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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다 세미나 4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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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영 작성일20-02-03 12:48 조회5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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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양고전을 위주로 공부하고 있는데요. 철학개념에 대해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서양철학입문 세미나가 생겼어요. 3월 개강을 앞두고 깜짝방학세미나인 <아기다!>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이 딱히 어려운 건 아닌데...맥락 따라가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 이유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문제야

이번주에 우리가 읽은 부분은 동정과 자기인식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바실리우스의 작품 <완전한 동정에 관해서>와 카시아누스의 <수도원교육>, <강연집>을 중심으로 논의가 펼쳐집니다. 4세기에 이루어진 동정의 실천에서 자기 테크닉이 갖는 의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푸코가 주목한 것은 내용의 측면이 아니라 형식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고안되고 장치 자체가 만들어졌는가에 집중해서 읽어야겠더군요.

기독교의 성서적 내용이 아니라, 교회와 제국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기독교라는 기계가 어떻게 조립되고 만들어지는지 푸코는 그 생산과정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는 근대의 학교, 교육과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그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그것보다는 외우는 작업, 시험을 본다는 형식, 시간과 과목의 배정 등 규범의 형식이 신체성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 책들은 단순히 품행의 규범들을 작성해 놓은 것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의 상관관계와 관련된 테크닉-실행방식, 행동방식, 존재방식 등을 심사숙고해서 고안해 냈습니다. 예를 들면 몸치장 같은 것, 바실리우스는 모든 장식과 몸치장을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취해야 할 행동보다는 자기와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모든 몸치장은 보는 사람들뿐 아니라 몸치장을 하는 여자의 영혼 속에 감각, 심상, 욕망을 유발한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하나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건 영혼을 완전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가시성의 원칙입니다.


이러한 시선, 보다 정확히 말해 무수히 많은 시선들은 자기의 시선이 아니다. 가능한 한 거침없이 자기의 비밀을 샅샅이 훑고 지나가는 모든 타인의 시선들이 보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려고 애썼는지와 영혼 속에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을 얼마나 잘 지켜보았는지에 따라 영혼의 동정은 보장될 것이다. (미셀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나남출판사, p.319~320)


결국 동정의 실천은 자신의 내면까지도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는 시선까지 장착시켜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앎의 관계

흥미로웠던 것은 진실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하느님-영혼의 관계가 (하느님-약혼자와의 관계에서) 이제 앎의 관계로 나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나에 대해서 하나부터 백까지 다 알아야 한다는 것, 자기 자신의 진실을 찾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고백이나 진실말하기의 형식으로 실천됩니다. 이전까지 진실이라 함은 내면과 외면의 완벽한 일치, 사유와 행위의 간극없음, 이었는데 이제 기독교적 진실은 자기에 대한 무언가를 털어놓는 것으로 그 의미가 변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의 일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나에 대한 어떤 진실을 말하는 것, 은밀한 비밀을 나누는 것, 상처나 트라우마를 말해야 하는 것...우리가 상상하는 진실이란 이런 모습이란 거죠...내면과 외면을 일치시키려는 노력 대신 영혼을 순결하고 고귀하게 꾸미려는 노력으로 인해 내면과 자아가 더욱 비대해지고 있다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분리와 단절의 테크놀로지

래서 기독교적 장치의 목표는 분리와 단절이었습니다. 자연적 욕망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육체와 영혼을 분리, 격리시켜야 하며, 쾌락의 출구와 통로는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에 대해 아주 세밀히 관찰한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리방식들-감지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감각의, 세계에 대한 육체의, 육체에 대한 영혼의-은 바실리우스의 관점에서는 동정의 한 기술적 측면일 뿐이다. (같은 책, p.314)


탐욕과 분노, 나태와 권태, 간음과 식탐을 연결한 것이 재밌었습니다. 그렇네요. 분노는 탐욕에 기반하고 있었군요. 완전 이해됩니다. 특히 음식과 술을 성적 쾌락을 자극하는 주요요소로 여겼다는 것과 관련, 현대인의 식습관(인스턴트 음식, 화기 충만한 음식들...)과 성적(性的) 항진에 대한 다양한 진단을 해봤습니다.^^

다음주 읽을 범위는 p.394~474까지입니다. 담주에 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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