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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현대과학 세미나 6차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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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1-04 18:01 조회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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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마지막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혼자서는 엄두도 나지 않았던 불경을 세미나를 통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 이해하리라는 과욕보다는 읽기로 한 분량을 읽어오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존재 자체가 고이고 무명의 상태인 우리, 우리는 빛으로 부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색이 아닌 빛이라는 점을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빛은 색을 만드는 근본이고 색으로써 공을 알게 하고 공으로써 색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 여기서 빛과 불의 이미지는 성격이 다릅니다. 불은 번뇌입니다. 빛은 밝혀주고 밝아지는 것이지 보는 대상일 수 없습니다. 빛은 모든 것이면서 다른 것을 존재하게 합니다. 마치 보시처럼요. 빛을 우리 몸, 즉 신경다발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뉴런은 만나면서 빛을 내고 진동을 합니다. 신체의 신경다발로 보면 우리도 부처인 것입니다. 그러나 참 변하지 않는 용렬한 마음으로 인해 스스로 빛임을 거부하는 모양새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본 기억을 재생시키고 그것을 보느라 밖을 보지 못합니다. 내 안의 기억정보를 처리 한다는 것은 분별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내 안으로 눈을 뜨고 보면서 밖을 보지 못 합니다. 습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본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보라고 권하십니다. 이것은 주관적 층위에서 일어나는 선입견을 넘어서, 인간이 지닌 습성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근본적으로 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습이라는 과보를 보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경험에서 번뇌를 없애지 못합니다. 우주적 인연 조건 위에 있다는 것을 봐야 합니다. 이 층위에서 해야 할 바를 해야 합니다. 업을 안다는 것은 죽음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법화경은 열반으로 시작합니다.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 자체는 동시에 죽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존재적 층위를 통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인간은 무명 속에 존재하면서 뭉쳐진 존재입니다. 존재자체가 고집멸도, 집착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적 흐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삶이 내 것이 아니라면 죽음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삶과 주체로서의 삶은 다릅니다. 이 생을 더 누리고 싶다는 욕망의 단절에 대한 고통과 죽음의 고통은 다릅니다. 어차피 죽을 존재라면 그냥 죽는거네 라는 식으로 생각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불교에서 제기되는 허무는 어떻게 관통되어야 하는가? 의 문제입니다. 주체가 없으면 인생은 허무한 걸까요? 주체가 없어서 그 차원에서 허무한 것이라면 업에 대한 수행이 가벼워 질 것 같습니다. 고와 무명을 모르면 왜 멈춰야 해?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바꿔 볼 수 있습니다. 내 존재 자체가 어떻게 자비의 존재가 될 것인가? 이 질문은 대승의 문제의식도 통합니다. 왜 멈춰야 해가 아니라 기꺼이 나를 줄 수 있나? 이 마음이 커지면 왜 멈춰야해 라는 흐름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무아가 자비로 가면 허무가 되지 않습니다. 멈추면 고통, 번뇌를 멈추게 됩니다. 이 지점은 아라한입니다. 대승은 이 지점에서 자비의 존재로 더 나아갑니다. 대승의 이런 운동성이 소승으로부터 문제의식을 쳐낸 부분입니다. 대승은 멈추면 보이고 또 멈추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와 현대과학 세미나는 쭉~ 이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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