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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니체 6주차 후기] 재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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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겸 작성일19-09-29 16:40 조회7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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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 후기를 맡은 재겸입니다. 이번에는 아침놀 2128 ~ 148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우연과 필연을 이야기 했습니다. 우연은 충동이기도하고 운명이기도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리스 인들은 그 영역을 모이라(운명)이라고 불렀습니다. 130번에는 묘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히려 저 어리석음의 영역에 배후에 경애할 만한 신이 존재한다.’ 인간은 신이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운명도 신의 영역에서 보면 어떤 길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한다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우연이 결국 신의 영역에서는 필연이 되는 겁니다. 우연만이 필연이 되는 것이죠.

  생각해보면 목적이나 이성이 필연이라는 근거가 없습니다. 우리가 목적을 생각할 때 합리적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 때 충동에 의한 우연의 산물입니다. 내가 계획 세운대로 되는 일이 없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계획이 몸과 마음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라면 그 대로 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니체의 문장을 보세요. ‘어쩌면 단 하나의 영역만이 존재하고 어쩌면 의지나 목적이란 것은 없는 것이며 그것들은 우리가 상상해낸 것이란 사실 말이다. 우연의 주사위 통을 흔드는 필연성의 저 철로 된 손이 무한한 시간에 걸쳐 주사위 놀이를 한다.’ 니체의 생각에 우리의 의지 작용이나 목적은 주사위 던지기에 불과합니다.

   2장 후반부에는 니체의 동정 비판이 많이 나옵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도 니체가 동정을 왜 비판하는지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선 동정은 자신을 비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감정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지겹고 추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자신 보다 남들을 많이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 문장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우리가 훌륭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동정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단박에 알게 됩니다. 그리고 동정이 세상에 고통만 증가 시켜주지 실재로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 원기를 줄 수도 없다. 불행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고양시키는 기재로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동정은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힘을 앗아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정은 경멸과도 같은 것입니다. 긍지를 잃지 않은 사람에게는 찬탄하지만 동정을 받을 만한 사람은 경멸하는 것입니다. 동정도 자신의 힘을 쓰는 방식의 하나입니다. 다만 쉽게 자신의 우위를 확인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세미나를 하면서 이런 의문이 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까? 동정의 방식이 아닌 연대의 방식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곤란한 상황을 동정하지 않고 대등하게 만나는 방식은 어떤 걸까요? 니체는 우정을 이야기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과 스스로 그 상황을 돌파하지 못하리라 믿는 것은 구분해야 하겠죠? 분명한 것은 동정은 상대의 힘을 빼앗아 불행을 지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 사건을 통해 배우고 고양시킬 수 없게 합니다.

  니체는 147번에서 신성한 이기심을 이야기합니다. 저에게는 그 것이 니체가 도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살하갈 수 있는 방식을 말하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 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삶 말고 인기가 없어도 좋고 경멸당해도 좋은 그래서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일 것입니다. 니체의 도덕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다음 세미나부터는 제3권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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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보연님의 댓글

보연 작성일

동정은 결국 나의 고통을 덜기 위한 것이다. 나의 고통을 덜려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니체가 동정을 비난하는 것은 상대방의 힘을 못쓰게 하면서 나의 고통을 더는 것,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 약한자를 통해 자신의 힘을 느끼려는 것. 이것을 비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