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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테일 세미나] 4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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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한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1-17 20:57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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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매주 금요일마다, 선민샘의 마력에 홀려 문학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한결입니다. 문테일 4주차 수업은 다자이 오사무의 정의와 미소라는 작품으로 진행했습니다. 제가 요즘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끼고 있던 차에, 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주인공 스스무를 만났습니다. 만약 스스무라면, 지금 내 상황에서 어떤 길을 냈을지 궁금해서 후기를 써보며 정리하기로 했답니다. 이에 앞서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던져주신 질문들을 통해 수업을 정리해보기로 합시다.

 

 

Q ‘정의와 미소는 어떤 의미일까?

A 소설의 초반에 스스무는 자신의 첫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형이 들려준 마태복음 616절을 인용하면서 미묘한 사상이다. 이에 비하면 나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촐싹거리고, 주제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반성, 반성. ‘미소를 지으며 정의를 행하라!’”

마태복음 616절에서 위선자들은 금식을 할 때 자기가 금식하는 것을 광고라도 하듯이 침통한 기색을 하고 얼굴을 흉하게 만든다. 스스무가 말하는 미소란 이런 위선적인 침통함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란 오직 하나님께만 자신의 금식을 알리듯 자신의 이상의 이상추구의 본질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을 남이 알아주길 바라거나 다른 요행을 바라지 않고, 신 앞에 선 것처럼 오로지 자기 자신에 충실한 상태인 것이다.

때문에 스스무가 가모메좌 극단의 면접 도중 배우의 사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훌륭하고 추상적인 거짓말을 할 바엔 차라리 모르겠다고 답한다. 춘추좌 극단의 필기시험에서도 자신이 춘추좌의 기러기를 보고 느낀 점을 솔직히 적는다. 그리고 소설의 끝에서도 열심히 노력할 뿐이다. 앞으로는 단순히, 정직하게 행동하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자. 못하는 것은 못 한다고 하자. 잘난 척만 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의외로 평탄한 것인 듯하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Q 나고야 공연이 끝나고 도쿄로 돌아왔을 때, 스스무는 왜 그리하여 모두를.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즐겁게 해주고 싶다. 249라고 했을까?

A 우선 가난한 사람들이란 이상을 행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왜 이상이 가난과 연결되느냐면, 이상을 추구하면 가난하게 생활하게 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바쁜 생활인에게는 이상이 없다. (212쪽 인간에게는 애당초 이상 같은 게 없다. 있어도 그것은, 일상생활에 기초한 이상이다. 생활과 동떨어진 이상은, 아아, 그것은 십자가로 가는 길이다.) 이는 형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스스무가 형에게 공모전에 작품을 내는 것은 자기를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형은 그래도 당선되면 이천 엔이야. 돈이라도 받을 수 없다면, 소설 같은 건 시시한 거야.”라며 굉장히 천박한 표정을 하고 답했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이는 이상에서도 벗어나는 일이 된다. 때문에 이상과 가난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한다.

그럼 가난한 사람들, 즉 이상을 행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이상을 행하는 일은 사실 매우 힘든 일이다. 가난과 같은 생활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무는 배우가 된다는 이상을 따르고 나서 한 번도 편할 날이 없었다. 지옥 같은 연습과 극단 생활에 힘들어한다. 오죽했으면 첫 무대를 마치고 분장실 목욕탕에서, 매일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는 혐오감이 들어 미칠 지경이라면서, 심지어 배우가 싫다!’라고 한다. (마치, 지금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공부가 재밌고 좋아서, 또 이것만이 진리인 것 같아서 진로도 바꿨는데, 막상 일상이 되어버리니까 싫어진다. 때로는 활동들이 너무 많아서 지치고, 계속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욕심이나 미련과 작별하는 게 힘들기도 하고, 답이 없을 것 같은 질문들과 모르겠는 것들을 계속 붙잡고 힘을 쓰는 것이 어렵고 그만하고 싶을 때도 있다.)

이처럼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일지언정 그것이 편하고 즐거울 수만은 없는 법. 그런데 이렇게 이상 추구가 힘들어지면 그 이상이 변할 수 있다. 어느새 돈이라도 받을 수 없다면 소설 같은 것은 시시한 것이라고 말하는 형처럼 말이다.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게 된 스스무. 때문에 그는 이런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 자칫 변질되지 않도록, 미소를 잃고 오만상을 쓰며 오로지 자신의 이상만을 바라보지 못하는 위선자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어 미소를 잃지 않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



이밖에도 생각해볼 여러 질문들을 제시해 주셨습니다만, 미쳐 다 논증하기 어려웠습니다. 같이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 정리해보았습니다.

Q ‘소설은 무엇이고 연기는 무엇인가? 왜 스스무는 소설이 아닌 연기를 했나?

Q ‘공부란 어떤 의미인가?

Q 스스무는 왜 메피스토는 낭독할 수 없고, 파우스트를 낭독했는가?

Q 형은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까?

 


짧은 소설 안에도 모리 오가이의 작품들, 성서, 파우스트 등 여러 우주들이 섞여있어, 바라보고 있자니 막막하고 아찔하기도 했습니다만,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로, 스스무와 조금 더 친해지겠다는 마음으로 만났던 작품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스스무의 에티튜드로 살아본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스스무는 배우가 힘들고 싫다 하면서도 인내하며 계속합니다. 이런 모습이 긍정적이고 밝게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진지해서 약간은 부담스러운 느낌도 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진지함보다는 경쾌함으로 삶과 어려움을 대하고 싶은데 말이죠. 처음 읽었을 땐 자기만의 척도로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태도가 니체를 닮았다고 생각해서 호감이었는데, 다시 읽으니 정말 너무 고결한 느낌, 그리고 금욕적인 느낌에 뭔가 부러질 것 같다는 샘의 표현이 와닿았습니다.

후기를 쓸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네요... 스스무를 따라가서 동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 후기입니다... 그럼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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