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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현대과학 시즌2> 6차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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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18 18:35 조회277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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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우주에 존재하는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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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공부한다는 건 내 물리적 실체의 근거가 되는 물적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지만, 우리 세미나에서는 단지 이해 차원이 아닌 좀 다른 경험을 하는 것 같다. 마치 당연했던 것이 절대 당연하지 않고, 또 그 역도 가능하다. 순서와 질서의 개념이 바뀌고, 순간과 영원의 감각이 뒤집힌다. 오늘 읽은 책도 그렇다. 이 작고 짧은 책 안에 무수히 접힌 페이지가 있기라도 한 듯 새로운-당연히 그 안에 살고 있었지만 전혀 알지 못하고, 때문에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세계가 무궁무진 펼쳐져 나온다.

우주는 점과 같은 크기에서 무한에 가까운 크기로 팽창했고, 그 시작에서 유래한 빛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탄생까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된 기원, 그 모든 것의 씨앗은 바로 소멸될 운명을 피해 살아남은 소량의 입자였다. 모든 입자는 물질-반물질의 쌍을 이뤄 생성-소멸을 거듭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대칭이 깨지면서 사라지지 않고 남은 입자가 생겼고, 그것이 장구한 시간을 거쳐 이 우주와 인간을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 대칭이 깨졌을까?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물질과 반물질의 상호변환을 일으키는 어떤 존재 즉 소립자 연구가 지속돼 왔다. 결과적으로 발견된 것이 힉스입자인데, 이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다른 입자처럼 회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흔적은 찾을 수 있지만 실체를 포착할 수 없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사실 이제까지 차원에 대한 얘기는 막연한 공상이나 이론쯤으로만 여겨왔는데, 이미 3차원 이상의 다른 차원을 찍는 사영 기술이 있고 실제 일상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하긴 결국 과학자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힉스입자의 존재가 결국 증명됐듯이 힉스입자가 회전하고 있는 그 차원 역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일지 모른다.

과학이라면 의례 결코 변할 수 없는 고정값을 갖는 절대불변의 원칙을 배우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과학은 곧 공식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별 재미없는 학문으로 치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소립자 하나만 들여다보더라도 과학은 오히려 공식을 뒤집는 상상력과 상식을 깨는 변수로 인해 발전해 왔다. 예를 들어 뉴턴역학이 하늘의 법칙을 지구로 끌어와 지상의 운동을 통일시킴으로써 신의 존재를 약화시켰듯, 양자역학은 그 운동상의 불규칙성과 예외성을 규명함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리고 초끈이론처럼 양측 역학의 틈새를 메우려는 노력 역시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한 대칭성이 깨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대칭성에 대한 기존의 막연한 상식 내지 고정관념도 역시 깨져야 한다. 대칭성을 통해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거울이나 저울 같은 완벽한 균형이나 복사의 이미지다. 하지만 대칭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오히려 엔트로피의 증가’, 즉 무질서의 상태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무분별하며 무작위적이며 방향조차 없는 상태며,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대칭성이 깨진다는 것은 질서와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성을 갖는 일이다. 즉 이렇게 질서를 낳는 힘이 바로 생명이며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질서를 생성하는 힘이 함께 태어나는 일이다. 결국 자연의 순리란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대칭성의 세계, 즉 무질서로 가는 것이며 이는 오직 외부로부터 닫힌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생명이란 이 순리를 거스르는 힘이며, 그 힘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역으로 외부로 열린 세계여야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생성하는 것은 오직 밖으로 자신을 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렇게 보면 과학을 비롯한 낯선 공부를 통해 거듭거듭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을 여는 행위 또한, 공식에 머물 수 없는 살아있기 위한 생명으로서의 당연한 실천일 수밖에 없다. 우리를 생명으로 지키는 질서란 오히려 외부와의 차이를 통해 끊임없는 운동과 사건을만드는 것이다. 

어쨌든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팬은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차원'이 적용돼 있기 때문이고, 한 사람의 에너지가 2년 동안 온 서울을 밝힐 정도의 힘이라는 등,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낯선 세계로 열린 내 존재는 확실히 좀 더 살아있는', '열려있는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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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푸른달님의 댓글

푸른달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역시 빠른 코난샘의 당일후기(멋짐)! 힉스 그 분을 알게 된 후 작은 구멍만 봐도 여기 그 분이 새로운 차원에 돌돌돌 말려 계시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어요. 엔트로피와 대칭성 이야기에서 저는 사건이 질서짓는 것과 연관된다는 점이 또 새로웠어요.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겪을 때 우리는 그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이 일종의 카오스 상태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사건이 똭 발생하면서 마치 사건 주위로 주름이 잡히듯 새로운 차원의 새 질서가 만들어진다는 것. 또는 사건 자체가 새로운 차원으로의 재배치, 새 질서를 증거하는 것 또 나아가 생명의 증거라고도 볼 수 있을지도요!! 역시... 과학이 이렇게 경이롭습니다 :) 다음에 읽을 우주론도 완전 기대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