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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테일 세미나s2]_5주차_ 생명의 불꽃, 사랑의 불꽃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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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끈끈이대나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2-19 16:39 조회8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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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청탐에서 공부하는 한결입니다 :)

오늘은 사랑과 성, 결합과 창조에 대해 인류학적 스케일을 보여준 로렌스 씨의 작품

사랑의 불꽃, 생명의 불꽃』 수업 후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은 감사한 수업이었습니다.

이번엔 어떤 주옥같은 공부팁과 개념의 미로를 풀어가는 해법!를 나눴는지, 함께 보시죠!





*****




<1교시> : 1생명강독


1교시에는 사랑의 불꽃, 생명의 불꽃 1 생명을 선생님과 함께 강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 전반의 걸친 주제들이 생명에 내용으로 수렴되는 느낌이라서, 책을 다 읽고 이 부분을 다시 읽으면 로랜스가 하고자 했던 말이 좀 더 와닿는 것 같았습니다. 로렌스에게 인간, 그리고 남성과 여성은 창조의 핵심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로렌스가 말하는 창조는 뭘까요?

이때, 어떤 개념을 글쓴이가 어떤 방식으로 가져가는지(풀어가는지) 이해해야, 그 개념에서 나온 논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쓴이가 개념을 풀어가는 방식과 그 논리를 이해해야 글쓴이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주의 : 내 상식이 앞서게 되면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로렌스는 사랑의 불꽃, 생명의 불꽃1생명에서 창조에 대해 말하며 능동도 수동도, 시작과 끝도, 있다와 없다도 모두 뒤짚어 놓습니다. 그러면서 창조의 차원을 새들의 노래 소리와 뱀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16)는 차원으로까지 가지고 갑니다. , 로렌스는 창조’, ‘남과 여라는 개념을 새와 뱀의 차원까지 확장하여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작가가 어떤 개념을 어느 차원에까지, 어떤 스케일까지 바라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p.s.

(수업 중에는 샘의 이 말씀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후기를 쓰며 서문을 다시 보니 이런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현대사회가 인간의 개성을 위축시키고, 지성의 발달이 인간을 불건전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문명을 포기하고 원시와 본능으로 되돌아가 원시적인 생명력과 사랑을 회복함으로써 완전한 인간관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이러한 생명주의 내지 인간주의가 바로 로렌스의 독특한 문학사상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9)

새와 뱀의 차원까지 확대한다는 것은 곧 원시적인 생명력과 사랑의 차원으로 확대하여 생각한다는 말이 아닐까요? )



, 작가가 한 개념 주위에 어떤 다른 개념들을 배치하여 개념의 성좌(星座)’를 이루는지 파악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가령, 로렌스에겐 창조뱀과 새(원시적 생명력)’의 개념과 한 무리를 이루는 것이지요.



, 개념의 정의가 명확히 나오지 않을 경우, 그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생명에서 창조어떤 고정된 상태가 아닌,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는 동적인 상태로 표현됩니다. 이를 통해 작가가 창조를 계속 창발이 일어나는 상태’, 혹은 동사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를 이야기하다가 이번에는 갑자기(?) “내 손과 발을 보라, 바로 거기에서 창조된 우주가 끝나고 있도다!”(17)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손과 발이란 인간의 신체’, 이성의 반대되는 개념으로써의 본능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로렌스에게는 신체적인 것이 중요했습니다. 뒤에서도 생각의 모험은 마음이 아니라 에서 시작한다.”(62)고 말하는 것을 통해서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로렌스의 신체성 강조는 곧 그가 여성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다루는 것과 이어집니다. 그에게 있어 여성성이란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것, 곧 신체라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무엇이었습니다.




그리고 20페이지에, 선민샘이 생각하시는 생명의 핵심인 기다림이 나옵니다.


내 영혼은 밤새 저 멀리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누가 오고 있는가? 그 낯선 사람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라. 또 문을 열어라. 내 영혼 속에서 나는 혼자서 가만히 그 낯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영혼은 두려움과 그 새로운 사람에 대한 공포로 괴로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대에 차 기다리는 긴장감도 있다. 나는 그가 나를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기를 기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외롭고 지쳐 있으며 자만심에 가득 차 생명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내 영혼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묘한 기대감에 가득 차 기다리고 있다. 이제 바로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 새로운 사람이 지금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귀를 기울이며 내 영혼 속 깊은 곳에서 그 소리를 들으려고 준비하고 있다.”(20)


낯설지 않으면 우린 만날 수 없습니다. 익숙한 것은 사랑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다르기 때문에 '영혼은 두렵'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알만한 게 오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대에 찹니다. 그것이 나를 어떻게 바꿀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죠.




