모든 곳들을 돌아다니며 순무하였다. 이점에 대해서 세미나 시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신이 이루어낸 산물임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또는 하나하나 자신의 손을 거쳐야 직성이 풀리는 진시황이기에 그런 것이지 않았을까 라는 이야기들을 하였다.


그리고 진시황은 순무를 하며 자신의 업적을 남기는 비문을 세웠다. 또한 각 리()마다 백성들에게 쌀 여섯 섬과 양 두 마리씩을 하사했다. 진시황은 가혹한 정치를 한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서는 의외로 복지에 신경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로장생을 꿈꾸다


진시황제에게 하나의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불로장생하는 것. 이것을 알게 된 서불은 진시황을 찾아와 말하기를 먼 바다 가운데 신선이 있는데, 그것을 찾으면 불로장생을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을 믿은 진시황은 서불에게 많은 돈을 주고 기다렸다. 그러나 서불은 진시황에게 거짓을 고한 것이었고, 그 돈으로 일본에 가서 살았다는 설이 있다. 그럼에도 진시황은 불로장생의 꿈을 계속 꾸었고, 그래서 많은 사기꾼들이 몰려들었다.


34, 진시황이 함양에서 주연을 베풀어 박사 70명이 왔다. 그중 순우월이라는 자가 진시황에게 말하기를 황제가 죽고 나서 대를 이어 받을 왕이 없으니 그것을 속히 정하라고 하였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보필할 신하가 없으니 진나라가 망한다고 말이다. 이것을 들은 승상 이사는 이렇게 대꾸했다. 지금의 시대는 법이 있어 예전과는 다른 시대이다. 그런데 순우월의 생각은 옛것만을 배우는 유생의 생각이니 천하를 통일한 황제에게 도움 될 것이 없다고 말이다. 진시황은 누구의 말을 들었을까?


불로장생의 꿈을 믿어서 일까. 진시황은 승상 이사의 말을 들었다. 영원한 삶을 살 것이기에 자신의 후대를 정해놓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말이다. 이사는 또 말했다. 유생들은 자신의 학문을 닦음으로써 황제의 법령에 불만을 가질 것이니, 이것을 금지시켜 (), ()및 제자백가의 저작들을 불태워 버리고, 이것을 말하는 자는 사형시켜야한다고 말했다. 진시황은 이것을 허락하여서 이때에 많은 책들이 불태워져 없어졌으며, 공자의 논어 또한 여기서 불타 없어졌다(다행히 입으로 외워 전해져 지금도 알 수 있다). 이것을 일러 분서사건이라고 한다.


그리고 노생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황제에게 선약을 구해다주리라 약속을 했던 자이다. 그런데 그의 속마음에는 황제를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것을 후생과 대화하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진시황은 고집이 세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탐욕이 많아 두렵다. 그래서 선약을 구해다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노생은 도망을 갔다. 이것을 들은 진시황은 화가 나서 이런 자들을 수색하여 함양 땅에 생매장시켰다. 이때에 죽은 자가 대략 460명 정도 되는데 이것을 일러 갱유사건이라고 한다.


분서갱유를 한단어로 알고 있어서 하나의 사건인 줄 알았으나, 엄연히 다른 때에 일어난 사건이다. 물론 같은 맥락에서 터진 사건이지만 말이다. 진시황은 이 사건을 통해 불로장생의 꿈을 포기하였을까 아니면 노생의 말대로 고집스럽게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끝까지 후손을 정해놓지 않은 것을 보면, 불로장생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같다. 그의 집요한 점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힘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방궁 건축


마지막으로 유명한 아방궁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시황은 사람은 많지만 궁전은 작다고 여기어 남쪽 상림원에 새로운 궁전을 짓게 하였다. 그 크기와 모양은 말하자면 이렇다. 동서의 넓이가 500()이며 남북의 길이가 50()으로 10000명이 앉을 수 있으며, 아래쪽에는 5() 높이의 깃발을 꽂을 수 있다. 사방으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궁전 아래부터 남산에 이르기까지 통하게 했으며, 구름다리를 수축하여 아방에서 위수를 건너서 함양에 까지 이르게 함으로써, 북극성, 각도성이 은하수를 건너서 영실성까지 이르는 모양을 상징했다. 지금 들어도 어마어마한 크기인데, 이것을 짓기 위한 인력 또한 만만치 않았으니. 궁형, 도형(유배형)을 받은 약 70만여 명이다. 즉 죄인들을 이용하여 아방궁을 지은 것이다. 이렇게 호화스러운 아방궁을 요새는 무릉도원같은 단어의 의미로 쓴다. 그러나 실상 아방궁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 평지정도의 밑바닥 공사까지만 하고 그 후에는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