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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입문 시즌3 4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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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산아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1-21 20:44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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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셔요~ 서철입 시즌3을 함께하는 안미선입니다.

이번 주에는『담론과 진실』에서 두 번 째와 세 번째 강의를 읽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파레시아(진실말하기)가 '의무'로 주어졌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진실말하기가 의무였다니??? 지난 번 책을 읽으면서는 “침묵해도 될 자유에서 진실을 말할 의무(도덕성)”이라고 아주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세미나에서 미진 샘의 진실말하기로 겪는 고충을 듣고 “파레시아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거나 위협과 맞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담론과 진실』,100p) 도대체 왜 이 위협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파레시아를 실천하는 것이 의무로 주어진 것일까? 도덕성 때문에~??


그리하여 이 책 앞 부분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 시작, 하하~~푸코가 파레시아란 단어에 끌린 이유도 저와 같았나요~~

푸코는 이 자기 자신에 관한 진실 말하기와 여러번 마주쳤다고 합니다. 의학적 실천과 정신의학적 실천 속에서, 19세기 초부터 정신의학의 거대한 의식 내부에 자기 자신에 관한 진실을 말할 의무가 침투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사법적 실천(형사적 실천)에서, 그리고 그리스도교 내부에서의 욕망과 육욕의 문제들과 관련해서 만나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모두 말하기’의 역사, 자기 사유의 움직임을 모두 말할 의무라는 것이 푸코를 사로 잡았고,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살펴보고자 했답니다. 그리고 그리스-로마 철학 쪽에서 모든 것을 말할 의무의 실천적 토대를 재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이 철학적 실천을 이론적 원리, 실천적 계율, 기술적 절차의 총체로 간주함으로서 그 형태와 개념을 포착하고 그 전개를 이해하려고 했다합니다. 이는 푸코의 철학적 접근이 철학적 이론이 실천적으로 계율로써 제도로써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보는 방법이지 싶어요. (이 이해가 맞는건지?)


그리스 민주정에서는 제도로서 작동,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 공공의 선에 대한 자기 자신의 신념들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이 파레시아는 노예의 순종적인 말하기와 구별됐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와 진실간의 관계-진실말하기의 정치적 차원)

헬레니즘-로마시대는 실천적 계율로서 작동, ‘의식지도’의 실천으로 에피쿠로스의 상호적인 솔직함, 스토아주의의 우정관계는 서로간에 서신으로 진실말하기를 실천, 견유주의는 군중을 향한 도발적인 말로 진실말하기를 실천했다고 하네요.(주체와 진실간의 관계-진실말하기의 윤리적 차원)

그리고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계몽이란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용기를 갖는 것으로 정의, 오성의 사용이란 사유함이며 스스로 사유한다는 것은 자율적이고 비판적으로 판단할 용기를 갖는 것이다라고 (비판적 태도의 계보- 진실말하기의 철학적 차원)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이 솔직히 말하기의 다양한 실천들에 윤리적 태도로서 ‘자기 배려’라는 공통의 토대가 있다는 사실이 감춰지거나 가려져서는 안 된다.” (『담론과 진실』16p)


아~~~ 이 실천들의 전제에 고대인들에게 철학적 실천의 항구적 원리로 작동했다는 ‘자기 배려’의 실천의 목적이 있었다고... 또 질문 하나, 왜 위협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자기 배려'를 실천해야 하나?


“우리는 타자 앞에 불려 나가 자신의 주체성이 아닌 타인이 부여하는 자기 점검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은밀한 정체성을 이루는 내용에 대해서가 아니리 우리의 구체적 품행을 규정하는 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선동가들의 아첨보다도 더 위험한 아첨, 자기 자신에 대한 환상을 품게 만드는, 각자가 스스로에게 하는 아첨이 있기 때문이다.”(『담론과 진실』, 17p)


내가 믿고 있는 진실이 명증성에 있지 않고 상황과 조건에 따라 구성되어지는 것이라고 누누이 명심하려고 해도 현실에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참 힘든데, 이제 나의 의식에 대한 주변인의 충고를 파레시아의 실천으로 받아들여 자기 배려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ps. 파레시아(진실말하기)에는 참된 담론이 필요

"참된 담론이야 말로 우리의 현실과 과감히 맞설 수 있게 해준다."

"참된 담론들은 우리의 사유, 표상, 욕망의 해석이 결코 아니다"(주체의 해석학 526p) (우리의 사유도?)

나의 숙제: 주체의 해석학 526p~532p. 다시 곰꼼히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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