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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강독 시즌4]1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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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은이 작성일22-08-05 14:39 조회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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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칸트의 '초월적 분석학'이 끝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곧 '초월적 변증학'으로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런데 칸트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진도와 이해는 여전히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있어서,

소박(?)하게나마 칸트의 데카르트에 대한 반박 부분을 요약하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할까 합니다. 물론 그마저도 어설프지만요. 

텍스트 251-255쪽 참고 바랍니다. 


관념론 반박

우리는 외부 사물들의 현실성과 현존을 감각을 통해 증명한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이런 외부 사물의 현존을 의심한다.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은 생각하는 나라는 것. 

생각하는 나는 확실하게 있고 증명이 되는데, 외부 사물은 불완전하다고 한다. 

이는 데카르트가 <성찰>에서 확립한 철학의 제 1기초인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테제이다.

그러나 칸트는 이것을 반박한다. 

생각하는 나의 실존은 오직 외적인 대상과 그것에 의한 경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

내가 내적으로 뭔가를 경험하고 있다면, 칸트에 따르면 그건 분명히 외적인 고정된 실재를

이미 전제하고 있는 거다. 

데카르트가 말하는 내적 경험, 즉 모든 사고에 수반되는 '나는 있다(~을 생각하는 나는 있다)'는 이 표상은 

주관의 실존에 대한 표현이지만 그러나 주관에 대한 아무런 '경험적 인식'이 아니다. 

왜냐하면 경험을 위해서는 실존하는 어떤 것에 대한 '사고(개념)' 외에 '(내적)직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적 직관이 주어지려면 당연히 시간이라는 내적 형식이 필요하고, 

또한 시간의 규정, 즉 우리의 현존에 대한 의식은 고정불변적인 외적 실체를 필요로 한다. 

가령 우리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움직이는(이론인 아닌 경험적으로는 태양이 돌고 있다)

궤도를 24시간 단위로 나눠서 시간 측정을 한다.

이런 공간적 고정불변성 없이 시간의 흐름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고정불변적인 실체는 물질의 형태가 아니고는 있을 수가 없다. 

이런 고정불변적인 물질적 실체가 있어야 우리 자신의 현존과 관련해 

우리의 내감이 가능할 수 있다. 

생각하는 '나'라는 표상에서 나 자신에 대한 의식은 직관이 아니다. 

그것은 사고하는 주관의 자발성에 대한 지성적 표상에 불과하다. 

표상들로 존재하는 '나'와 그런 표상들을 종합하는 나는 다르다. 

데카르트의 회의적 관념론은 내적 경험의 가능성에 대한 조건적 검토가 없었다. 

칸트의 논법으로 하자면, 

그 무엇보다 생각하는 나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입장은 

그런 주장을 통해서 오히려 외적 경험과 외적 사물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결론으로 뒤집어지고 만다. 


다음 주 수업은 

지성의 영역인 현상계와 지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예지계에 대해 

칸트는 무엇이라고 설명하는지 마저 배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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