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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치 읽기]s.4 3주차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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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심이2 작성일19-11-09 02:14 조회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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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민중의 마음이 문자가 되다. 두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늘 어렵지만 뭔지 글에서 느껴지는 이반 일리치 샘의 따뜻함이 마지막 시즌이 되면서 더 느껴집니다. 이번에 후기를 올리는지 모르고 녹음을 안했네요. "내가 이러려고 녹음했나?"하는 후회를 하면서 오로지 기억과 허구를 섞어서 시작하겠습니다. 


5. 자기

‘자기’는 문자적 구성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서전은 서술과 자기로 구성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 자서전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나왔다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 I '가 중요했나? 했습니다. 자서전 부분에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자서전을 노래로 표현한다면 “내가 제일 잘났다~ 예~”. (걸그룹 2N1의 내가 제일 잘났다)


알파벳이 관념의 기억도 나도 저장하는 저장소라는 것, 그런 알파벳에서 시작되어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말이 글월의 무덤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사주에서 진술축미가 역마 글자를 땅에 묻듯이 말이죠)


베어울프 신화에서 재미난 부분이 있는데요. 베어울프는 수영시합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들려주는데, 운페르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었습니다. 아마도 사실을 나열하느라 재미없었던 것 같습니다. 베어울프는 이런 모순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해결’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선 구술문화의 ‘말’과 서술문화의 ‘글자’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허구냐 사실이냐가 아니라 재미있냐 재미없느냐가 중요한 거죠.


6. 허위와 서술

  6장에서 인상 깊었던 ‘무엇을 다른 모양으로 고쳐서 만들 능력을 중세말에는 서술(narration)이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 의해 사건은 늘 다르게 전개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짐과 허클베리의 이야기에서는 짐은 날씨, 강 등 미신과 마법이 베어 있는 현실을 숨쉬며 즉각적인 지식을 얻는 살아있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반면, 톰 소여는 아서왕의 모험담을 읽으며 세상을 봅니다. 현실속에서 야생적으로 살아 숨쉬는 짐과 글자속에서 세상을 관념으로 접속하는 톰 소여를 보며 난 과연 세련된 언어를 들고 어디쯤 서있나 생각을 했습니다.


7. 교습되는 모어에서 새말과 꽥꽥일률로

7장에서는 새말이 뉴~스피크냐 버드 스피크냐 하며 꽥꽥거렸습니다. ㅎㅎㅎ

‘에너지’를 예를 들면 시대적으로 이 말이 어떻게 변천했는지를 말해주며 7장이 시작합니다. 무의미한 이 낱말이 이상한 권한을 부여받으면서 특별해집니다. 이런 낱말을 ‘아메바 낱말’이라고 부릅니다. 결국은 ‘우리는 이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르면서 권위(?)있는 전문가가 붙여준 의미를 꽥꽥거리면서 떠들었던 거죠.

 

후기 - 침묵과 우리

  후기에서는 침묵에 대한 차이를 설명했는데 최초의 침묵은 성경에서 멋지게 묘사했고 20세기의 침묵은 뭔가 기계적인 삑-삑 사이의 공백정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나’와 ‘우리’는 도무지 왜 갑자기 나왔는지 의아하다고 탄성을 지르면서 마지막 구절 ‘우정에 대한 정의는 이 책의 첫머리에 있는 서신을 보라’를 읽고 맨 앞으로 갔습니다. 

 

 첫 편지, 여기서 뒷통수를 딱!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리치 선생님은 이 서신으로 당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했습니다. 편지 내용 첫줄에 나오는 “사랑은 가실 줄 모릅니다.”(고린토 1서 13장 8절) 이거였습니다. 


구술문화에서 했던 ‘말’은 우리가 사랑할 때처럼 하트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태도를 말한 것이었습니다. ‘말’을 한다는 건 상대방에게 사실을 전달하거나 문자의 내용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할때처럼 상대를 향한 애정과 관심이 가득한 눈빛과 태도로 이해하려고 하는 모든 과정이라는 것이라는 겁니다. 사랑할 때처럼 말을 할때도 상대와 소통하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소개하며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첫 편지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사랑은 가실 줄 모릅니다.”(고린토1서 13장 8절)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이제 경험하고 보니 사랑은 가실 줄을 모른다는 걸 확실히 알았습니다. 나는 집에서 출발해 낯선 땅의 당신에게 갔습니다.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낯설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먼저 친구를 사귄 건지 내가 친구가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을 사랑했습니다. 나는 그 사랑이 싫증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다정했으니까요.

  내 가슴속 작은 주머니를 채웠는데, 그게 너무 작아 그 사랑을 송두리째 담을 수 없어 애석했습니다. 나는 한껏 채웠는데, 내가 가진 걸 완전히 채웠지만, 내가 발견한 모든걸 모조리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한껏 받아들였습니다. 더없이 귀한 보물로 가득 채웠지만 주머니는 조금도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 주머니가 나를 떠받치고 있었으니까요.

  긴 여행이 끝난 지금 나는 이 주머니가 여전히 가득 차 있음을 알았습니다. 줄어들지가 않습니다. 사랑은 가실 줄 모르니까요. 

  사랑하는 형제, 이 주머니 속에서 무엇보다도 당신에 대한 기억을 봅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이 편지를 봉합니다. 당신이 주 안에서 안전하고 온전하기를 바랍니다. 이 사랑에 답해주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를. 

아멘.


「abc, 민중의 마음이 문자가 되다._이반 일리치, 배리 센더스 지음, 권루시안 옮김」 

위그가 라뉠프 드 모리아코에게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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