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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크로스, 우리도 철학한다!] 시즌2 6주차_가라타니 고진의 『탐구 II』 강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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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수 작성일20-07-30 21:59 조회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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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탐구26주차 후기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수영쌤께서 2부 초월론적 동기에 대하여- ‘2 신의 증명을 강독해주셨습니다. 데카르트는 코기토의 명증성을 전제하기 위해서 신을 증명하는 데까지 이르는데요, 신의 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칸트의 비판과 윤리의 등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을 추려 후기로 남겨보려 합니다.


1. 철학의 제일원리, 코기토

앞 장에서 정신이란 의식 혹은 자기의식의 외부에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코기토란 단지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든 습관 속에서의 사유에 괄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신은 내 사유가 습관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것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의심하는것은 의지의 작용이지 지성의 작용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의적인 것일까요 필연적인 것일까요? 데카르트는 공동체 외부에 존재하기를 의도하는 동시에 또 그렇게 강요받고 있는 것이기도 해서 그의 의심하기는 자유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은 책에 인용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입니다.


……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고 이때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신 속에 들어온 것 중에서 내 꿈의 환영보다 더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상하기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방법서설, 184~85).

<가라타니 고진, 탐구2, 새물결, 95>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거짓된 것으로 간주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한 데카르트는 자기 생각 속에서 의심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꿈을 꾸고 있는 나는 존재하고, 악령이 나를 기만하고 있을지라도 속았다는 그 생각은 있기 때문에 정신은 존재하고, 그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나는 의심하면서 존재한다와 동일한 것이며, 이것은 의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확인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왜 의심하는것인지, 의심하는의지의 작용이 자유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 필연적인 것인지를 물어야만 했기 때문에 신의 존재 증명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2. 존재론적 증명

이렇게 해서 데카르트의 의심하기는 신의 증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데카르트의 신 증명을 살펴보겠습니다.


계속해서 내가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 또 의심하는 것보다는 인식하는 것이 더 큰 완전성이므로 내 존재는 아주 완전한 것이 아님을 반성했다. 그런 다음에 내가 어떻게 해서 나보다 더 완전한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고찰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실제로 더 완전한 어떤 본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명증하게 알게 되었다(방법서설, 187).

<같은 책, 100>

…… 완전한 존재의 관념 속에는 현존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따라서 나는 이 완전한 존재인 신이 있다는 것 혹은 현존한다는 사실은 적어도 그 어떤 기하학적 논증 못지않게 확실하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방법서설, 191~92).

<같은 책, 99>


내가 의심하는 것은 의심하게 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의심으로 향하게 하는 차이의 의식이 선행합니다. 이 차이는 동일성에서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공동체의 차이를 넘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객관적 세계를 전제하고 있지만, 데카르트에게는 이러한 전제가 없었기 때문에 객관적 세계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의심하기를 강요하는 이 차이의 절대성에는 외부적 실존인 타자의 타자성이 숨어있는데, 윤리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것을 데카르트는 신에게서 찾은 것입니다.

나는 계속해서 의심하고 있기에 내 존재는 완전한 것이 아니지만 더 완전한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완전성이라는 관념 속에는 현존이 포함되는데, 신은 완전한 존재이므로 신은 존재한다. 이러한 논의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증명'입니다.


3. 칸트의 윤리학

이렇게 신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를 이성의 월권행위로 본 칸트는 내가 100만 원이라고 하는 완벽한 개념을 갖고 있더라도 그게 내 주머니에 있지는 않다, 라며 데카르트의 완전성 개념을 비판합니다. 신이나 유령, 유니콘도 관념의 수준에 존재하는 것일 뿐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처럼 관념의 차원과 존재의 차원은 서로 다른데 데카르트는 이 이질성을 보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데카르트가 완전성으로 신을 증명하려 했던 것은 실패합니다.

관념과 존재를 일치시켰던 데카르트와 달리, 칸트는 이론과 실천을 절단시키고 ''을 실천 이성의 문제로 간주했습니다. 수영쌤께서는 이론과 실천을 일치시킬 때 인간이 최대의 광기에 빠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치즘과 소비에트에서 자행되었던 대학살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셨는데요, 두 사건 모두 이론을 진리로 여기고 그에 기반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실천이었습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론을 역사의 법칙이자 진리로 보고 유대인 학살과 부르주아 처단에 정당성을 갖게 된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수영쌤께서 반유대주의에 대해 설명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반복될 수 있고, 이것을 해결하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칸트는 이론 이성의 한계에 따른 인간의 유한성을 보고 이론과 실천을 절단하는데요, 이렇게 앎의 영역은 제한되어 있고 실천의 영역은 따로 있다고 볼 때 윤리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칸트의 윤리학을 통해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으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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