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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와 과학> 7차시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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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26 15:16 조회410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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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마저 발췌하며 (내 발제문의 질을 떠나) 발제라는 의무를 통해 좀 더 진지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생각이다. 양자역학의 중요한 인물이었던 그의 족적을 따라가며 과학의 발전과 그 의미를 훑게 되는 것 못지않게, 기술과 삶을 둘러싼 각종 철학적 역사적 사안들에 대한 깊은 성찰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과학의 언어

우리가 접하고 이해했던 과학의 언어는 하이젠베르크가 비판하는 실증주의자로서의 명확한 (clear)’ 언어에 국한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예, 아니오 (혹은 참, 거짓)으로 구별되는 과학적 근거를 조건으로 한다. 그래서인지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항상 너무 많은 디테일이 생략되고 도식화된 나머지 그들만의 우주어로 고립된 채 대중과 괴리되었던 듯싶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에 따르면 양자역학의 언어는 (비록 그것이 고전물리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는 있어도), 모순과 역설이라는 상보적 관찰방식에 의해 구별(distinct)하지 않아도 명확(clear)할 수 있는세계를 연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과학의 언어는 데이터(data)라는 객관적 자료를 기반으로 사실(fact)을 추출한 결과라 여겨지지만, 인간의 상이한 신체적 감각적 조건으로 인해 완전히 객관적, 동일하게 통용되는 실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를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언어가 필요하며, 그 언어는 늘 일반적인 현실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과학자의 책임

그가 주위의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 그 중에서도 나치즘에 경도된 한 학생과의 대화는 보수적이라는 의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그는 사회의 변화에 나서지 않는다는 학생의 추궁에 혁명이란 기존의 것들을 최대한 유지하는 가운데 제한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할 때 이뤄진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이는 변화를 회피한다기보다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어떤 역사적, 사상적, 철학적 기반을 좀 더 극한까지 밀고 가 보아야 한다는 학자적 소신으로 비춰진다. 즉 변화라는 건 단지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해서 새로운 방향을 시도해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고 그 한계를 완전히 인식한 다음 취할 수 있는 절대적 행동강령에 가깝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기에 방향을 틀거나 한계를 뛰어넘을 수 밖에 없는 절대절명의 상태에서 혁명이 이뤄지는 것이고, 당시 히틀러 치하의 사회가 갖는 폭력성으로는 그런 동력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던 듯싶다. 물론 그의 이런 입장이 일견 보수주의나 심지어 엘리트주의로 여겨질 수는 있지만, 당시 많은 일신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에 남기로 결정한 그의 행동은 이런 철학적 입장과 일관된 모습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전쟁 후 독일정부에 부역한 낙인을 씻지 못했던 그를 보면, 비슷한 선택의 상황에서 과연 어떤 행동이 선과 악을 가를 수 있는가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미국으로 망명한 학자들에게 성찰을 멈추고 원자폭탄을 생산하는데 박차를 가하게 한 것이 과연 경제적 여건뿐이었을까? 좋은 편을 위한 무기는 따라서선하다고 믿는 인간의 심리가 한없이 가볍게 느껴진다.


반물질과 좌우대칭성

그 유명하다는(?) ‘파인만 도형을 처음 볼 때만 해도, 그리고 그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들을 때만 해도 그 후 그것이 우리에게 끼칠 반향을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전자와 반전자가 만나 쌍소멸하고 쌍생성하는 일련의 대칭적인 변화 속에서 전자와 반전자가 만나 소멸한 결과가 빛이 된다는 부분부터 우리 모두는 압도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물질로서의 우리가 만나는 것은 오로지 전자로 구성된 물질세계일 뿐, 반전자 즉 반물질과는 만날 수 없다는 부분, 즉 물질과 반물질은 반드시 쌍을 이루지만 물질로서의 인간세계는 반물질과 헤어진 비대칭한 상태이기 때문에 빛이 되지 않고 물질로서 존재한다는 부분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불교와 연관지어 말하자면 물질의 상태가 반물질과 만나 완벽한 균형을 이룬 상태가 바로 열반이라 볼 수 있다 했다. 그렇다면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는, 느껴지지만 물질이 아닌 에너지로서의 빛은 그렇게 열반에 든 수많은 존재들의 쉼없는 진동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내가 지각할 수 있는 모든 물질들을 넘어, 양자역학이 규명한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이 다양한 것들을 구성하는 근본이 빛이며 그 빛을 매개로 상호작용하는 힘으로 서로 묶여있는 것이 원자, 그리고 그 다양한 연결은 새로운 압력과 조건으로 인해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는 사실... 비록 몇 가지 안되는 개념들이기는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마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아는 것과 믿는 것, 언어와 비언어, 과학과 환상 등 그동안 내가 비교적 명확(clear)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구별(distinct)들을 원점으로 돌려놓는 듯했다. 비록 언어로 묘사되고 전달됐지만 그 사이 어딘가 감춰진 틈을 엿본 느낌이다. 이렇게 어려운데... 이렇게 아름답다니. , 아무래도 이 공부에 발목을 붙잡힌 듯하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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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푸른달님의 댓글

푸른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렇게나 빠른 후기는 샘의 재성의 힘인가요? ㅎㅎ (인성강자는 지연의 미학을) ㅎㅎ 모든 순간이 경이로웠지만! 열두시 이십분부터 시작된 물질과 반물질 얘기는 입 벌리고 침 흘리며 들었던 신세계였어요. 모든 것은 빛으로 되어 있다니! 존재가 그 자체로 매우 특수한 경우라니! 우리는 부글거리는 양자수프 안에 있다니요. ㅎㅎ
(+) 문샘의 통찰력 있는 조언: 이런 걸 기초만 배우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되니 최소 1년은 쭉 가셔야 한다는!

푸른달님의 댓글

푸른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리고 혁명에 관한 얘기도 세미나 내내 흥미로워서 계속 생각이 나는데 '새롭다'는 것은 정말 새로워지려는 목표가 조금도 없어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ㅎㅎ 생각이 들었어요. 뉴턴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이행하는 정도의 '혁명'적 새로움에 견줄 수 있는 예술의 움직임이 무엇일까 이 문제를 한번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약간 앞선 시기에는 세잔의 작업들이 그런 것 같고..전쟁을 겪으면서 더이상 기존 예술언어가 불가능하다는 지점에서 입체파나 다다이즘이 나온 것, 베케트 희곡이나 책에서 언급된 무조음악 같은 경우도 새로움으로서 이야기되는데 이런 것들이 하이젠베르크가 말하는 '혁명'과 그가 비판하는 히틀러적 혁명과는 또 어떻게 다를지.. 고민을 해 볼 지점이 생겨서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확실히 그 정도의 규모?가 아니라 단위를 조금 좁혀(줄여)본다면 '새롭다'라고 느꼈던 작업들/작품들은 모두 하이젠베르크가 말하는 '문제를 끝까지 파고든 지점에서 얻어지는 것'으로서의 새로움을 가졌음은 분명한 것 같아요. 새로움은 새로움 자체가 목적이 아닐 때만이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ㅎㅎ 제약과 조건에서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 때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 끝에서 덤으로 얻어지는 효과같은 것이 아닐까.. 이래저래 멋진 불교+과학+SF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