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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과 현대 과학 시즌1/ 1차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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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uni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2-13 23:40 조회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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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시간에 보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믿음이란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보통 무엇을 믿는가, 무엇에 대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종종 생각한다. 하지만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일까?

근영 샘은 믿음이란 응낙하는 마음, 열려 있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근영 샘의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응낙하는 마음, 열려 있는 마음이란 아마도 우리가 무엇과 관계할 때 자기 한정으로 판단하고 조건 짓는 모든 것을 비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해서 근영 샘은 믿음이란 삿된 마음이 없는 상태라고도 하신 것이 아닐까?

만일 우리가 이와 같이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무엇에 대해 자기 한정을 비운 그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무엇에 대해 알고 싶다는 오롯한 마음, 즉 무엇에 대한 청정한 호기심일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위 없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보리심과 일체가 될 수 밖에 없다.

화엄경에서는 이 순결한 믿음의 마음을 소년의 마음에 비유하고 있다. 순결한 믿음의 마음으로 물러섬 없이 구도의 길을 가는 소년이 바로 화엄경에서 그리고 있는 보살인 것이다. 화엄경에서 그리고 있는 보살은 우리가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보살의 이미지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보살이 세계를 불법으로 장엄한다고 할 때 우리는 자칫 화엄의 세계란 것이 그 실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해서 우리는 은연 중에 화엄의 세계란 화엄의 세계에 필요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 진 세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화엄의 세계는 그 실체가 따로 있어서 그 실체에 맞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세계가 아니다.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물러섬 없이 구도의 길을 가는 그 자체가 화엄의 세계이다. 화엄의 세계는 보살행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사실은 우리에게 참으로 큰 울림을 준다. 이는 우리가 앎에 대한 청정한 마음으로 배움의 길을 가고 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청년이며 거기서는 언제나 새로운 시공간이 열리고 있다는 의미가 되는 거니까.

더하여 문리스 샘은 누구라도 이해하고 수긍하는 진리들이 왜 우리의 현실 삶에서는 작동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셨다. 이 문제는 나를 포함해서 어쩌면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 모두의 문제가 될 수도 있기에 나는 더욱 공감이 갔다.

이 문제는 결국 무지와 수행의 문제로 귀결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치를 알지 못하거나 거꾸로 알고 있는 것이 무지라 한다면 일단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알기 위해서는 우선 바른 이치를 배우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만일 우리가 바른 이치를 배우게 된다면 그 이치는 저절로 우리의 앎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치를 이해하는 것과 아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앎은 삶에서 몸과 마음으로 깨우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고 이해한 바로 우리의 행을 닦는 것 까지가 앎이라 할 수 있다. 정화 스님께서는 수행이란 내 몸과 마음의 감각 정보를 바꾸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진리가 우리의 삶에서 작동한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의 감각 정보가 진리와 부합하게 작동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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