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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와 현대과학 시즌1> 8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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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른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4-04 00:50 조회37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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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 과학 시즌 1의 마지막을 함께할 책은 SF 소설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입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소설의 전반부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SF소설이란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SF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였지요. 일명 ‘과학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판타지 소설인가? 얼핏 들으면 비슷한 듯도 해서 우리는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등을 떠올리며 SF 소설이 던지는 질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죠. 가만히 보면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 미래라는 시공에 놓여 있음에도 그들이 설정한 미래는 늘 소설이나 영화가 만들어진 당시의 현재적 표상 위에서 그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들은 미래를 말하지만 그 미래가 비추는 것은 언제나 현재라는 것. 바로 이 지점이 과학 소설이 판타지 소설과 구분되는 부분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근영샘께서 우리 시대에 ‘과학’이 ‘소설’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질문하셨지요. 많은 과학소설에서 등장하는 기계들, 인공지능 등은 결국 우리 인간이 인간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 그런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면 어쩌면 과학소설이란 현대판 신화로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신들은 인간이 다른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드러나죠. 과학소설도 인간과 기계, 인간과 인공지능, 인간과 외계인 등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역으로 인간을, 인간 사회를 드러내는 듯합니다. 특히 우리가 읽은 신들의 사회는 과학소설이지만 마치 신화를 읽는 듯한 느낌도 줍니다.


  • 죽음 사용법

여러 가지 재미있는 지점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일깨우는 부분이 있었죠. 바로 죽음의 신 ‘야마’의 존재인데요. 소설에서 야마는 늘 파괴의 신 ‘칼리’와 마주 보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악의 편에 있는 신으로서 그려지는데요. 주인공인 샘(불타 - 주인공이 부처님입니다 ^^)은 야마에게 칼리에게서 떨어지라고 얘기하죠. 야마는 어린아이 일 때 사고를 당해 노인의 육체로 영혼을 전이해야만 했던 그래서 젊음을 경험하지 못한 불운한 신인데요. 그래서 파괴의 신 칼리를 일편단심 사모하고 나중에 결혼까지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야마에게 칼리가 너를 이용만 하고 있으니 배신을 당하기 전에 얼른 떨어지라고 하죠. 그리고 결국 이차 저차 해서(5장부터 나오는 내용) 칼리와 떨어져 샘(부처님)을 돕게 됩니다. 돕는 정도가 아니라 부처님을 이 세상에 나오도록 즉 부처님을 환생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아 이것은 무엇인가. 다른 신도 아닌 ‘죽음’의 신이 부처님을 환생시키다니. 여기서 우리는 죽음 사용법을 배우게 됩니다. 죽음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것이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계속 육체를 바꿔가며 환생을 합니다. 불교의 윤회 같은 것이죠. 모든 환생 바로 앞엔 죽음이 있습니다. 바로 그 죽음이 부처님을 다시 인간 세상에서 태어나게 하죠.


  • 악마의 특징

이 소설에는 여러 악마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악마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ㅎㅎ

1. 악마는 실체가 없고 에너지로 존재한다.

2. 악마는 완전한 에고(ego)를 유지하고 영원히 살아가려고 한다. (멈출 줄 모른다.)

3. 악마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를 필요로 한다. 인간의 육체를 숙주 삼는다.

4. 악마는 자신의 모습을 자주 바꾸는데 특히 ‘내 얼굴’이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로 자주 나타난다.

5. 악마는 혼자 다니며 종종 어두운 곳에 잘 숨는다.


여기서 악마 대신 쾌락을 넣어도 뜻은 정확히 통합니다. 특징을 살펴보면 느끼지만 악마가 별건 아닙니다. 이 정도는 평소에 밥 먹듯 하는 것이 아닌가... 역시 우리는 다들 악마 몇 마리쯤은 속에 품고 살고 있습니다;; 내 안에 악마있다...나는 악마였...


  • 그렇다면 악마 퇴치제

그렇다면 이 악마는 어떻게 퇴치하는가? 붓다 아니 샘, 아니 붓다샘?(아 이런...문샘에게 전이됨)이 잘 보여주었습니다. 소설에서 샘은 타라카라는 악마의 빙의를 받게 되는데요. 가장 효과적인 악마 퇴치제는 ‘깨어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정신을 깨워 내가 지금 악의 존재에 휘둘리고 있음을 ‘자각’할 때, 악마의 존재를 자각할 때 이미 악마는 힘을 잃게 됩니다. 우리가 악마/쾌락에 지배받고 있을 때 자각을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악의 힘이 외부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는 외부의 악에 의한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우선 깨는 것. 이 악의 욕망은 나의 욕망이기도 하다는 것. 그것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내가 받는 악마의 힘이 외부의 악마로부터 나에게로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 이 힘은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다시 말해 내가 악에게 힘을 가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자각이라고 느꼈습니다. 내가 힘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와 동시에 그 악, 나의 악은 반대로 작용하는 나의 힘으로 뒤틀리고 힘을 잃게 되는 것이죠. 샘은 악마 타라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은 일방통행이라고는 할 수 없었어. 자네가 자네의 행위를 위해 내 의지를 비틀었듯이, 자네의 의지 또한 그 행위에 대해 내가 느꼈던 혐오감에 의해 비틀렸던 거야. 이제 자네는 죄악감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것은 영원히 자네의 고기와 자네의 술에 어둔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겠지. 자네의 쾌락이 사라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야. 자네가 도망치고 싶어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네. 하지만 이 경우엔 도망쳐도 아무런 쓸모가 없어. 그것은 세계의 끝까지 자네를 쫓아갈 테니까. 차갑고 깨끗한 공기가 있는 곳까지 상승한다고 해도 뒤쫓아 오겠지. 이것이 불타의 저주야.”(204)


샘의 깨어남, 자각은 악마 타라카에게 펀치를 가했습니다. 악마가 죄악감을 가지게 된 것이 바로 그 증거이겠지요. 그래서 그 악마는 어떻게 되었나? 바로 이렇게 되었답니다.


도대체 이 기묘한 감정은 뭐요? 내 힘이 최고로 발휘될 때마다 와서 내 기를 꺾어 놓으며, 가장 의기양양해야 할 때 나타나 나를 약하게 하고 낙담케 하는 이 느낌은?”

울고 싶은 기분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인가.



ㅎㅎㅎ 부처님은 자비로우셔서 악마를 죽여서 퇴치하지 않습니다. 다만 울게 만들 뿐. ㅎㅎ 



다음 시간은 우리 불교 × 과학(feat.S.F.) 시즌1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젤낮은이(by 문샘)의 ‘신들의 사회’를 끝까지 읽고 시즌1 멋진 피날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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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지혜님의 댓글

김지혜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젤낮은이...ㅋㅋㅋㅋ 청백전 인절미 반에서 읽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책이었는데 후기로 읽어도 흥미진진하네요
자비로운 부처님은 악마를 울게만든다니..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