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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고원 소설 읽기 세미나 4주차 후기-<우연과 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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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risa 작성일20-01-11 22:42 조회4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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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주차까지는 소설을 읽었는데, 4주차에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멋진 제목을 가진 과학책을 읽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반장답게 항상 진도를 빠르게 나가는 철수샘이 전주에 읽은 메피스토와는 달리 이 책에 대해서는 대부분 중간에 헤매게 될거라는 부정적인 평을 줘서 기대를 확 낮춰서 읽었는데요. 지루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저는 생각보다 흥미로웠습니다. 예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을 때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우주적인 경이로움을 느꼈다면, ‘우연과 필연에서는 세포적인, 미시적인 경이로움을 받았습니다. 나라는 생명체는 수 많은 세포(세포는 하나의 기계로 볼 수 있음)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 몸 안팎에서 미시적 우연과 요란이 들어오고 발생하며 이들과 세포들의 만남(포획, 반복, 방어, 제거 등)을 통해 내 몸이 유지하거나 변화되고 있다는 것. 우연은 불변성의 기구에 의해 포획되고 보전되고 반복되어 질서로, 규칙으로, 필연으로 전환된다는 것. 제가 필연이라고 생각하고, 보편적인 법칙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결국 우연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영원할 것 같은 자본주의도 우연히 발생했죠. 이는 들뢰즈/가타리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잘 설명해줍니다.

 

   이번 4주차 세미나는 처음으로 완전체를 이루었는데요. 다행히 지안샘과 소담샘이 이과출신이어서 책의 해석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ㅋㅋ 철수샘이 이 책이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하자 지안샘이 과학책은 이해를 내려놓고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죠. 저에게 우연과 필연은 어떤 법칙이나 개념을 이해하기 보다는 정말 마음으로 와 닿는 그런 과학책이었네요. 고등학교때 접했던 지루하고 알고 싶지 않은 과학교과서와는 달리 소설이나 철학책을 읽었을 때와 얻는 감흥을 느꼈어요. 내용이 어려운 만큼 논의할 주제들도 많았는데, 생명의 세 가지 속성(합목적성, 자율적 형태발생, 복제의 불변성) 중 하나인 합목적성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습니다.

 

   우리는 합목적성이라고 하면 초월적인 목적, 달성해야 하는 목표 이런 걸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명체의 합목적성은 뭔가 되어야 하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노는 다시 말해 생명체들의 구조는 어떤 의도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들의 활동(예컨대, 인공물의 창조와 같은 그들의 활동) 또한 이 의도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생물학자들은 한사코 이런 생각을 거부하려 하지만, 그러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이런 생각이 생명체를 정의하는 데 본질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생명체는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존재들로부터, 우리가 이제부터 합목적성이라고 부를 이 속성에 의해서 구별된다.”(우연과 필연23p)라고 말하며, 이 합목적성은 생명체를 정의하는 데에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고 얘기합니다. 즉 생명체 외에도 인공물도 합목적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린 합목적성을 얘기할 때 주로 인공물을 떠올리기에 외부에서 주어진 의도를 생명체의 합목적성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명체의 구조는 인공물과는 달리 외적인 힘의 작용에서가 아니라 전체 형태에서부터 가장 작은 세부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기 자신 내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형태 발생적 상호작용에 의해 생깁니다. 모노는 생명체의 유일하고 원초적인 의도는 종의 보존과 증식이라고 말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아주 자의적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합목적적인 의도의 본질은 종의 특징짓는 불변성의 내용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데 있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 본질적인 의도의 성공에 기여하는 모든 구조와 성능, 모든 활동은 합목적적이라고 불릴 것이다.”(우연과 필연29p)

 

   생명체는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고, 이를 보존하여 다음세대로 전달하고 확대하기 위한 활동들이 합목적적이기에 어떤 우연 X가 발생했을 때 이것이 합목적적인 것이라면 포획되고 보존되어 생명체에 진화를 가져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방어되어 기존의 것이 지속될 것입니다. 이 우연은 유전암호의 텍스트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원천으로, 오직 우연이야말로 생명권에서 일어나는 모든 새로움과 모든 창조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면, 사건은 우연적으로 오지 내가 예상한 대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설혹 무엇이 예상한대로 일어났다면 그것 또한 우연적인 것이겠죠. 그러나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특히 돈, 명예, 승진, 시험합격 등 좋은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 이것은 나의 노력, 나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믿습니다. 반면 병, 고통, 갈등 등 내게 고통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우연히 떨어진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의 몸에서도 수 많은 우연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나는 변하고 있는데, 실제 삶에서는 어떤 우연적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네요. 그렇다고 생명체는 우연에 의한 변화만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저희가 천개의 고원을 공부할 때 무조건적인 탈코드화/탈영토화가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하듯이 생명체도 우연에 의한 변화만 있다면 생명체는 지속되기 어렵겠죠. 자크 모노는 복제의 불변성, 즉 어떤 고차원적 질서를 갖춘 구조를 복제하는 능력,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 그 종에 독특한 구조적 규범을 보존하게 해주는 정보량을 얘기하며 불변성 또한 생명체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저희는 이 불변성, 질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공부하면서 계속 기존 질서, 불변성은 나쁜 것이라는 편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명체의 놀라운 안정성에는 생명체가 가진 합목적적인 시스템의 극단적인 정합성이 있고, 이 시스템은 무수한 우연 중 오직 극히 작은 부분만을 받아들이게 하여 종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모노는 이렇게 말을 하죠. “이 거대한 우연의 놀이가 가진 크기와 자연이 이 놀이를 전개시켜 나가는 어마어마한 속도를 생각해볼 때, 설명하기에 어려워 보이거나 혹은 거의 역설에 가깝게 보이는 것은 진화가 아니라 반대로 형태의 안정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우연과 필연176p) 그 동안 진화가 놀라운 것으로 배웠는데, 사실은 안정성이 더 놀랍다는 이 역설!!!!!