왜냐하면 지금 나는 외롭지쳐 있으며 자만심에 가득 차 생명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 문장 안에 어떤 개념들이 병렬되어 있으면 그 개념들을 세트로 봅시다.

그래서 뒤에서 '외롭다'는 단어가 나온다면 '지쳐있다', '자만심'을 함께 떠올려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개념들간의 관계도 생각해보는 거죠.

가령, 왜 우리는 외로울까? 자만하기 때문에.

? 자만하게 됐는가? 로렌스에 따르면, 세상이 우리를 몰아가고 그런 세상을 내가 허락했기 때문이죠. 사랑에서 가장 위험한 건 자만이죠. ‘나는 이런 인간인데 너는 왜 이런 나를 안 알아줘?’라는 생각은 자만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나도 사실 나를 잘 모릅니다. 나라는 것 자체가 내가 뭘 낳을지 모르는데,

상대는 나에 대해 어떻게 알겠으며, 그러니 당연히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기에, 그렇다가 사고도 나고, 마음이 다치고, 가끔 좋기도 한 것입니다.

이런 몸과 마음의 변화, 관계의 변화를 계속 보고 갈 수 있다면, 그 상태 속에 있다면 그것이 곧 사랑하는 상태에 있는 거죠. 남녀가 만나서 데이트를 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왜 소설가들(특히 로랜스가)이 연애 이야기를 좋아할까요? 연애의 상태 위에서는 계속해서 변해갈 수밖에 없는데, 창조의 평면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죠. 특별히 애인이 없어도 불안하고 두렵지만, 그래서 외로움을 느끼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상태, 계속 무언가를 만나고 변해가는 상태를 긍정한다면 그것이 곧 연애 중인 거죠.




여전히 내 영혼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묘한 기대감에 가득 차 기다리고 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정서가 바로 기다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다릴 수 있는 태도에는 감사함이 배어 있습니다.

로렌스가 말하는 연애는 자기를 불안과 공포와 떨림의 연속으로 밀어넣는 것입니다. 이때 자만하게 되면 창조가 일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서로 스스로에 대해서도 모르기에, 나에 대해 상대에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자만하게 되는 순간 강요하게 되고, 강요하는 순간 만남이나 창조는 일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때문에 연애에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겸손함은 감사함과 맞닿습니다. 내가 너 아니었으면 이런 것을 경험하지 못했을 텐데.’와 같은 감사 말이죠. 그런 감사함이 입체적으로 표현된 것이 '미소를 짓는다'이진 않을까요?


미소라는 단어가 로렌스에게 어떻게 음미 됐을까요? 감사하며 기다린다가 아닐까요?

기다림의 정서가 연애를 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정서죠. ‘너 덕분에 내가 무엇을 겪어도 나는 기다린다.’와 같은 태도 말이죠. 창조의 평면에서는 누구나 남을 만나야하기 때문에 기다림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의 신체적인 반응과 표현을 미소 지으며라는 말로 압축해낸 로렌스의 정서를 느껴봅시다.




로렌스의 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연애하자.

어떤 것을 새롭게 겪게 될 나를 기다리자. 나를 계속 열자.

초조함을 억누르며 기다리고 지켜보는 법을 배운자.

그리고 마침내 문을 열어보면 새로운 사람이 서 있을 것이다.”



이렇듯 앞부분에서는 창조와 인간에 대해 말하는 인간에 대해 다룹니다. 이어서 남과 여가, 성이 나옵니다.





*****





<2교시> : 남성과 여성, 사랑과 생명 그리고 창조


1. 로렌스의 남성관 여성관


1)남성과 여성


남자는 일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존재, 이성적 존재고, 여자는 애를 낳는 존재, 감정적인 존재, 남성들이 만든 틀의 구속을 원하는 존재라고 표현합니다. 로랜스는 왜 이런, 어떻게 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 구도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얘기했을까요? 로랜스가 이와 같이 얘기할 수밖에 없었던 필요를 따라가 봅시다.


