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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 불교와 현대 과학 시즌3 - 1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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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른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9-17 18:15 조회217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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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부처되기’



의리와 신심으로 가득한 대승불교와 현대과학 드디어 시즌3이 시작했습니다. 반야심경과 금강경에 이어 세번째로 만나볼 경전은 바로 연꽃향 가득 신묘한 경전, 묘법연화경(법화경)입니다. 법화경을 처음 접하면서 저는 특히 법화경이 대승적 가치를 그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끊임없이 보살행과 일불승(一佛乘)을 강조하여 부처가 되는 하나의 길을 거듭 설하십니다. 보살행이 무엇인고하니, 대중을 함께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 곧 부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부처님이다!’라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법화경 4 신해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요. 옛날에 아주 가난한 사람이 있었는데 온 객지를 다 떠돌다가 부자인 아버지가 있는 도시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고자 갖은 애를 다 썼지만 아들은 항상 ‘나 같은 천한 이가 무얼’하는 용렬한 마음으로 거절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용렬한 마음이 보살행을 스스로 막는 것임을 일깨우고자 이 이야기를 설하셨습니다. 이 마음은 여러 형태로 우리에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겸손을 가장하여 때로는 어떤 실천을 끝없이 유예하는 변명으로 드러나는 이 마음. 용렬함 혹은 비굴함. 바로 우리 안의 이 마음이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시공간에서 속히, 곧바로 가능한‘부처되기’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보살행은 바로 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내가 부처님이다. 내가 사람들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겠다. 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사람 누구나가 보살이며 그 행보가 보살행입니다.  


그렇다면 방편이란 무엇인가. 법화경 2, 3에 걸쳐 방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집이 불타고 있는데 그 안에서 정신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밖으로 구출할 것인가를 통해 방편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하십니다. 아이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일러도 믿질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리불이여, 저 장자가 몸이나 손에 힘은 있어도 이것을 쓰지 않고, 오직 교묘한 방편으로 아이들을 불타는 집으로부터 구해 내어, 그 다음에, 각기 진귀한 보배로 만든 큰 수레를 나누어 준 것처럼, 그와 같이 여래도 또한, 힘이나 자신은 있어도, 이것을 쓰지 않은 채, 오직 지혜와 방편에 의해 불타는 집과도 같은 이 삼계로부터 중생들을 구해 내고자, 그를 위해, 성문 독각 보살의 삼승을 설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법화경 165, 동서문화사) 


불 타는 집으로부터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힘을 사용해서 억지로 데리고 나올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방편이 아닙니다. 여기서 방편을 쓰는 것은 아이들에게 더 좋은 장난감이 밖에 있다고 꾀어 내어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리불, 그리고 함께 읽는 우리 역시 의심이 일어납니다. 방편이라는 것이 그러면 거짓말이 아닌가. 또한 저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지 않은 무엇을 얻게 하는 것이 합당한가?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불타는 집 안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을 밖에 있는 더 좋은 장난감으로 꾀어 내었고 밖으로 나왔을 때 약속대로 큰 수레라는 장난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불 타는 집 안에 있을 때난 밖에 있을 때 무엇이 바뀌었는지 실제로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살행이란 고통에 처한 중생, 고통에 처했는지조차 모르는 중생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의 문제 의식에서 나온 것이고 이에 대한 훌륭한 해법이 바로 방편인 것입니다. 즉 방편은 깨달음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편은 깨달음의 인연장으로 내 이웃과 친구들을 인도하여 그들 스스로가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일화에서 장자는 아이들을 불타는 쾌락의 집이라는 인연장에서 구출하여 새로운 쾌락- 깨달음의 수레-을 장난감으로 하여 놀 수 있는 다른 인연장으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불교가 대단히 강한 힘을 가졌다고 느꼈는데 인연장이 바뀌면 그 누구라도 자연히 깨달음의 길에 이른다 라는 확신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주에는 법화경 5품~12품까지, 법화경의 새로운 해석은 155쪽~276쪽까지 읽고 

모두 어떻게 부처가 되셨는지 얘기를 나눠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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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운리스님의 댓글

운리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용렬한 마음!. 이 마음은 여러 형태 즉. 때로는 겸손을 가장하여 때로는 어떤 실천을 끝없이 유예하는 변명으로 드러난다는...이 마음. 용렬함 혹은 비굴함?!.
부처님의 방편이란 그 용렬한 마음을 끊고 다른 인연장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부처의 자비심이었다는 거죠?
불교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녕님의 댓글

그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안의 후기처럼 나 역시 용렬한 마음과 방편의 문제가 깊이 들어왔다네.
법화경의 이야기들 앞에서, 우리 자신을 '아버지'가 아닌 '아들'의 위치에 놓는 마음. 나를 부처님의 자리에 놓고 어떻게 부처로서 살아갈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부처님이 나타나 나를 이끌어주길 바라는...이 용렬한 마음을 떨쳐내라고 법화경은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네.
방편에 대한 지안의 정리로 좀 더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생겼어. 방편이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부처가 되는 인연장을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 하여 보살로 살아가는 것이란 그런 부처가 될 인연장을 만드는 존재로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 여기까지만 생각했는데, 이것에서 지안은 '불교이 강한 힘'을 느낀다고, '인연장이 바뀌면 누구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불교의 전제이자 확신'을 느꼈다고. 방편에 담긴 그 불교의 전제와 확신, 그리고 용렬한 마음의 떨쳐냄이 만나는 지점에서 앞으로 법화경을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빠른 후기, 지안의 파토스가 느껴지는 후기 땡스~

푸른달님의 댓글

푸른달 이름으로 검색 댓글의 댓글 작성일

저도 방편이 분명 방법/수단과는 다른 것 같은데 사실 피부에 와 닿지가 않았어요. 문샘께서 인연장을 만드는 문제로 풀어주셨을 때 아하! 하는 느낌이 왔는데 그러니 여러가지 그 이전에 가졌던 의문점들이 조금 더 잘 이해가 되었어요. 맑은 연못을 만들면 달은 저절로 찾아오는 건 비유가 아니었어요. 한 마음 일으켜 부처님의 인연장이 접속하면 곧바로 우리 모두 부처가 된다. 안될 수 없다. 부처님께서 내가 ‘보증한다’라고 하신 뜻이 방편이 딛고 있는 강한 확신의 발로임을 느낀! 우리 불교과학 세미나는 참 좋은 셈나입니다! (마무리는 역시 세미나 자랑!) 저의 최애 세미나(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