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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 불교와 현대 과학 시즌 2, 4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후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04 22:52 조회24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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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미나 학인 6명과 튜터샘 2명이 모두 참석하여 출석을 부르고 세미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즉비는 즉비로 충분하다

금강경에서는 즉비(무엇은 무엇이 아니다.)로 우리가 가진 상들을 깨치라고 설한다. '무엇이 무엇이 아니다' 가 또다른 상이 되었을 때

우리는 또 즉비로서 '동시-전체'라는 열린 시공간으로 들어감으로써 상으로 만들어지는 소외와 분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발제를 하면서 즉비가 이어지면 어디로 닿는지 그 공간은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답으로 삶이 그 자체로 생생한 공간인 '여여' 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나름 조심스럽게 (발제문에서는 하나도 안 조심스럽게) 유추해 보았다. 세미나에서 튜터샘이나 학인들은 즉비, 그 순간의 열림에 머무는 것이지 내가 어떤 시공간으로 들어갈지 미리 달려가보는 것도 또 하나의 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들을 주셨다. 성환샘이 '나'라는 관점에서 즉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고민을 한 것 같다고 하셨고 다시 발제문을 살펴보니 내가 생각했던 '여여'는 '바라보는' 내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바라보지 않아도 드러난다고 하셨나요? 무영샘의 짧은 한마디도 감사했다.


여래의 마음에서 출발하는 길

금강경에서는 선남자, 선여인이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면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한 중생도 제도한 바가 없다는 마음을 내라고 한다. 근영샘은 이번 차시에 금강경을 읽으면서 보살은 곧바로 여래의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와닿았다고 하셨다. 대승 경전은 나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또는 내가 자유로우려면 중생도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제도하라고 하지 않는다. 내 안에는 중생도 있고 부처도 있어서 부처라는 단서를 키워나가면 나도 이미 부처이고 중생도 이미 부처라고 말한다. 번뇌라는 것이 더이상 나의 번뇌가 아니라 우주적 번뇌로 승화되는 순간이고 번뇌의 자리가 기쁨의 자리가 되는 변환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나는 세미나에서 이 부분을 따라가기가 살짝 벅찬 감이 있었다. 내 안의 부처를 바라보면 된다고 하는데 먼저 봐달라고 하는 중생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세미나에서 '자비의 흐름을 그대로 맛보는 것', '하나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환희심'이 우리를 보시하게 하고 부처가 되는 단서를 붙들게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나의 병통도 깨달음에서 오는 환희심이 녹여줄 수 있기를.


다시 선남자, 선여인으로

4주만에 금강경 경전이 끝났다. 법륜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제가 부처님을 돕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정도는 되어야 보시라고 할 수 있다며 웃어도 보고, 기쁨의 파동을 느낄 수 있는 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 보기도 했다. 경전을 읽는 동안 불교 공부를 이전에 한 적이 있든 이번에 처음 금강경을 접했든 그것에 상관없이 금강경의 한 구절에서 의지처를 찾고 그곳에 머무르는 즐거움은 매우 생생한 것이었다. 선남자, 선여인으로 발심한다는 말도 거창한 것 같다. 다 걷어버리고, 그런 생생한 순간에 반짝 발하는 빛, 그 힘으로 계속 공부해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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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푸른달님의 댓글

푸른달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번뇌의 자리가 기쁨의 자리가 되는 변환의 순간이 이 ‘번개책’을 함께 읽는 순간이었을까요? 뿌듯하고 멋진 번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