 

   또 흥미로웠던 내용은 유전적인 성공과 개인적인 성공은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진화에서는 유전적인 성공의 여부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적인 성공이 유전적 성공을 저해하고 있다고 하네요. 모노는 통계자료를 근거로 지능지수와 커플사이의 자녀수는 반비례한다는 사실과 예전에는 유전적으로 열등한(ex:유전병) 이들이 자연적으로 또는 무자비하게 제거가 이루어져왔는데, 의학의 발전, 지식과 사회 윤리의 진보로 이들이 충분히 오래 살아남아 자손을 낳는 사례를 들어 말합니다. 그는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선택에 의한 도태가 작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 혹은 오히려 반대되는 선택이 일어나도록 하는 조건이기에 인간 종에게 닥친 위험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런 내용이 다소 불편하였고,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공격을 많이 받거나 히틀러 등과 같은 인종주의자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글을 쓴 모노가 매우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유전자의 눈으로 생각하면 우성유전자를 가진 개체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기에 유전적으로는 불리한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모노는 수십만년 동안 관념상의 진화는 신체상의 진화를 아주 조금만 앞서 나갔기에 서로가 서로의 진화를 촉진시켜줬는데, 무한한 자율성으로 인해 이제 문화적 특징 자체들이 유전자의 진화에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문화의 진화속도는 더 빨라져 드디어 유전자의 진화와 동떨어진 채 혼자서 계속 진화하는 시기가 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 제도들이 유전자의 진화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으로서의 삶이 중요하기에 공동체, 종으로서의 인류, 유전자를 들먹이는 것은 개인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여겼죠. 저는 비혼이라서 예전에 어른, 상사들한테 주영씨같은 사람이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야 좋은 유전자가 지속되는데 국가적으로 손실이야.”라는 얘기를 듣곤 했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애 낳는 기계도 아닌데..“라는 생각부터 들었고 기분이 매우 나빴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삶,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삶은 유전적인 것과 동떨어져 혼자 진화해온 관념들 중 하나입니다. 물론 유전적인 성공을 위해 여자들은 꼭 출산을 해야한다는 방향으로 가자고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소중하게 생각하는 관념, 전제들에 대해 질문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객관성의 공리를 참된 지식에 대한 조건으로 여기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라는 점, 우리가 삼각형, 사각형 등을 지각하는 것은 그 대상이 이미 갖고 있는 속성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상을 지각하는 감각분석에 의해서 표상되는 것이라는 점 등 다양한 사유의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저번 주에 읽은 메피스토는 빠르고 흥미로운 전개, 다소 단선적인 인물 등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혔으나 그렇기에 얘기할만한 주제들이 많지 않았던 반면, ‘우연과 필연은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던 만큼 다양한 논의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주 대미를 장식할 펜테질레아는 저희에게 어떤 질문을 유발할지 궁금하네요. 저는 회사일 때문에 마지막날 불참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만큼 이번 세미나 너무나 재밌었다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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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님의 댓글

철수 작성일

세미나를 마치고 헤어지고 나서... 형식적으로라도 후기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런 생각은 쓰잘데 없는 기우였음을 오늘에야 실감합니다.
주영쌤~~~ 후기 멋져요~~~!!!

이렇게 세미나를 하면 할수록... 뭐랄까, 천개의 고원에서 막연하게 느껴지던 것이 조금은 형태가 잡혀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뭐 제가 써보면 그것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고, 혀끝에서만 맴도는 게 탈이기는 하지만 말이지요. 그러니, 저에게 너무 기대하시면 아니되옵니다. 누가 기대를 한다고... -..ㅡ )

이번 책을 읽으면서 지안샘이 이런 책은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면서... 이해가 안되더라도 또 다른 읽기의 방식이 있다고 하셔서 또 한 번의 좌절(?)이 스치고 갔습니다. 정말, 이해를 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이런 강박은 나를 어떻게 동작을 시키는 것인지... 이런 강박때문에 내가 딱딱한가 하는 생각도 하는 요즘입니다.

이제 남은 마지막 책, 펜테질레아. 희곡이라는 형식이 이번에 저에게 새롭게 와닿네요.
모든 것이 대사로 재현이 되는 형식이 새롭습니다.
목요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사뭇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