로랜스가 가장 싫어한 것은 관념적이고 이념적, 이성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인류애와 같이 일반적인 이야기는 사실 현실의 그 누구도 반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성()(특히 여성적인 것)은 아주 개별적이고 고유한 특성입니다. 로렌스에게는 같은 남성 간에도, 여성 간에도 같은 성이라고 할 수 없는 고유한 각자의 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는 그 개별성을 나타내기 위한 최소한의 구분이었습니다.


, 성은 상극인 대립하는 두 요소들의 결합입니다.

이렇게 각자 고유한, 그래서 서로 다르고 낯선 남을 만나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달라지는 나를 이해합니다. , 결합, 만남은 너를 이해하는 문제 아닙니다. 여기서 너를 이해한다고 하면 또 인류 차원이 돼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만나면 만날수록 달라집니다. 이런 변화는 내가 나를 낯설게 느끼는 데까지 계속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 개별화의 논리만으로는 사회나 문화를 구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고, 먹을 것을 함께 찾아갑니다. 그래서 개별화들이 모여 문화를, 사회를 구성합니다. 이런 사회화의 과정이 남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인류라는 차원을 아예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어떤 이유로 우리는 사람을 일반화시켜서 끼리끼리 뭉쳐있습니다. 근데 그 뭉쳐있음 자체가 우리의 고유성과 생명력을 제거하는 방향이 아니라, 우리를 계속 개별화시키는 방향으로 더 활력 있게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로렌스는 남성과 여성의 성에 대한 탐구를 중요시한 것 같습니다.


이때의 남성성, 여성성은 생물학적인의 의미를 포함하고 넘어서면서, 어떤 경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결합


지난 시간에 한 버지니아 울프의 경우, 우리가 자기를 규정하는 어떤 틀보다 초월하는 것, 지배적인 질서가 포함하지 못하는 다양한 우글거림, 그것이 여성성이라고 합니다. 남성 중심 질서에 매여있지 않기 위한 모든 변신체가 여성인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낳는다는 이미지는 있으나, 결합의 이미지는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버지니아 울프는 신체 차원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에 신체의 느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반면 로랜스는 관념적이고 지배적인 질서 공허함을 부정하기 위해서 신체적인 것으로 여성을 다시 정의합니다. 로랜스는 신체에 더 주목하고 감정도 신체적인 느낌으로 씁니다. 공허함의 반대를 채울 수 있는 모든 것은 여성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이런 신체성이 강조된 결합이 바로 섹스인 것이지요. 즉 로렌스에겐 나를 계속 다르게 만들기 위해 열려있는 행위모두를 섹스라는 의미로 함축한 것이 아닐까요?





2. 사랑과 생명 그리고 창조

앞서 남과 녀의 다름이 만나고 결합하여 우리 각자는 계속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로렌스는 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잘 정리는 안 되지만 이를 사랑과 생명, 창조의 차원에서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로렌스가 말하는 생명이라는 단어는 범위가 큽니다. 이 단어 안에 사회와의 논리, 문화와의 논리, 우주 속의 인간이 새와 뱀과 관계 맺는 논리가 포함됩니다.

반면, 사랑은 개별화의 논리입니다. 우주의 개별화된 개체가 어떻게 접속해나갈 것인가의 논리. 즉 사랑은 전체가 된 것에서 나를 때어내는 논리인 것이지요.

그리고 창조는 두 차원을 모두 다룹니다. ‘나는 나야만 해서도 안 되고, 달라진 내가 다시 세계랑 계속해서 만나야 하는 과제가 이 작품에 있습니다.





*****






글 마지막 부분이 정리가 안 되 좀 아쉽긴 하지만, 이번 로렌스 수업 덕분에 성, 사랑, 연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저의 전제들을 보게 되었고, 근본적으로 다르게 정의하고 받아들이는, 정말 인류학적인 시선을 얻은 듯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거북이처럼 한 걸음 또 나아갔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습니다.ㅎㅎ


좋은 수업 이끌어주신 선민샘께 늘 감사드리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샘솟도록 너무나 좋은 공부의 장을 함께 만들어주는 도반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이렇게 후기를 쓰면서 새롭게 배울 수 있었던 이번 기회에도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사랑의 불꽃, 생명의 불꽃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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